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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17. 술래고

  술래의 어원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순라巡邏’라는 중세의 하급 관원을 지목한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간행된 <해동죽지>에서 술래잡기와 순라의 연관설이 처음 나온다. 이 책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영년의 시집인데 항간의 떠도는 설로 그 어원을 소급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할 지 의문이다. 고대의 원무가 그대로 계승된 ‘강강술래’의 술래를 보더라도 술래의 어원 이 결코 가까운 몇 백년 단위의 시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순경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순라꾼이 통금을 어긴 사람을 잡곤 했다는 사실에서 강강술래로 전환되었을 수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거의 없다. 강강술래를 오랑캐가 ‘바다를 건너 온다’는 ‘수월래水越來’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만큼 견강부회를 범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술래잡기류에 경찰놀이나 경찰과 도둑이라는 이름을 가진 놀이가 있긴 하지만 술래 역할을 맡은 사람을 술래라고 하며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술래를 칭하는 여러 나라의 말들을 살펴 보자. 근세까지 한반도 북쪽에서는 술래를 ‘범’이라고 하거나 영동 지방 에서는 ‘까꾸’라고 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귀신이라고 하였다. 흥미롭게도 중국어에서도 술래를 귀신이나 고양이라고 하며 프랑스어에서도 술래는 고양이이다. 영어에서 술래를 가리키는 말은 it이다. 일본어에서는 도깨비 비슷한 악귀를 의미하는 ‘오니’가 술래이다. 이러한 예를 보면 술래를 일러서 괴물이나 근원적 공포를 함축하는 말을 사용하는 나라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지 못한 시절의 흔적이 술래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것인데, 이를 감안하여도 술래라는 한국어의 연원을 순라로 돌리는 것이 무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순라’라는 하급 관원들이 당시의 민중을 대할 때 행패가 얼마나 극심했는 지 추측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동물들도 술래잡기를 한다는 사실은 술래잡기류의 놀이가 그저 몇 만 년 수준의 현생 인류보다 오래된 놀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막연하고 단순한 추정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포유류 중에서 술래잡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 동물은 너무나 많다. 영장류나 지능이 높은 까마귀 등의 조류는 서너 종류 이상의 술래잡기를 하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극히 일부의 동물이긴 하지만 침팬지나 까마귀 보노보 등은 다른 지역의 집단이나 같은 집단의 과거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규칙의 술래잡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동물행동학의 성과를 참조한다면 원인류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할 때 두 인류 모두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향유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상과 같이 한국어 전승과 외국의 사례, 동물행동학의 세 논거를 고려하면 순라를 술래의 어원으로 보는 가설은 상당한 취약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술래라는 말 자체가 워낙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받침해주는 것이 놀이의 상승하강설이다. 우리가 전래놀이로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고대나 중세에 신에 대한 제사나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 행사와 연관되는 것이 많다. 놀이터에서 덜렁거리는 그네는 여러 부족에서 농사를 짓기전에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풍년제의 한 의례였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민속놀이나 전래놀이는 처음에는 어린이 놀이였다가 역사의 한 시기에 궁중 의례나 종교적 제례로 상승했다가 다시 어린이 놀이로 하강하곤 했다. 오늘날 오락성과 기묘한 신성성을 모두 지니는 놀이인 축구를 예로 들어 보자. 

  현대의 축구는 우리 시대에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즐기는 놀이인 동시에 월드컵 기간에는 국가의 위엄과 힘을 상징하는 제의적 행사가 되기도 한다. 중세의 축구 비슷한 놀이는 가을 추수 축제에 이웃한 마을과 맞붙어 싸우면서 다음 해 풍흉의 향방을 점치기 위한 제의적 의미를 가지곤 했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축구 비슷한 놀이를 하면서 태양신의 쟁탈을 상징하는 제의를 행한 것과 연관이 깊다. 그보다 이전에는 축구 비슷한 놀이가 수렵 부족의 사냥과 연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하나의 놀이가 어느 한 때는 신성한 의미를 부여 받아 일정한 기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행해지기도 했고, 어떤 시대에는 그저 아이들과 어른들이 재미삼아 즐겨지기도 했다. 

술래잡기도 처음에는 의미가 전혀 없는 놀이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주술적 신앙이 정례화 의식화되는 역사 시기에 술래잡기 놀이는 속죄의식의 희생물로 선발된 자가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안겨진 더러움 또는 악한 영혼을 다른 이에게 옮기는 제의적 연행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적인 통찰을 다시 고려해보면 강강술래나 술래잡기 모두 아득한 상고의 시절 제의적 연행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강강술래 같은 원무는 고대남녀의 성적 해방이나 약혼과 관련하여 행해지다가 이후 풍년을 기원하며 신을 즐겁게 해주는 의미를 가지게 된 제의적 연행물의 잔존 형태이다. 후렴구로 남은 ‘강강술래’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예전의 주술적 문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강강술래가 제의적 주술적 의미를 담은 고대어라고 가정한다면 술래잡기의 술래는 그 당시의 신격의 한 형태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이병도가 ‘술∙수리’라는 고대어를 산신山神, 상上, 고高로 파악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술래가 신격이라면 술래잡기에서 보이듯 물리치는 것은 어렵지만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쳐야 하는 신격이고 강강술래에서 나타나듯 밤에 원무를 추면서 즐겁게 해주고 달래줘야 하는 신격이다. 그렇다면 술래는 액厄이나 역신疫神으로 신앙되던 고대의 신격이었을 가능성을 던져본다. 구태여 비교하자면 일본의 술래인 ‘오니鬼’와 비슷한 점이 있을 듯하다. 술래 역신설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입증이 거의 불가능하며 단지 가설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의 탄생보다 오래된 놀이가 겨우 수백 년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밥과 피와 술과 뼈와 불과 물 등 언제 성립되었는 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말이 사실은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술래 역할에 다른 이름이 붙는 것은 개연성이 거의 없지만 새로운 술래잡기류의 놀이는 가능하다. 현재 존재하는 술래잡기류의 놀이 규칙을 조금씩만 바꾸면 거의 무궁무진한 변형이 가능하다. 필자도 몇 가지를 만들었으니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지금도 새로운 술래잡기류의 놀이가 생성되고 상상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완전히 새로 운 형태의 술래잡기가 있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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