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단잠에 빠져있던 나는 창밖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에 눈을 떴다. 순간 고민한다. 자리에서 일어나긴 싫지만 나는 저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만 같다. 그 소리는 커졌다가 또 작아졌다가 그러나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무슨 놀이를 하는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자꾸 그 소리를 따라간다. 소리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소환한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나의 첫 설치미술 전시는 이렇게 어린 시절 작은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전시 구상을 하며 떠올렸던 기억들은 아주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어떤 기억들에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새벽에서 아침이 되며 작은 햇살 한 줄기가 내 살결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 분명하지 않은 소리는 시각적 이미지에 더해져 기억을 더 밝고 따뜻하며 살아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나의 기억과 소리, 이것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전시를 구상 중이었던 어느 늦여름, 나는 한 가지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소리는 내 어릴 적 기억들에서 받았던 느낌과 아주 비슷한 심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서 또 한 가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내가 일곱 살 때 즈음 살던 곳은 구포라는 지명을 가진 동네였다. 파헤쳐지고 솟아오른 공사장, 그리고 그 사이로 피어난 들꽃과 높지 않은 산과 작은 개울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어느 계절인가가 되면 개망초가 동네 여기저기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개망초가 참 좋았다.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개망초로 부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기억이 떠오른 순간, 나는 개망초의 기억을 소리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고 작은 그 꽃들이 한대 모여 바람에 한들한들 거리며 어린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작업을 하면서도 종종 그 순간을 떠올렸는데 자꾸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아무것도 아닌 들꽃에 상상력을 더하고 행복해했던 내가 순수하고 귀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개망초>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을 만들며 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비가 오던 날의 기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장마기간이었던 것 같다. 뒷산 개울에서 넘쳐흐른 빗물들이 동네의 비탈길에 쏟아지며 생명력 가득한 온갖 것들을 실어 날랐다. 그 안에는 나뭇잎, 꽃잎, 부러진 가지, 돌멩이, 무당개구리, 곤충 등 선명한 색을 지닌 것들로 가득했다. 어른이 되어서 비 오는 날의 기억은 늘 흐리고 무채색이었는데 내 어린 시절의 비 오는 날은 아주 다양한 색이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토록 선명한 기억인데 어떻게 망각하고 살아왔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기억을 다시 잊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개망초>,<비가 오는 날>, 2020, 김정아 여름부터 겨울까지 작업을 하며 가끔 양심가책을 느낄 만큼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만들고 있는 작품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좋아 보이게 만들지?'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작품 속에 마음과 진심을 담기보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겉모습을 더 좋게 만들어 사람들의 환심을 살까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사명감에 대해 마음속에 품었던 신념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생각에 스스로를 꾸짖었다.
나에게는 예술가로서의 작은 사명감이 있다. 말도 글도 많이 부족한 내가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방법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작품 속에 위로를 담는다. 일상에 지친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잠시나마 내가 건네는 위로를 읽어주길 늘 바란다. 나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인이 되거나 새롭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주변을 좀 더 밝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예술이란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예술은 없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예술도 없다. 예술이란, 구상하는 순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이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 많은 별들 가운데 여리고 예민한 별들은 내가 작업하며 했던 수많은 생각과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공유할 것이다. 그러니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그리고 그 무게에 맞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늘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무사히 전시를 올리고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과 어우러지는 작품들을 보며 나는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김용준 선생님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며 아스라한 완전한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결국 완성된 인격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되기 전에 예술이 나올 수는 없다. 미는 곧 선이다. 미는 기술의 연마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의 행위화에서 완전한 미는 성립 된다.
-김용준, 근원 수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