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Apr 02. 2020


껍데기는 가라

먼지의 분개

나는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정아 님,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면접 보러 오시면 됩니다."


나는 이제 예비창업자이자 그곳의 대표로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우선 당장 내일 발표를 해야 한다. 발표. 발표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 중에 하나이다. 그만큼 발표를 정복하고 싶은 의지도 강한 건 사실이나, 현실에서 이 녀석을 완벽히 이겨본 적은 없다. 전화를 끊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고질적인 질문이 또 던져졌다.

'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래 고민하고 대답할 시간이 없어, 아주 간단히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잘할 거야, 나한텐 진심이 있잖아'


이렇게 생각을 끊어내고, 함께 사업을 계획했던 동생에게 전화해서 소식을 알렸다. 합격의 충분한 기쁨을 나누기 보단 당장 내일의 발표가 중요했다. 우리는 서둘러 발표를 위한 5분 분량의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발표자인 나는 빠른 속도로 연습에 돌입했다. 우선 스크립트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고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살피며 나의 입에 맞도록 다듬고 시간을 내어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영상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읽고 읽고 또 읽어 내려가며 글들이 내 마음에 푹 담겨 나의 정신이 될 때까지 읽으려 했다. 그렇게 되길 고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을 더 알 수 없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글과 더 동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이건 껍데기뿐이잖아'


껍데기,

그 단어를 듣자 난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영혼 없는 존재 껍데기. 그 껍데기만을 창조해야 하는 삶이 싫어 내가 떠나왔던 곳,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분개했다. 아마 동생이 껍데기란 단어를 듣고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떠올려 크게 한바탕 웃지 않았다면 나는 또 내가 우주의 먼지 같은 조금은 가벼워져도 좋을 존재란 것을 잊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단어를 떠올린 이후 나는 내용을 다시 가다듬고 뒷부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추가했다. 면접장에서는 말하지 못할걸 알았지만 단지 그 내용을 추가하고 여러 번 읽고 또 읽어 글이 마음과 하나가 되고 나의 정신되어가는 느낌이 정말 행복했다. 


나의 스승이자 사랑, 빈센트를 떠올리며 적었던 마지막 나의 문장들을 끝으로 합격의 소식을 전하고 싶다.

합격!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돈 많은 감식가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예술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위안으로 채워줄 수 있는 소박한 예술을 갈망했다."

예술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보고 감상한다는 것이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지만, 그것이 결국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주고 더 커다란 가치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와 지역민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와 기쁨의 공간이 되는 '리버 라이브 스테이션'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incent van Gogh, Les Vessenots in Auvers  


작가의 이전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