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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Aug 10. 2018

10. 놀이와 서열

아이가 놀이할 때 만큼 진지하다면 인간은 거의 자기 자신에 가깝게 된다. Man is most nearly himself when he achieves the seriousness of a child at play. 

–– Heraclitus. Greek philosopher 535-475 BCE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이르기까지 남자 아이들의 놀이생태계는 서열이나 위계와 떨어질 수 없는 관련을 가진다. 남자 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나 승부를 가리는 놀이를 하면서 잠재적이고 유동적인 위계를 연습하고 쌓아간다. 인간 이외의 포유류를 보아도 수컷끼리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듯하다. 인간 역시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이 특히나 평등한 관계에 서툴다. 여성들이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를 잘 맺는데 비하여 남성들이 수직적인 인간관계에 비교적 익숙하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유인원이나 영장류를 봐도 그렇고 집단을 이루고 사는 보통의 대형 포유류를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수컷들에게 집단내의 서열은 목숨만큼 중요한 문제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에 교미와 번식을 독차지하다시피 하여 후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남길 수 있다. 그 외에도 서열이 높은 개체들에게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은 존경이나 경외를 표현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 상태에서 서열이 높은 개체는 보통 장수하기 힘들지만,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서열이 높은 개체가 장수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서열이 낮은 개체는 단명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자존감과 비슷한 것을 다른 동물들도 가진다. 

만약 동물들이 성체가 되어 서열을 정한다면 동물들의 삶은 말 그대로 쟝글이 될 것이고 집단은 재난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동물들의 삶은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은 육식동물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화롭다. 성체가 되기 전에 놀이싸움을 통해 서열을 잠정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 우리 안의 닭들이 먹이를 먹는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한 바탕의 싸움을 하여 ‘페킹 오더pecking order’라는 집단내 서열을 정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 조류나 포유류는 모두 어려서 레슬링 비슷한 놀이싸움을 하면서 힘의 우위를 비교해 본다. 휘파람새나 고물새등은 스파링을 하면서 논다. 흰 목 갈가마귀등의 새들은 ‘왕놀이’를 한다. 어떤 새 한 마리가 부리로 나뭇가지를 물고 흔들면 다른 새들이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면서 놀이싸움을 한다. 

이와 같이 동물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수컷들은 놀이싸움을 통해 개체의 힘과 스피드 등을 과시하면서 또래집단 내에서 서열을 정한다. 학교 교실을 관찰하면 인간 아이들의 적나라한 페킹 오더를 볼 수 있다. 같은 반 급우라고 아무에게나 별명을 붙여서 부르거나 심한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가볍게 툭툭 치거나 하진 않는다. 자신보다 약하거나 자신과 동급이라고 여기는 친구에게 위와 같은 행동양태를 보이게 된다. 남학생들끼리 싸움이 난 사례를 자세히 살피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친구가 건방진 행위, 즉 허용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남학생들의 싸움에서 서열싸움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흥미롭게도 암컷들의 경우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수컷들과 비슷한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청소년기 정도 해당하는 연령이 되면 수컷들과는 달리 승부를 결정짓는 놀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될수록 싸움이 적어진다. 이는 물리적인 해결책을 피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측면과 동시에 체격이나 여러 능력에서 각 학생들의 관계가 수평적이 되었다는 측면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보더라도 교실 내의 서열이 불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힘의 우열을 확인하여 서열관계를 피하려는 추세가 약해졌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 싸움이 적어졌다. 물리적 폭력에 의해 페킹오더를 정하는 학생들이 줄었지만 그에 반해 관계적 폭력이 늘었다. 놀이의 생태학에서 남자 아이들의 거친 몸싸움 놀이는 집단내의 서열을 쟁취하는 실행기능을 가진다. 남아의 대표적 놀이 역시 미래의 성인기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놀이가 아니다. 

이러한 점을 현대의 놀이생태계에 적용해서 살펴 보자. 취학 전후의 아동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성인들은 유치원의 교사들과 어머니와 할머니, 즉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성들은 실제의 싸움과 거친 몸싸움 놀이를 이해하지도 구분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구분을 한다 해도 이 침팬지 수컷들과 다름없는 아이들끼리 자웅을 겨루는 행동을 꺼리게 된다. 

남성 보호자에 비하여 여성 보호자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무조건 말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비해 아이들만의 자율적인 놀이생태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만 4세부터 유치원에 다니게 된 세대의 남자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무조건 통제당하고 억압받기 쉽다. 이 친구들이 10대가 되면서 ‘알파걸’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과 이 친구들이 갈등회피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우연일까? 거친 몸싸움 놀이가 억제되는 보육 환경과 알파걸이라고 하여 성장기에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두드러진 성취를 보이는 현상의 두 가지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혹시나 인과관계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남아들의 본성이다. 몸을 사용하건 머리를 사용하건 게임을 하건 간에 여자 아이에 비해 남자 아이들은 승부를 가리는 놀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특히나 그 중에서 몸으로 승부를 겨루는 거친 몸싸움 놀이를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요즘 언론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기사 중 하나가 초등학교 교사의 성비인데, 초등학교에 남교사가 부족해서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여성들 눈에 거칠게만 보이는 남학생들의 짖궃은 장난과 놀이에 담긴 나름의 의미를 남교사들이 더 잘 이해한다 해도 실제 교실에서 그런 놀이를 통제하는 강도가 남교사가 더 높을 수 있다. 여성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남자아이들의 거친 장난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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