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놀이하면서 배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학습하는 방법을 배운다. Children learn as they play. Most importantly, in play children learn how to learn.
피아제에 따르면 놀이가 아동의 인지 발달을 반영하되 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은 자신의 인지발달 수준에 맞는 놀이를 하게 된다는 놀이의 보편성을 말한 것으로, 아동이 하는 놀이를 관찰하면 그 아이의 발달 단계를 알 수 있다. 대신에 놀이 덕분에 아동의 지적 능력이 향상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도 피아제는 놀이가 발달의 바탕이 다져지는 데 공헌하며 발달의 세세한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발달하는 존재로써 자신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연관성을 높여가는 과정 속에 환경에 적응한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여 성장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 동화와 조절이 있다. 이 둘은 보통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화는 외부에 있는 재료나 자료를 신체나 정신의 내부로 가져오는 것으로 ‘외부의 내부화’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먹는 것도 동화이고, 새로운 자료나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구조에 통합하는 것도 동화이다. 조절은 ‘내부의 외부화’라고 할 수 있다. 적응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게 되는 방식으로 생명체의 내부 메커니즘을 외부의 환경에 맞게 변화시킨다. 음식을 먹으면서 여러 소화기관이 협응하여 분비물을 내보내는 것도 조절이고, 지식의 구조를 새로이 관찰한 현실에 따라 조정하는 것도 조절이다. 피아제는 놀이에서 동화가 조절보다 지배적이고 우세하게 작용한다고 보았기에 학습은 조절에 가깝고 놀이가 곧 학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습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는 몸과 정신은 놀이를 통해 이미 통합된 능력과 구조를 활용하며, 아동은 놀이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몸과 정신에 통합시킨다. 놀이는 학습을 촉진한다.
아동의 지적인 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빼놓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호기심이다. 아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자궁 속에서 호기심에 유발된 탐색 행동을 한다. 말을 배우기 전의 젖먹이들은 새로운 시각적 청각적 자극물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가진다. 언어를 익힌 후에는 스스로에 대하여 주변에 대하여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어린이들은 끝모를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은 알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이러한 인식의 충동이나 호기심은 인간이 본래 가진 것, 즉 자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자연적 호기심에 문화적 형식을 제공하는 것이 학습이라고 한다면 놀이는 가장 효율적인 학습이 된다. 놀이는 쓸모를 넘어선 쓸모를 가진다. 특히나 유아기에서 아동기까지 놀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넓고 오묘한 쓸모를 가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고등 생명체는 적응활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되는데,) 아동의 탐색활동은 적응활동이며 여기서 얻게 되는 재미와 즐거움은 그 활동을 계속하도록 이끌어 주는 동력원이자 보상이 된다.
호기심에서 촉발된 탐색 활동은 놀이이다. 동물들조차 색다른 냄새를 맡거나 하면 호기심을 내보이며 탐색을 한다. 대신에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이외의 잉여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탐색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한 아이들은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탐색에 몰두한다. 어른들에게 뻔한 이 세계는 아이들에게 신비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러나 어른의 비난이나 짜증 섞인 반응 때문에 아동의 호기심-탐색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쓰이게 된다.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될 때 인간은 깊은 희열을 느낀다. 이 희열을 알면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게 된다. 이 재미는 인지적 발달의 엔진이 된다.
피아제에게는 결국 놀이가 원리적 실체이다. 그에 반해 비고츠키에게 놀이는 과정적 실체이다. 비고츠키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축의 하나로 비계scaffold를 꼽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는 어른이 하는 활동을 모티브로 삼아 흉내내고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본다. 아이들이 여러 명 있으면 작은 아이들은 큰 아이들이 하는 작업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진다. 큰 아이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사람을 그리든 나무나 집을 그리든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그리고 무슨 책을 읽는지 등등이 작은 아이들에게 모티브가 될 수 밖에 없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리 비계가 된다. 골목이라는 놀이생태계에 새로 진입하는 깍두기들은 놀이 선배를 비계로 삼는다. 놀이는 분명 원리적 실체로서 작용하는 차원을 가지면서 동시에 과정적 실체로서 작용하는 차원을 가진다. 이러한 간차원적 특성을 토대로 다시금 피아제와 비고츠키의 이론을 살핀다면 두 학자의 이론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보완 관계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