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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09. 2020

아름다움이란, 사실은.

그림과 아름다움의 사이에서

이건 제도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아주 부드럽게 힘주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웃음기도 있었다. 




어느 날처럼 나는 스케치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스케치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이 전체적인 모양을 살피며 가벼운 터치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건 제도가 아니잖아요"

시선은 그대로 그림과 연필의 움직임에 둔 채, 그저 머릿속 생각을 지나가듯 툭. 그러면서 선생님은 나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선들에게 자유로움을 부여하고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그은 직선임을 증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의지를 스승 삼아 무작정 그림을 그리던 시기


아주 오랜 기간 이성의 영역에서 살아온 나는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 대상을 보이는 대로 정확히 모방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러니 곧게 뻗은 건물의 모습은 정확히 직선이어야 했고 도면을 그리듯 반듯한 직선을 긋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내 그림은 제도가 될 뻔했다. 선생님이 그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후 본능적으로 강박적인 선긋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건 제도가 아니야"


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어떤 형상을 완벽히 모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수치가 잘 못되거나 각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내가 목격한 아름다움의 순간을 표현하여 그것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또 다른 아름다움의 현상을 소환해 내는 역할을 맡은 사람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작품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란, 자신 안에 숨어있던 혹은 잊고 있던 아름다움의 경험과 느낌이 강렬한 빛과 온도를 가지고서 타오르는 순간이다. 우리가 작품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한 사랑과 경의라기보다는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쁨과 환희,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나의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의 그림과 마주한 어느 날


스스로의 내면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어떤 외부의 사랑과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예술은 그렇게 누구나의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던 아름다움을 상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예술가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시대에는 그것이 충격과 공포, 두려움이나 고통으로 다가가기보다는 따뜻함과 가까움, 편안함과 보드라움 같은 것들로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나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가깝고 편안하고 또 보드랍게 다가갈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성공한 그림 그리는 사람 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길 고대하며 오늘도 제도가 아닌 그림을 그린다.


Les vacances du Petit Nicolas, ILLUSTRATION BY 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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