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건다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이 이제 막 지나갔다. 나는 그 계절을 지내며 참 많은 꽃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내가 꽃들에게 건네는 첫인사는 거의 이런 식이다. "올해도 또 만났구나! 반가워, 다행이다!" 이 인사에는 반가움의 표시와 함께 겨울을 지내고 너와 내가 세상에 여전히 살아남아 만났음을 축하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다양한 계절의 꽃들이 있지만 특히 봄꽃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렇게 특별한 봄꽃들에게 반가움과 다행의 인사 뒤에도 "예쁘다, 수고했네." 같은 말들을 자주 건네곤 한다. 그리고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 " 내가 작년에도 인사했었는데, 기억하고 있니?"
나는 어릴 적부터 애미니즘적 성격이 강한 아이였다. 만물에는 모두 나처럼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을 바탕으로 생각과 감정을 지니며 어떤 대상과도 교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아정이 옛날부터 좀 특이했잖아, 식물한테 자꾸 말 걸고." 삼층 복도 끝 논리와 이성으로 둘러싸인 어린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하는 스스로를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보다. 그 친구의 기억처럼 오랫동안 말을 걸고 시선을 준 덕분에 나는 그들을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오랜 시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것 이외에 '나와 다르지만 생명을 가진 것'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한 존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여자였고 이름은 코나였다. 너무 작아 부서질 것 같은 그 아이와 거의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열 번의 벚꽃을 함께 보았다. 내가 보는 것을 그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기쁘게 느끼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봄엔 늘 함께 벚꽃을 보러 나갔다. 벚꽃을 볼 때마다 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과 더불어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년에도 꼭 같이 벚꽃을 보자, 코나 씨." 이제 더 이상 함께 벚꽃을 볼 수 없지만 내가 보는 벚꽃 속엔 늘 그녀의 대기가 감싸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한편으론 스승이었다. 인간만이 위대하며 인간만이 모든 자연을 완벽히 누릴 자격을 가졌다는 잔인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바꾸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감각과 경험을 전수받았고 모든 생이 있는 것들은 결국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떠나며 내가 아주 오래 살아야만 하는 운명 임도 알려주었다.
하늘을 벚꽃이 감싸고 땅에서는 광대나물, 개불알풀, 별꽃이 펼쳐질 때 나는 그녀와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을 떠올린다. 그녀는 나에게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았지만 늘 언제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와 대화했다. 그 증거로 지금의 내가 있다. 더욱 아무렇지 않게 나무에게 꽃에게 그리고 지나가는 늙은 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조금은 초점 없는 눈의 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