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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Feb 02. 2020

로트렉, 사랑의 샘을 가진 화가

툴루즈 로트렉展 후기

MOULIN ROUGE라고 적힌 노란색 사인 아래 테슬 장식이 달린 새빨간 커튼을 양쪽으로 열어젖히면 어렴풋 청각으로 전해지던 캉캉의 리듬이 시각으로 전환되고 우리는 화려했던 별들의 시대 벨 에포크에 도착한다.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주의 작은 거인



Intro

춤은 꽤 격정적이다. 우리가 과도한 신체활동 중에 그 어떤 진지한 사색도 할 수 없듯 그녀들은 캉캉을 표현하는 동안 자신의 삶과 현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을 듯하다.




Section 1. 연필로 자유를 사다.


Cover for Les Courtes Joies,1897, published 1925,  Toulouse-Lautrec (art institute CICAGO)


#Cover for Les Courtes Joies , 1897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로트렉의 웃는 여인들은 무대 위의 여인들이었다. 무대 위 그녀들은 웃고 있는 모습이었고 그 웃음 속엔 늘 슬픔의 기색이 느껴졌다.


조금 멀리서 이 작품을 보고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무대 위 무희와 같은 웃음을 띠고 있는 생선을 파는 상인의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저 사람 왜 저기서 저렇게 진하게 웃고 있는 거지?' 그리고 곧 제목을 보았다.


<Cover for Les Courtes Joies ; '짧은 기쁨'의 표지>


제목을 보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곧 드로잉 속 순간을 상상하게 되었다. 여인은 지금 막 손님에게 선택된 생선을 손질하는 중이고 그 와중에 기쁨의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생선을 팔면 돈을 받겠지. 그리고 오늘 팔아야 하는 생선의 숫자가 하나 줄어드는 거야.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어. 어쩌면 생각보다 집에 빨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의 짧은 기쁨의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쁨의 순간이 지나면 지루한 기다림과 오늘 들여온 생선을 다 팔아야 한다는 중압감을 견디며 또 다른 표정을 짓는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트렉은 짧지만 기쁨의 순간을 선택해서 그녀를 그렸다. 그가 저토록 짧은 기쁨을 인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쁨 뒤에 이어질 감정들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뒷면은 분명 돈키호테와 산초의 뒷모습이겠지.'라고 생각하니 슬픈 생각이 조금은 가셨다.




Section 2. 상류사회를 비웃다.


Eldorado: Aristide Bruant,  1892, Toulouse-Lautrec


브리앙의 공연을 위해 제작했던 포스터 시리즈는 "Simple is the best"의 모범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형태며 색상을 모두 단순화했다. 그러면서도 옛 스승들에게 배웠을 법한 진지함과 안정감을 잃지 않았고 포스터에 필수적인 텍스트가 들어갈 공간도 적절히 전체 그림에 녹아들듯 남겨두었다. 특히 로트렉은 이 포스터에서 텍스트가 그림 뒤로 숨어 들어가는 효과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브리앙을 위해 제작했던 일련의 포스터들은 보는 이들에게 단순함이 주는 호기심을 을 자극하고 아티스트 브리앙을 지금까지 살아있게 만들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영원한 삶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브리앙의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로트렉에게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았던 어느 몽마르트의 가게 주인처럼, 위대함을 알아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Section 3.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


Bartet and Mounet-Sully, in Antigone, 1893, Toulouse-Lautrec,  (art institute CICAGO)


 Section 3. 에는 19세기 말 파리의 다양한 쇼와 공연의 장면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과 로트렉이 1893년 르 카페 콩세르 컬렉션을 위해 제작한 석판화 연작들을 볼 수 있다. 그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한 장의 석판화 그림이었다.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연극의 장면이겠거니 했는데 글쎄 연극이 무려 '안티고네'였다.


벨 에포크의 정점에서 안티고네라니?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좋은 시절에 안티고네의 존재는 어쩌면 정점에 다다른 이 좋은 시절의 추락의 예감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추락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이다. 사회는 풍요롭고 도시는 밤낮으로 반짝거리는데 개개인의 마음은 한 없이 고독하고 쓸쓸한 시절,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토록 좋은 시절에도 무의식 속 불안과 늘 함께 였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시대를 떠나 로트렉의 입장에서 바라본 안티고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안티고네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아버지이자 오빠였다.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하고 싶은 않은 현실을 껴안고 태어났다. 그것은 로트렉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내가 바라보는 안티고네와 로트렉이 바라본 안티고네는 분명 다른 인물이었을 것이다.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든 안티고네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한다.





Section 7.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마지막 섹션에는 로트렉의 포스터 31점이 전시 중이었다. 그의 감각적인 드로잉과 거기에 대해진 텍스트의 레이아웃을 보고 있자니 그의 재능이 마냥 부러웠다. 그는 훌륭한 화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엎드려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뒷모습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와 달랐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로트렉전을 감상하며 그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꾸 로트렉이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외모에서 풍기는 남들과는 다른 특징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늘 존재했던 것 같다. 짝사랑의 감정을 떠올리면 짐작이 간다. 심지어는 아버지까지 가까울 수 없었으니 그 애타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 같은 사랑을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쏟아낼 준비가 돼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몽마르트르를 또 어느 날은 춤추는 무용수를 또 다른 날에는 배에서 처음 만난 여인에게 그 사랑을 쏟아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는 늘 그의 그림이 남았다. 나는 오늘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로트렉의 사랑의 결실의 보았다. 그 사랑은 돌에 새겨지고 때로는 아연에 새겨지고, 그리고 부드러운 흑연의 놀림으로 그려져 나의 마음 속에서 리듬을 일으킨다.



Henri de Toulouse-Lautrec | France |  1864 –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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