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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Feb 05. 2020

어느 날 덕수궁의 별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MMCA 덕수궁 1층 에는 <광장>이라는 단어가 힘이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필체로 걸려있었다. 사실 내가 덕수궁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전시 중인 이인성의 <해당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제와 오늘 오전에 걸쳐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가들의 작품 전시를 연달아 관람하고 오는 길이었다. 벨 에포크, 프랑스에서는 그 시절을 그렇게 불렀다. 좋은 시절, 그 시절 화가들이 남긴 그림만 보아도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전혀 다른 문화와 시대를 살고 있는 2020년의 나에게도 여전히 그 시절은 벨 에포크로 보였다.


1 전시실에 들어서면서도 온통 이전 전시였던 후기 인상파 작품의 시각적 환상에 빠져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른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분의 눈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정곡을 찔린 내가 움츠러들수록  눈빛은 더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간재 선생 80세 초상, 채용신, 1920
좌우 손에 공(公) 자를 쥐고
마음엔 곧음을 간직하였네.
이미 곧고 또 공정하니
의당 큰 덕을 이루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마음이 움직임에
열에 아홉은 삿되고 비뚤어졌나.
옳음을 구하고 그름을 버리는 것은
회암 주자게서 남긴 유훈이네.
마음은 다잡아 보존해야 하고
기운은 단속하고 묶어야 하네.

경신년(1920) 5월 상순.

전 부사 종 2품 채석지 가 모사하다.


나는 그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돈과 명예를 좇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말이다. 가끔은 흔들리는 곧은 마음을 위해 간재 선생의 초상을 한 번씩 들여다봐야겠다.









조금 더 걸어가자 또 한 분의 금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의 그림을 돌아봤을 때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앞에 두고는 위대한 예술을 낳지 못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니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근원 김용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완성'이란 전력 질주하여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걸음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원 김용준 초상, 변월룡,1953




3 전시실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림이 있었다. 우선 그림 앞에 서서 선입견 없이 잠시 바라보았다. 서양의 향기가 짙은 화풍에 아주 작은 한 사람과 늙은 남자와 그 보다 젊은 여자가 있다. '아주 작은 한 사람은 아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작다. 비율을 무시하고 작게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을 보았다. <가족>


가족, 변월용,1986

변월용의 <가족>. 나는 마지막 전시실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을 보고 나서 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속 소년이 이토록 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라를 잃고 아버지마저 잃은 어린 소년을 품어주었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거대한 마음과 희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붓터치는 굵고 적당한 힘으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으며 호랑이 사냥꾼이 었던 할아버지의 기개와 남편 없이 혼자 자식을 길러낸 어머니의 강인한 모성애를 훌륭히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4 전시실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다.

해당화, 이인성, 1944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본 때는 2014년 부산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언제든 한국 근대미술을 이야기할 때면 이 그림이 떠오르곤 했다. 그림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렇게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 속 그녀는 시선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그렇지 않니?' 하고 묻고는 상대가 동의할 때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순수하지만 슬픈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물음의 실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묻고 있음에도 눈이 마주치면 그 모순적인 눈빛 속에 빠져 본질과 멀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저 때가 되지 않았다고 여겼다. 억지로 답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그녀를 다시 마주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 작품 앞에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그녀는 누구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면 그녀가 나에게 물었던 알 수 없는 질문은 사라진 걸까? 나는 이제 대답할 의무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등지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해답을 얻었을까? 그녀가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고 느껴지자 너무나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한 그녀를 등지고 해가 저문 덕수궁의 밤을 산책했다. 그러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우리의 벨 에포크를 빼앗았구나.'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고흐나 드가 대신 이인성과 변월룡을 최고의 스승으로 삼아 사랑하고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깊은 원망의 싹이 다시 자라 날 것 같았다. 그런 찰나 동시대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이 반짝이는 광경을 목격했다. 솟아오르던 원망의 감정이 순간 누그려져 반짝임을 쫒아 빠른 걸음을 옮겼다. 


대한연향, 오비비에이(이소정, 곽상준)



그것들은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반짝였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반짝임을 이어받아 겨울밤을 수놓고 있었다. 나도 언젠간 그 자연스런 빛을 이어받은 반짝이지만 뽐내지 않는 별이 되고 싶다. 어느 날 덕수궁의 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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