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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Aug 10. 2018

11. 놀이천재론과 놀이본능설

놀이하는 법을 아는 것은 행복한 재능이다.  It is a happy talent to know how to play. 

–– Ralph Waldo Emerson. American writer 1803-1882 


놀이는 본능적인 활동이고 특히나 어린이들은 놀이의 천재라고 흔히들 말한다. 특히나 놀이 활동가나 연구자들 중에서도 이런 얘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어린 것들은 진정 놀이를 떠나서 살 수 없지만 ‘어린이 놀이 천재론’은 여러 모로 위험한 담론이다. 첫째, 어린이 놀이에 성인이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히나 한국 같이 가정과 학교에서 놀이의 가치와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공부에 방해되는 활동으로 치부되기가 다반사인 사회에서 어린이는 모두 놀이의 천재라고 하는 말은 학교와 지역에서 아동의 놀이를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될 여지가 있는 담론이다. 

아이들이 모두 놀이의 천재라면 공부하다 남는 짜투리 시간에 알아서들 잘 놀 것이고, 놀이터라는 독립적인 공간도 별 필요 없이 모든 장소를 활용하여 잘 놀 것이고 어른들이 어린이 놀이에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이다. 새로운 놀이를 만들자고 작정하면 아동보다 성인이 훨씬 유리하다. 놀이생태계에 성인이 개입하게 되면 놀이 속의 표현과 상상 등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경우 1년이 다르게 다문화 상황이 늘어가며 유년기의 조기교육 등 몇몇 요인 때문에 또래집단에 잘 섞이지 못하는 아동이 늘어가는 경우에 성인은 놀이생태계를 위해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어린이 놀이 천재론’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면서 어린이들의 놀이를 실제로 포괄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 

놀이 본능설도 마찬가지다. 먹고 자는 것이 본능이듯 놀이 역시 본능이라는 담론은 한국 같은 나라일수록 더욱 악용될 수 있으며 놀이의 실체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많다. 놀이의 본질은 자유다. 그런데 본능에 따르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놀이의 다른 본질 중 하나는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있다. 놀이라 이름할 활동이 전혀 없는 삶은 팍팍하기 그지 없다. 먹고 마시고 잠자고 배설하는 생명체의 직접적인 욕구만 겨우 충족되는 상태에서도 사람은 얼마간 살 수 있긴 하다. 그런 삶에도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놀이는 본능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이나 동물은 본래 놀도록 되어 있는 존재니까 놀이는 매우 쓸모있는 활동이겠지만 그 이상을 넘는 논의는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게 된다. 

이후에 놀이의 간차원성을 논할 때 살필 텐데 놀이는 분명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측면이 있으며 본능을 자극하는 어떤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놀이가 바로 본능적인 활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놀이의 본질은 자유이며 인간은 분명 자유 없이도 생존은 할 수 있지만 자유를 위해서는 삶을 내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다. 놀이는 이렇듯 우리 인간의 본질을 이루며 인간을 이해하려면 놀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놀이를 본능이라고 말해버리면 사람은 원래 숨쉬고 밥먹고 잠자고 똥싸고 놀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설명으로 사람의 본질을 대치해 버리게 된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놀이에 대한 담론도 미약하고 활동가도 많지 않고 놀이 운동이라고 할 흐름도 간신히 이어지는 수준이라 돌이켜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여러 활동가들을 대할 때마다 존경스런 마음이 들곤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놀이에 대한 담론이 좀더 활발하고 정밀해질수록 놀이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전반적인 놀이운동에 활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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