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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Nov 22. 2019

아를의 자연

Langlois Bridge at Arles

Langlois Bridge at Arles, illustration by KJA, Digital Painting



오늘 아침,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멋진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럴 때면 작고 하얀 꽃잎들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곤 한다.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순간순간 땅이 진동하는 걸 바라볼 각오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하얀색 화면에는 파란색과 라일락색, 노란색이 많이 있다. 
하늘은 하얗고 파랗다.

- 빈센트 반 고흐, 1888.4.9-








작가노트


빈센트는 강 건너를 응시하며 손을 들어 작은 바람을 일으킵니다. 빈센트의 작은 친구는 그의 무릎을 타고 올라와 무게를 싣습니다. 조그맣고 가벼운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 작은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파리에서 아를로 옮긴 빈센트는 아를의 봄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봄꽃을 가득 피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화폭에 많이 담았습니다. 그리곤 자연에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가끔 자연의 아름다움과 마주할 때면 무심히 내버려 둬도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데, 굳이 아름답기 위해 애쓴 나의 그림이 그리고 나의 노력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제 그림 아래에 달린 짧은 감상평이 수많은 '어떤 의미'중 한 가지를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한 가지 의미를 발견하니 갑자기 수많은 또 다른 의미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을 파랑과 초록 사이 적당한 색으로 칠했을 때, 들어 올린 빈센트의 손을 그려 넣었을 때, 나의 사진을 강 건너 소녀의 모델로 삼았을 때. 이 모든 순간의 느낌과 기억들이 저에겐 '의미'였단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끔이지만 형식적이지 않은 진심의 감상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격상 사람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많지 않은 저는 이렇게 가끔 올라온 글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아직은 얼굴을 마주 보고 감상이나 비평을 듣는 것이 부끄러운데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뒤에서 조용하지만 세심하게 챙겨보고 있습니다. 제 그림이 누군가의 한순간에 '의미'가 된다는 것은 저에게도 큰 '의미'있는 일이 됩니다. 저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붓의 움직임을 따라 몸과 마음을 맞추어갑니다.







º 여행자를 위하여

Langlois Bridge (Pont Van Gogh (de Langlois))

ADD : 13200 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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