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에 대해서
동생이 공유형 오피스에 입주하고 얼마 후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엔 털이 복슬한 하얀 고양이가 아주 예쁜 옷을 차려입고 화장실에 앉아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하쿠였다.
하쿠는 버려진 아이였다. 2살 여자, 중성화 조차 되어있지 않고 2킬로그램도 나가지 않는 무게를 가지고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리고 곧 하쿠에겐 생과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졌다. 뼈아픈 시간 속에서 누군가 하쿠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쿠는 다시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그 덕분에 따뜻한 봄이 가까운 어느 날, 나는 하쿠를 만났다.
하쿠를 처음 만난 날 느꼈던 하쿠의 보드라움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보고 싶고 그리고 만지고 싶었다. 촉감의 기억이 거듭 되살아나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그리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이상은 그릴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는 아직 그릴 수 없는 것이 많다. 이건 한편으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나의 깨달음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며 한편으론 나의 고집스러운 개똥철학의 반영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 하쿠는 나에게 그릴 수 있는 존재였다.
현재까지도 거장이라 칭송받는 초상화의 대가들은 모델의 외면뿐만 아니라 속에 있는 내면까지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렸다. 아주 오랜 시간 그리기도 했고, 그러다가 중간에 퇴짜를 맞기도 했으며, 작업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림을 넘겨주기도 했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당시 사교계의 명사였던 쥘리에트 레카미에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제자에게 초상화 작업을 빼앗겼다. 그리고 모나리자는 어떤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죽을 때까지 모나리자를 끌어안고 그림을 주문자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다비드와 다빈치의 모델이 된 두 사람은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와 마주 보게 되었다.
하쿠를 그리며 한동안 그녀의 털과 그리고 색이 다른 두 눈과 빨간 리본을 바라보며 행복했다. 그녀의 부드러움과 그녀의 우아함의 근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 돈을 받을 것도 아니었고 그림을 준다한들 하쿠가 기뻐하지도 않을 테지만 그냥, 즐거웠다. 하쿠는 나에게 마음의 부드러움과 공연한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주에 동생의 사무실에 가는 길에 하쿠의 그림을 엽서로 인쇄했다. 그리고 하쿠의 가족분에게 드렸다. 엽서는 두장이었는데, 한 장에는 아주 짧게 수술한 하쿠의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도 썼다.
하쿠의 가족분은 고마워하셨지만 나는 그 고마움을 받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정확히 아주 명확히 그 부끄러움의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하건대 아직은 부족한 그림과 그림을 그리면서 하쿠의 내면까지는 다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하쿠를 그리게 된다면 그때는 그녀의 마음까지 담고 싶다. 그리고 그녀를 알게 된 나의 고마움의 마음도 함께 담을 것이다.
하쿠! 곧 보자. 언니가 놀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