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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Aug 02. 2018

4. 신성한 경험

‘놀’또는 ‘놀이’는 원래 종교적 신성을 표현하는 一語다. 

––최남선. 작가, 사학자, 문화운동가. 『조선문학개론』 1890~1957 


놀이는 신성성神聖性을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성은 제의나 종교의 신성과는 같으면서 다르다. 제의나 종교의 신성성은 종교적 상징을 매개로 하지만 놀이의 신성성은 놀이가 놀이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음을 뜻한다. 우리가 놀이를 시작하는 이유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뭔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놀이를 통해 발현되는 실제적인 생생력이 신성성을 가진다. 생생력生生力이란 ‘생명이 태어나서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놀이의 오래된 부류들은 인류의 시초인 고대 공동체라는 먼 시원으로 소급된다. 현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원인류homonoid는 다양한 놀이를 해왔음이 틀림없다. 

놀이는 사람에게 신성한 경험을 준다. 일반적으로 재미, 신명, 흥, 파이디어 또는 ‘몰입flow’이라는 말을 써서 놀이에서 얻는 신성한 경험을 이름한다. 놀이참여자는 모두 재미와 신명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신성한 경험은 증식하되 미분되지 않는다. 재미없는 놀이나 몰입할 수 없는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고역일 따름이다. 재미나 쾌락이라 하기도 하고 몰입이라고도 하는 이 신성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놀이를 한다. 놀이하는 동안에, 즉 놀이를 시작하여 끝낼 때까지, 놀이자는 현실을 잊는다. 놀이에는 현실을 잊게 하거나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놀이할 때 우리는 도취되고 위로 받고 구원받는다. 그래서 놀이는 신성한 경험이다. 놀이 할 때 우리는 그득 채워진다. 충만! 

놀이 공간은 현실 내부에서 현실 외부로 나가는 비상구이다. 놀이라는 비상구를 지나서 마주치는 현실 외부에서 신성한 경험을 얻을 수 없다면 그 놀이는 생명력을 잃는다. 놀이하는 모든 이는 놀이 공간이라는 비상구를 지나 여행을 떠난다. 더불어 함께 놀이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은 같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다. 그러나 각자의 여정은 모두 다르다. 이 여정에서 놀이자는 신성한 경험을 통해 그득 채워지고 게다가 한 뼘씩 더 자란다. 놀이의 세계는 일상의 내부를 통과해서 도착하는 일상의 외부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충만하게 되고 성장한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놀이 속에서 성장한다. 다른 동물들도 그러하다. 동물의 어린 것이 제대로 놀지 못하고 성장할 경우에 반드시 결함이 있게 된다. 우리의 신체능력과 정신능력의 대부분이 놀이 안에서 커나간다. 말하고 달리고 듣고 도약하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공감하는 인간의 모든 능력은 놀이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와 가지를 내지르고, 다듬어진다. ‘진짜 사회성’은 또래간의 문화적 상징이라는 공통의 기반이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가는 ‘공감의 능력’이다. 그러나 성장을 기대하고 도모하기 위해서 우리가 놀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놀이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 없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은 신성이다. 

놀이의 목적은, 단 하나, 놀이를 지속하는 것이다. 놀이의 지속 이외에 놀이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놀이는 분명 기능적 속성을 가지지만 또한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놀이를 지속한다 함은 신성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결국 신성한 경험에서 시작하여 이 신성한 경험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놀이의 기능이나 유용성을 따지는 경우에 놀이는 단지 재미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놀이는 즐거움과 자유가 그 본질이며 인생의 목적 자체가 놀이의 신성한 경험이다. 놀이는 인간이 동물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기 위한 최적의 행위이며, 동물인 상태에서 동물 너머의 존재가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다. 놀이할 때, 인간이란 동물은 거룩해진다. 놀이 공간에서 인간의 동물성과 신성성이 함께 약동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아 놀이는 생생력 그 자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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