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마리'가 차지하고 있다. 화면 속 마리는 나와 만난 지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의 모습이다. 그녀는 뽀얀 얼굴에 세수를 했지만, 작고 귀여운 눈곱 자국을 가지고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특히 잠들기 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윽하게 바라보고 '마리~'하고 불러본다.
넌 누구지? By 마리
나는 과거에도 길고양이들과 점심을 나눠먹거나 사료를 챙긴 적이 있었다. 나는 캣맘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는 짧은 생각으로 잠시 그렇게 지냈었다.그때 참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고양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이 커질수록 이상하게 절망감이 들었다.그래서 한동안 아이들을 바라보기를 멈췄다. 길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 시선을 피하고 '난 나 살기도 바빠', '나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단 말이야' 라며 애써 외면하던 시간이 있었다.
마리와 호랑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다 외우지도 못하고 수시로 헷갈리는 이름을 붙여주고 길에서 마주치면 말을 걸고 인사를 한다.나는 엄마나 책임지는 사랑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로 했다.같은 공간에서 출발하고 같은 곳으로 돌아오진 않지만 잠시 잠깐 만남으로 위로를 주고받고 서로의 일상을 보아주고 말을 건네주는 그런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내가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많은 것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란 확신이 이젠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좀 예쁘지? By 예뻐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 오래된 친구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면 참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그렇게 만나는 그 친구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그러나 가끔 만나 좋아하는 메밀국수를 먹고 이차로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에서 빵 파티를 하며 마음 가볍게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렇게 반나절 보내면 일상에 시달렸던 마음이 위로받고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나는 우리 동네 고양이들에게도 이런 감정을 전해주고 싶다.
애교많은 지지와 노래하는 쏭이
가끔 점심을 먹고 오후 산책을 위해 고양이 친구들 간식을 한가득 챙길 때면 이미 마음은 그곳에 가있고 내 두 다리는 현관에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날 때가 있다.그 예전 느꼈던 절망감과 쓸쓸함이 지금은 없다.그들도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그 안에서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살아있는 생명은 언제나 또 누구나 생과 사, 그리고 늙음과 병듦을 곁에 두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와 고양이 친구들은 동등하고 나도 더 이상 슬프지 않다.실제로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돌봐주고 있는 중이라고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