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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an 13. 2020

세잔의 그림에 대해 물었다

세잔의 감상

세잔의 그림에 대해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서양미술사 스터디의 마지막 주를 앞두고 있다. 오늘은 다음 주 시간을 위해 책상 앞에 서양미술사 책을 펼치고 앉아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의 작품 '벨뷔에서 본 생트 빅투아르 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폴 세잔, 벨쥐에서 본 생트 빅투아르 산, 1885년경


나는 작품을 보고서 감상을 강요하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 인간은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감상을 강요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주 잘도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굳어져 어느새인가 자신의 본심 인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전시회에서나 도판을 통해서 그림을 볼 때도 감상을 생각하거나 말하기는 '그냥 바라보기' 이후의 과정으로 오롯이 남겨두어야 한다.


폴 세잔. 내가 그를 알고 그의 작품을 본지가 거의 27년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처음 본 그의 작품은 사과가 있는 정물이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자 당시 어머니가 큰 맘먹고 구매한 '엘리트학생대백과사전 11권' 음악/미술 편에 있었던 그림이다. 당시 나는 아주 건방진 아이였다. 세계적인 거장이라 칭송받는 작가들의 그림을 내 마음대로 평가하고 그들의 그림에서 수정할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그 당시 내가 세잔에게 했던 충고는 사물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할 것, 그리고 빛의 강렬한 표현에 더욱 신경 쓸 것. 정말 실소할 일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생각을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그 순수한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폴 세잔, 정물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 그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원칙을 깨고 좀 더 자세히 깊게 그의 그림 바라보기를 계속한다.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표현 방식을 통해 무엇인가를 묘사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사물이나 감정이 될 수도 혹은 어떠한 개념이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보면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마지막을 열어주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런데 세잔은 나에게 닫힌 결말을 준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필사적으로 평생을 쳐 시도하고 연구했던 그 결과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의 그림과 나 사이의 영역에서는 오로지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만 볼 수 있었고,  나의 생각 같은 것이 자랄 수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세잔의 그림에 제대로 된 감상을 내놓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나도 예술가로서 좀 더 고뇌하고 오래 연구를 거듭하면 그가 남긴 열린 결말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추켜세운 그의 위대한 지점을 영영 발견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그 두려움을 더 이상 두려움으로 남겨두지 않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곧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스터디가 끝날 것이다. 나는 이 스터디 이후에 김진영 선생님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읽기 강의를 예약해 두었다. 이때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나의 견해를 그 순수했던 시절처럼 건방지고 여과 없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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