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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Feb 12. 2020

First Reflection

새로운 연작 작업을 시작했다.
제목은 First Reflection이라 정했다. 



illustration by KJA , First Reflection #4


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나의 모습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질문에서부터 이번 작업이 시작되었다.


심리학에서는 대략 18개월 이후부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 실험은 이렇다. 거울을 보여주기 전 아이의 코에 빨간 립스틱을 칠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거울을 보여준다. 만약 아이가 거울 속의 모습이 자신임을 인식한다면, 코를 만질 것이다. 


'내 코에 뭐가 묻은 거지?'




처음 내가 나를 알아본 그때,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 기억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실 '처음 내가 나를 인식했을 때'라는 상황조차 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주제였다. 기억의 퍼즐이 단 한조각도 남아있지 않으니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난 비교적 양쪽 눈썹을 자유롭게 움직 일 수 있는데 어쩌면 처음 나를 알아봤을 때 왼쪽 눈썹을 치켜올렸었는지도 모르지'


'난 어려서 적은 머리숱 때문에 원치 않은 빡빡이 머리를 했는데 하필 내가 날 처음 볼 때 머리가 없었지. 그래서 지금도 민머리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몰라.'



illustration by KJA , First Reflection #2


나는 내가 타자와 구별되는 존재로 실존함을 알게 된 순간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린 것 같다. 그 발견은 나의 역사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할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주인공은 인간 대신 개와 고양이가 되었다. 그들의 'First Reflection'은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어느 순간 자아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도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 자아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모하는 것임도 깨달았다. 그러나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걸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10일 정도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그 기간 동안 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을 순간순간 마주했다. 나는 소심한 편이고 처음 본 사람과 만나길 꺼려하고 영어 울렁증도 심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처음 본 사람과 많은 대화를 했고 저녁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식사를 했으며 맘에 드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영어로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그리고 잠이 많던 시절이었지만 새벽마다 일어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하루 일정을 체크하는 부지런함을 보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가 아니군. 이건 여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야'


그런데 요즘 그 생각이 좀 바뀌었다. 여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행은 사람을 한없이 자유롭게 한다. 특히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다. 고향에 두고 온 기억만 구겨버리면 나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그렇게 획득한 자유로 나는 내 안에 숨어있던 자아를 꺼내 마음껏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그때 그렇게 낯설게 튀어나온 나는 사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진짜 나'였던 것이다.


이번 연작을 통해 개와 고양이의 사랑스런 모습 뒤에 숨어있는 진짜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illustration by KJA , First Reflection #5


    


https://grafolio.naver.com/story/1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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