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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Aug 10. 2018

9. 놀이생태계와 연습이론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학습한 것을 연습할 기회를 준다. Play gives children a chance to practice what they are learning. 

–– Fred Rogers. American television personality 1928-2003 


어린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성인기에 필요한 기능이나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연습이론이라고 한다. 19세기 칼 그루스라는 미학이론가의 놀이 이론이면서 여태까지 그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연습이론에 중요한 맹점이 있다. 남자 아이들은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나 거친 몸싸움 놀이를 즐긴다. 또한 여자 아이들은 소꿉장난 류의 가장놀이를 하면서 성장한다. 연습이론에서는 이러한 보편적인 놀이를 성인기에 대비한 연습으로 바라본다. 

언뜻 보아 타당하지만 연습이론의 맹점은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정작 육아나 사냥 등의 성인기 활동을 한참 준비할 나이인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가 되면 그런 놀이들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세계의 모든 여아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어려서 소꿉놀이를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취학 연령이 되면 역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놀이에서 떠난다. 남자 아이들도 그 정도의 연령이 되면 레슬링 같은 놀이를 하지 않게 된다. 고전적인 놀이 이론 중에서 현대에도 가장 의미 있는 이론인 연습이론은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놀이생태계가 인류의 생존을 담보했던 장치라는 점은 연습이론의 맹점을 보완한다. 원시 사회에서 남성들이 수렵을 통해 부락으로 가져오는 식량은 부족 사람들이 섭취하는 칼로리 전체 중에서 대략 10%정도만 차지한다. 90%의 칼로리 즉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량의 대부분은 부락 근처에서 채집하는 음식물이다. 흔히들 원시 사회의 경제 형태를 수렵·채집 경제라고 하지만, 그 중요도를 따지면 채집·수렵 경제가 맞는 순서이다. 인류가 수 만년 동안의 원시 사회에서 석기를 활용하면서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육아와 식량을 모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수렵을 통해 얻어 온 동물성 단백질은 전체 식량 중에서 낮은 비중을 가졌다. 물론 부락 주변에서 식량을 채집하는 작업도 남성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니 식량채집이 여성들에게만 맡겨진 일은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동물성 단백질을 매우 필요로 하지만 수 만년의 기간 동안에 여성들이 채집한 식량 덕에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식량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피임법도 없었으므로 여성들은 가임기 내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했다. 한 두 명도 이상의 애들 데리고 나무열매 따고 풀뿌리 캐고 곡식을 흝으러 다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게다가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닌 석기시대에?

[1]

그런데 여성들이 애를 키우면서 살림과 식량 채집까지 해냈다는 건 실제로 현대 여성이 직장생활과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만 3세 정도의 연령이 되면 놀이생태계에 편입되면서 놀이생태계는 보육을 위한 장치로 작동하였다. 놀이생태계의 고참 여아들이 취학전 아동들을 담당하면서 어른들이 할 일을 보조했던 생활상은 아주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1960년대나 1970년대의 농어산촌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1950년대 생이나 1960년대 초반 생만 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여성이 드물지 않을뿐더러 중등교육을 받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경우도 허다했다. 학교 다닐 나이에 동생들 챙기고 부엌일 하고 농사 돕고 살림의 상당수를 담당해야만 했던 아픈 과거를 가진 중년 여성을 우리는 적어도 한 두 명이라도 알고 있지 않는가. 놀이생태계는 육아와 사회화의 상당량을 담당하여 원시사회가 육아 때문에 붕괴하지 않을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학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가임 연령 이전의 청소년기의 여아들은 육아와 보육의 책임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만으로 4~8세 정도의 여아들이 인형 아기를 돌보면서 소꿉장난을 하는 놀이를 하는 모습은 실제로 그 나이에 육아의 책임을 일부 맡았던 흔적이다. 놀이생태계에 편입하기 전 연령의 젖먹이들을 전적으로 놀이생태계가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단 한두 시간이라도 보육을 맡아줄 순 있다. 놀이생태계는 육아를 위한 장치로 작동하면서 원시부족사회가 붕괴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연습으로 보이는 육아와 관련된 놀이들은 실제 육아를 담당할 나이가 성인기가 아닌 한참 전의 시기와 관련이 된다. 즉 놀이생태계를 연습이론으로 살피면 본말이 거꾸로 된다. 놀이생태계의 여러 양상은 연습이 아니라 실행 기능을 가졌다. 남성의 경우 소년기를 지나면서 입사제의를 통해 성년기로 이행하였다. 입사제의는 며칠 만에 마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몇 달씩 계속되었다. 그래도 현대인만큼 성인기를 준비하는 유예기가 길지는 않았다. 입사제의를 받는 소년들은 혼자 힘이나 멘토 역할을 하는 성인에 의존하여 독립적인 생존 능력과 기술을 모두에게 증명해야 한다. 그 기간을 제외한 남은 인생은 또래집단과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짝을 얻거나 성인집단에게 인정을 받거나 또래집단 내부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모든 것이 다 또래들과 신체 능력을 겨루면서 이루어진다. 잘 달리고 잘 던지고 정확히 표적을 맞히고 육체적 고난을 더 잘 견디고 더 오래 헤엄치고 더 큰 목소리고 우렁차게 외치는 등등의 능력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남성에게 생존과 성공적인 번식을 약속했다. 현대의 여성 양육자들은 남자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측면 때문에 적지 않은 수고를 들이는 건 남자 아이들이 그만큼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 본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1]

안타까운 일이지만 원시 부족에 상당히 보편적인 ‘영아살해’의 관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만약 어떤 여성이 만

 3

세 미만의 영유아를 두 명씩 키우고 있다면 이 여성은 생산활동에 의미있게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젖먹이를 둘 데리고 음식을 채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애들 여럿을 돌보면서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원시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에 만

 3

세 미만의 아기가 있는 여성이 또 출산을 하게 될 경우에 신생아를 살해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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