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저널 2-8 책이 나를 속일지라도 너무 슬프하거나 노여워하지말자
일요일 저녁에 중고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샀다. 평소 같으면 책을 사러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가는 편인데 그날 따라 서점에 꽂혀 있는 책들중 ‘유난히’ 표지 칼라가 이쁘고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덥석 한 권 집어왔다
다른 책은 이미 대략 내용을 아는 터라 이 ‘유난히’이쁜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책에는 수많은 고전들이 인용되고 표지와 목차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열심히 사색해서 쓴 책 같아 보이는 데 문장 하나 하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용한 서적들과 작가가 펼쳐나가는 논리가 아귀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이건 뭐지? 책이 영 이상해서 책 맨 마지막을 보니 에필로그에 작가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써놓았다.
책에 인용되는 모든 고전 48가지와 그림들 그리고 목차는 편집자 모씨가 골라 온것이고 자신은 거기에 자신의 생각만을 적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편집자가 이렇게 책을 쓰고 싶다고 하도 사정을 해서 자기는 못 이기는 척하고 이책을 썼을 뿐이라는 사족이 달려 있다. 세상에!!!! 자신이 읽은 책이 아니라 편집자가 읽은 책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냐??? 당장 책을 들고 환불을 하러 가고 싶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다시 중고로 되팔고 싶었지만 정가가 17,000원이었던 책을 중고로 13,000원에 사왔는데 다시 되팔려고 보니 사입가는 단돈 1,000원이란다.
알고 보니 이런 말도 안되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평소 베스트셀러에 뭐가 있는지 잘 보지도 않고 잘 사지도 않는 편인데 내가 거기에 낚였던 것이다.
이 책을 선택했던 건 나름 이름 있는 출판사도 한 몫을 했다. 고전을 주로 많이 펴내는 출판사였기에 믿고 산것이었다.
물론 내가 골라 봤던 책들이 모두다 훌륭하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게 속고 출판사에 속고 중고서점에 속고...
중고서점이 집 주변에 생긴 것에 감사해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나 생각하니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집에 책을 두기도 불쾌해졌다.
이런 책은 좀 자정작용을 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진열되고 수없이 많이 팔리고 ...
책을 직접 샀던지 선물을 받았던지 했던 사람들의 책들은 우후죽순 중고서점으로 쏟아져 나오고...
중고서점에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오니 서점은 저렴하게 책을 구매하게 되고 (매장에서 진열할 수 있는 책의 수량에 한계가 있으니 지나치게 많이 팔고자 하는 책들은 가격이 최저가로 떨어지는 게 중고서점의 구조다.)
허접한 베스트셀러여도 나름 베스트셀러이니 재판매가는 최고가를 달린다.
온라인 서점에 이 책의 구매후기를 뒤늦게 찾아보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한다. 나처럼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의 악성 댓글이 줄을 잇는다. 진작에 좀 보고 샀어야 하나? 사실 책은 거의 나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사는 편인지라 구매 전에 댓글을 챙겨 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구매전에 정말 신중했어야 했다.
말로만 듣던 출판사의 기획 출판물에 내가 보기 좋게 걸려들다니....
네이버에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의 생각이나 철학이 나의 생각과 너무나 결이 다르다.
나쁜 남자에게 낚인 기분이라고나 할까?
천원에 내다 팔기에는 돈이 아깝고 누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갖다 버리기에는 억울하고 ...
이 작가 책은 정말 사지 마세요라고 동네 방네 떠들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작가도 나름 고민을 하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을 기획했는데 나름 그래도 고민의 흔적은 있지 않았을까? 멀쩡한 정신이었던 희미한 정신이었던 말이다.
한 때 나만의 책을 쓰겠다고 잠시라도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나도 이런 허접한 책을 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진다. 겸손해야 겠다는 자기반성이 된다.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을 가지는 것도 분명 나의 능력일테니 그 능력을 더 키워야 겠다.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문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며 모호한 것은 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학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 '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 '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죠.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책 한 권으로 벌려 놓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후배들을 가끔 봐요. 자기는 특별히 할 얘기가 없어도 20분 동안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자랑이에요. 이거 큰일이에요. 남의 소중한 20분을 왜 낭비합니까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문장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