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씨의 방 - 이름 없는 사물들

서동 작은 미술관 - 오감만족 우리 동네 미술관

by 정아

XX 씨의 방 - 이름 없는 사물들

서동 작은 미술관 - 오감만족 우리 동네 미술관

2020.9.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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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씨가 자리를 비운 지 한 달 남짓 되어간다.

그가 없는 공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나는 자라나기 시작했다."




전시의 시작에서 이 한 문장을 읽으며 애니미즘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두 동원해 작품의 영혼과 생명력을 느끼며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다.


KakaoTalk_20201020_174312960_13.jpg 큰 덩어리, 2020, 200*136*214cm, 천·자작 합판·송풍기



마음속 다짐과 함께 처음으로 마주한 존재, <큰 덩어리, 2020>는 무엇인가를 가득 채워 있는 대로 자신의 엉덩이를 부풀렸다. 인간을 위해 늘 희생하던 납작하지만 적당히 폭신한 느낌의 엉덩이는 사라지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 한편으론 귀엽기도 하다. 이렇게 새롭게 자라난 공간은 직관적으로 보기에 아주 가벼운 기체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득 대학시절 입사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던 때가 생각났다. 실제의 나보다 부풀려 과장되게 쓰인 자소서는 선택받기 위한 몸무림의 극치였다. 그래서일까, 다시 바라본 <큰 덩어리, 2020>에는 어딘가 애잔함이 묻어있다. 마치 '이렇게 포근하고 폭신한데 앉지 않을 거야?'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얘, 그렇게 애쓰지 마'라는 한 마디를 건네며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KakaoTalk_20201020_174312960_17.jpg 솟아오르다, 2020, 155*32*210, 천·수집한 가구·송풍기

어디선가 수집되어온 전통가구 스타일의 문갑이 달려있는 탁자는 아주 꿈이 많았던 것 같다. 집주인이 사라지길 기다렸다는 듯, 비어있는 단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길고 높게 무언가를 뻗어 올리고 있다. <솟아오르다>라는 이름처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도상의 한 지점, 우리가 보는 지금의 이 모습은 사실 아주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탁자의 꿈은 어디까지 자라날 것인가? 탁자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흰 내가 꿈도 없는 줄 알았지?"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이 가구들이 어쩌면 동시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짙어진다. 스스로의 뛰어남을 강조해 좁아진 그 자리에 계속 남거나 혹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의 진화를 거듭하는 가구들은, 4차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환경이 변화하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직업군의 사람들의 선택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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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려진, 2020, 115*15*167cm, 천·자작합판·송풍기

몇 걸음을 옮겨 숨을 가득 채워 자신을 부풀린 거울 <흐려진, 2020> 앞에 선다.

나를 비추는 도구로서의 거울은 이제 더 이상 과거만큼 사랑받지 못한다. 대신 수많은 셀피 카메라(어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모두들 그 속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흐려진, 2020>은 조작되고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수록 실존하는 자신이 흐려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스스로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비춰온 거울은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빛나는 혜안을 가지고 진화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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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자라나는, 2020, 106*62*226cm, 천·자작나무·송풍기 오)분리되고 연결되어가는, 2020, 129*215*203, 천·자작합판·송풍기

전시의 마지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매트리스와 마주하게 된다 <자라나는 매트리스, 2020>. 모든 것이 가벼워지고 미니멀 해지는 지금, 채우고 부풀려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오히려 퇴화에 가까운 양상인 듯 보인다. 매트리스는 이제 몸을 누이는 보금자리가 아닌 다른 기능을 하고 싶은 것일까? 순간 저 위에 누워있을 자신을 상상해 보니 본래는 죄수들의 고문 기계로서의 역할이었던 러닝머신이 떠올랐다.


이번 전시를 구상한 STUDIO 1750의 김영현, 손진희 작가는 5년 전 프랑스 레지던시에서의 작업이 현 작업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과거에 프랑스 전자회사의 대리점이 있던 곳이었다. 그 주변으로 버려진 가구와 가전이 쌓여있던 한 장소에서 가구의 일부를 수집하여 만든 오브제 작품으로 시작된 작업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오브제들은 현존하고 있지만 작가의 과거와 앞으로 이어질 미래의 작업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마치 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는 묘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앞에 서면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이 이름 없는 사물들은 동시대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그 작은 소리에 하나씩 응답하다 보면 어쩌면 지금의 나와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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