IPPUC
2012년 6월 23일
브라질 파라나(Paraná)주의 주도인 쿠리치바(Curitiba) 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중심지가 된 후 인구 증가가 문제가 되자 1943년 프랑스 도시계획가 알프레도 아가시(Alfredo Agache)가 책임을 맡은 ‘쿠리치바 도시화 계획(Curitiba Urbanization Plan)으로 교통과 기능별 구획을 강조하는 도시성장의 지침과 규범을 확립했다. 1950년대 초반 상업시설과 공장이 늘면서 고층빌딩과 함께 빈민가(favela)도 늘어나자 1956년 상업지역, 산업지역, 거주지역, 농업지역 등 네 개 범주의 구획으로 변경하면서 1958년에는 쿠리치바도시계획위원회(Curitiba Planning Commission)를 만들어 아가시 계획을 수정하였다. 1965년 7월 시 당국과 다양한 영역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쿠리치바 내일 세미나(Curitiba Tomorrow Seminar)’에서 도시계획을 제안하고 규범을 만들 수 있는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시장 직속의 쿠리치바도시계획연구부(APPUC: Office of Research and Urban Planning of Curitiba)가 만들어졌고, 12월 쿠리치바도시계획연구소(IPPUC: Institute of Research and Urban Planning of Curitiba)가 설립되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툴루즈(Toulouse) 지역의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자이미 레르네르(Jaime Lerner)는 귀국 후 학생운동을 하며 도로 중심의 도시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고, 세미나와 IPPUC에 전문가로 참여하다 1968년 8월 3일 IPPUC 소장이 되었다. 1971년에는 33세의 나이로 시장에 임명되었는데, 그의 첫 프로젝트는 1972년 ‘꽃의 거리(Rua das Flores)’라 불리게 된 ‘11월 15일의 거리(Rua XV de November)’를 보행자 구역으로 바꾼 것이었다. 공무원들도 반대하며 2개월이 걸릴 거라고 한 공사 자체를 상인들이 철시한 금요일 저녁 6시에 시작하여 월요일 아침에 마무리함으로써 상인들과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게 하였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다시 바꾸려고 시위를 계획한 자동차 동호회에 수백 장의 종이를 깔아 놓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꽃의 거리 조성 반대 청원에 앞장선 사업자가 기념식 다음 날 찾아와 보행자 구역을 확장해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다.
세 차례(1971-1974, 1979-1983, 1989-1992)에 걸쳐 쿠리치바 시장을 맡았고 8년간(1995-2002) 파라나 주지사를 맡았던 자이미 레르네르는 ‘대도시는 결코 생태적 모델이 될 수 없다.’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지속가능발전도시와 생태도시의 모범을 만들었다. 그는 <도시침술(Urban Acupuncture)>이라는 저술에서 “침술이 몸에 최소한의 자극을 주어 건강을 회복시키듯 도시에도 최소한의 개입으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말한다. “모든 도시에서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장사꾼이 줄어들고, 좋은 도시의 조건을 고민하는 철학자가 더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1974년 지상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간선급행버스체계(BRT: Bus Rapid Transit)를 도입했다. 1989년부터는 쓰레기를 모아오면 버스 토큰이나 음식 쿠폰으로 교환해주는 녹색교환프로그램(Câmbio Verde)을 시행하였다. 1992년에는 국제연극제를 유치하고자 버려진 채석장 부지에 75일 간의 공사로 노천극장(Ópera de Arame, Wire Opera House)을 세웠다. 범람하던 하천변 채석장에는 1996년 탕구아 공원(Parque Tanguá)이 조성되기도 했다. 쿠리치바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80%가 넘고, 쓰레기 재활용률은 70%가 넘는다. 주민 1인당 녹지는 유엔과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면적의 4배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