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Jan 08. 2020

우리가 범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원죄


illustration by KJA


신을 믿는 인간들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짊어지는 원죄가 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선악과를 베어 물면서 이후 모든 인간들이 이어받은 죄이다. 물론 나는 철저히 무신론자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원죄는 짊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를 언제나 무겁게 하는 원죄가 있다. 자연계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지구라는 공간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부터이다. 그 죄를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지만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데 어제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와 함께 내가 어렴풋이 느끼던 원죄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내가 느끼던 죄의식의 정체를 '호모 사피엔스의 원죄'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지구에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 태어났기에 짊어질 수밖에 없는 원죄, 그것은 내가 현재의 시점에서 어렴풋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  


호주 해안 모래밭에 찍힌 인간의 첫 발자국은 곧바로 파도에 씻겨버렸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내륙으로 진격하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이로부터 몇천 년 지나지 않아, 대형동물은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몸무게 50킬로 그램이 넘는 호주의 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다. 이보다 작은 종도 대량으로 사라졌다. 호주 전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재조정되었다. 이것은 지난 수백만 년 이래 호주 생태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이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의 원죄' 중 아주 일부분에 불가한 것이다. 그러나 4만 5천 년 전 사피엔스는 한 생물종의 멸종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들의 다른 생명에 대한 무지가 그러한 학살과 절멸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 속에는 더 많은 구체적 원죄의 가능성과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 


Saeed Khan | AFP via Getty Images


나는 이 부분에서 지난 6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호주 산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의 자연이, 우리의 친구들이 불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또 다음 세대에 덧씌워질 새로운 원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보다 괴로움이 앞섰다. 불은 방화 일수도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발화 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한 모든 화살표는 호모 사피엔스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4만 5천 년 전 사피엔스보다 현재 공생하는 생물종과 지구환경시스템에 대한 더욱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진화된 인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저질렀던 대량 학살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하루빨리 호주 산불이 진화되길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에서 만난 순간의 찬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