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매일 마주하는 나팔부는 천사들의 석상, 지하도 한편에 타일로 새겨진 어느 작가의 추상화, 회사 앞 빌딩에 책을 읽는 노신사. 우리가 하루를 보내며 흔히 마주하는 공공미술의 모습이다. 공공미술은 대중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술을 뜻한다. 하지만 미술과 공공성이 결합된 이 영역은 한 문장으로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공공미술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크게 3가지 형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로 공원이나 대형 빌딩의 내 외관에 설치된 형태의 미술이다. 두 번째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은 공공장소 전체를 활용한 장소 특정적 미술작품과 도시나 공원 전체의 디자인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Art in Public Interest)로 감상자 또는 관객의 위치에 있던 시민들이 주체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의 미술 등을 포함한다.
2020년 겨울, 이렇게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지역사회의 예술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부산 북구의 어느 동네로 프로젝트는 <공감의 시작, 아트 감동진>이란 큰 타이틀 아래 진행되었다. 타이틀에 쓰인 '감동진'은 '감동하다' 할 때의 그 감동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낙동강의 하류의 '감동진 나루터'에서 따온 것이다. 예술과 감동, 이 두 단어는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데, 타이틀의 중의적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분야는 지역 내 공공기관과 가정에 작품을 대여하는 것과 주민과 함께하는 아트클래스의 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후자의 경우, 주민들이 수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을 전시로 연결시키는 부분까지 포함되어있었다. 41년 생부터 97년생까지 총 35명의 참여 작가들 중 19명이 '아트클래스 감동진'이란 타이틀 아래 각자의 분야에서 커리큘럼을 짜고, 그것을 토대로 수강생을 모집했다. 나는 '일러스트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재료와 주제로 표현해 보는 수업을 구성했다. 총 5명의 수강생이 모집되었고, 미처 인원 안에 들지 못한 대기자가 10명이 넘었다. 코로나의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분반을 나눠 총 8번의 수업을 진행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이 진행되며 수강생들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도 곁들이게 되었다. 나는 수업을 진행할 때'하면 안 돼'와'틀렸다'는 말을 쓰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 나에게 예술이란 바르거나 바르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수강생들에게도 그 부분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수강생 분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다른 연령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똑같이 그려야 잘 그리는 것이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주어진 교본보다 훨씬 좋은 표현을 하고 있음에도 똑같이 그리는 그림에 익숙해져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혹은 내가 교본에서 실수한 부분까지 따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수업 초반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리는 행위'를 취미로 오래 가져가기 위해서는 똑같이 그리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술적 부분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지막까지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결국 마음이라 말씀드렸다. 내 안에서 움직이려고 하는 그 느낌과 표현을 억누르지 말고, 이상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도 자꾸 그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수강생 분들은 수업의 중반부터는 각자의 강점을 스스로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동양화 전공의 느낌을 살린 수채와 풍경화를 그리고 어떤 분은 자신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담아 색연필화를 그렸다. 또 어떤 분은 약간의 떨리는 손으로 자연스럽게 멋있는 어반 스케치 시리즈를 완성했고, 또 어떤 분은 오일파스텔을 이용해 에너지가 넘치는 색과 표현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나는 최대한 스스로의 내재된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잃고 단순히 모사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가 시작되는 한 주 전에는 작업실을 개방하고 원하는 누구든 와서 자신의 작업을 다듬고 완성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미술 비전공자로서 나의 첫 전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함께 수업했던 5명의 수강생은 나에게 단순히 수강생을 넘어선 예비작가로서의 의미가 함께했다. 이들이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예술과 예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예술 친화적인 곳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공공미술의 한 가지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전시작품 반입 1시간 전, 마지막 수강생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작품을 옮기기 위해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 안아 든 마음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다음날, 50여 명 주민들의 작품이 오픈과 동시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공간에 전시되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국독립이라는 하나의 열망으로 3.1 만세 운동을 벌였던 그곳에 자리 잡은 <만세 갤러리>에서 서양화, 문인화, 도예, 목공예,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예술이라는 하나의 열망으로 뭉친 그곳의 모습을 천천히 감상했다.
<공감의 시작, 아트 감동진 / 주민 전시 작품>
'이 부분을 그리면서는 꽤 뿌듯하셨겠는데? 이 그림을 그릴 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분 정말 아마추어가 맞을까?'
각 작품마다의 생각을 조금씩 달랐지만, 이토록 예술을 원하고 스스로 그 주체가 되고자 갈망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조용히 작품을 바라보며 지난 2달여간의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5명의 수강생과 함께하며 가장 기쁘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그들이 각자의 그림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이었다. 그 표정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앞으로 함께하게 될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상상하게 할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작가들은 개인 작업활동을 통해 작품도 함께 그려냈다. 나도 부끄럽지 않을 그림 그리고 나를 속이지 않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썼다. 함께한 선배 작가들의 그림과 또 한편에 아직은 어린 내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나도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도 예술이 쓰고 있던 무거운 가면을 한 꺼풀 벗겨낸 시간을 그려낸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