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

by 정아

가끔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이 있다. 그것들은 쉽사리 잡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놀랍도록 깊숙이 내 안에 들어와 늘 그렇게 말해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원래 그것들이 그렇게 말하도록 그려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단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들은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하지만 늘 같은 방향을 향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800px-Vincent_van_Gogh_-_The_Church_in_Auvers-sur-Oise,_View_from_the_Chevet_-_Google_Art_Project.jpg L'église d'Auvers-sur-Oise, Vincent Van Gogh, 1890


2017년 11월, 나는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유화로 표현된 빈센트의 세상과 시선 속에 흠뻑 빠져있었다. 영화가 후반부로 흐르는 시점, 빈센트의 시야에 길을 걷는 중년 여성의 뒷모습과 함께 오베르의 교회가 보인다. 생명력을 품고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던 그 순간은 곧 빈센트의 붓터치와 함께 캔버스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순간 그림으로부터 들려오는 어떤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뒤를 돌아 내 손을 잡아줘요"


나는 그 후로 <오베르의 교회>를 보면 자꾸만 그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곧 치열하게 생과 싸웠던 빈센트를 떠오르게 한다. 홀로 갈림길에 서서 따뜻한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빈센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에게 들렸던 그 소리는 마치 앞서가는 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도 함께 가자"라고 소리치며 달려가고 싶어 하는 빈센트의 간절한 외침같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하고 온화한 빛의 세계 속에 스며들어 평화롭게 살고 싶은 빈센트 마음 한 편의 소리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빈센트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몇천 번 되뇌었을 빈센트를 위로하고 싶었다. 뜨겁고 무거웠을 그의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빈센트가 말과 글로써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림에 담았듯 나도 그를 위해 그림을 한 장 그려보았다.


과연 빈센트가 웃고 있을까?


오베르의-교회.jpg L'église d'Auvers-sur-Oise, illustration by KJA, Digital Painting


나에게 말을 걸어온 또 하나의 그림은 이인성의 <해당화(1944)>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으로 마주 한때는 2014년 부산의 한 미술관이었다. 그림 속 흰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소녀는 나를 바라보며 거듭 "그렇지 않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뭐가 그렇지 않은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순수하지만 슬픈 눈빛과 끊임없이 던지던 질문을 잊을 수 없었다. 다만 때가 되지 않았기에 내가 그 질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며 시간은 흘러갔다. 가끔 그녀가 문득문득 보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2020년 1월, 서울 덕수궁에 이인성의 <해당화>가 다시 전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녀가 던졌던 시선과 질문의 실체를 꼭 알고 싶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KTX를 타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달렸다. 우리는 마치 옛날 영화의 주인공처럼 가장 마지막 전시실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나에게 물어본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냐고.


그런데 말이다, 그녀가 달라져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았다. 생각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약간은 허무하고 당황스러워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던 알 수 없는 질문은 사라진 걸까? 나는 이제 대답할 의무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등지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해답을 얻었을까?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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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앞에서는 마음이 복잡하여 더 이상의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밤의 덕수궁 정원을 산책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혼자인 시간이 많아진 나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홀로 스쳐 지나갔다. 겨울밤의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자 나는 이제 그녀와 함께 이어졌던 기억들이 조금씩 이해되었다.


나는 참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았고 그렇게 살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모두가 편한 가운데 늘 나의 마음만 불편했다. 그 가운데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나에게 '너는 괜찮냐'라고 물었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절대 할 수 없었던 그 질문을 그렇게 나에게 했던 것이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녀가 더 이상 묻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녀가 그런 나를 알아봐 준 것이다. 내가 나를 찾은 동안은 그녀에게서 어떤 말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또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오면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 앞에 서서 거짓 없이 던져지는 물음과 시선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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