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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Jul 22. 2023

아픈 흉터, 오늘을 사는 힘

삶의 모습이 참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이 유복하다. 땅을 사면 길이 나듯이 하는 일마다 잘 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다. 성장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모든 흙수저가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어려움은 고스란히 어려움으로 남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걸까? 

  살다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기도 하고,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결핍과 역경이 외려 열심히 사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맞닥뜨린 문제를 헤쳐나갈 때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가 ‘오늘을 사는 힘’이 되는 것이다. 박시교 시인의 <힘>은 상처투성이 인생에 힘을 준다.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 <>, 박시교   


  

  아픈 흉터가 어떻게 오늘을 사는 힘이 될까? 말콤 그레드 웰이 쓴 [다윗과 골리아]에는 심리학자 마빈 아이젠슈타트(Marvin Eisenstadt)가 혁신가, 예술가, 기업가를 인터뷰하며 발견한 사실이 실려 있다.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었다. 걸출한 리더 573명을 조사한 결과 4분의 1이 열 살이 되기 전에 적어도 부모 한 명을 잃었다. 34.5 퍼센트는 열다섯이 될 때까지, 45 퍼센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적어도 부모 한 명이 죽었다. 질병과 사고와 전쟁으로 기대수명이 오늘날보다 훨씬 낮은 20세기 이전에도 놀라운 수치다. 


  아이젠슈타트와 비슷한 시기에 역사학자 루실 이레몽거(Lucille Iremonger)는 19세기 초부터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영국 총리들에 관한 역사를 썼다. 루실 이레몽거는 어떤 종류의 배경과 자질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영국 정계에서 정상까지 오르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표본 집단에 속한 총리 67 퍼센트가 열여섯 살이 되기 전에 한 부모를 잃었다. 총리를 대부분 배출하는 영국 상류층에서 같은 기간에 부모를 잃은 비율의 대략 두 배 정도다.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도 같은 결과를 찾을 수 있다. 조지 위싱턴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 44명 가운데 12명이 젊었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심리학자 딘 사이먼트(Dean Simonton)는 어렸을 때 뛰어난 재능을 보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도한 심리적 건강 상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편안한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말이다.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전통적이고, 너무 순종적이며, 너무 상상력이 부족한’ 아이들이었다. 재능을 지닌 아이나 신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정환경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결핍이 없다. ‘어떤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는’ 동기가 약하다. 반대로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는 천재는 나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쁜 가정환경이라는 결핍이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역경을 견뎌낸 공자의 정신력      

  인류 대표 지성, 사후 2500년이 지났으나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자는 어땠을까? 공자가 이상국을 세우려고 천하를 주유한 일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공자는 56세 때 처음 노나라를 떠났다. 공자가 열국을 돌아보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올 때 나이는 69세다. 14년을 길에서 보냈다. 때때로 환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적도 많았다. [공자 세가]에는 정 나라 성문에서 제자들에게 뒤처져 헤매고 있는 공자를 두고 정 나라 사람이 ‘상갓집 개’로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상을 당한 집에서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방황하는 개에 비유되었을 만큼 공자의 유세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느 나루터 고을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했다. 송나라를 지나던 중에도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한 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에도 공자가 곤액(困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가 남쪽에 있는 초나라에 가려고 할 때 진(陣)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한 채 식량이 떨어져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레 동안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명아주 국물에 쌀 알갱이 한 톨도 못 넣었다. 제자들이 모두 굶주린 안색을 띠었다. 그런데도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에 성격이 거칠고 급한 자로(子路)가 들어가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선생님께서는 이 지경에도 노래를 부르시니 그것도 예입니까?”

  공자는 대답도 없이 노래를 다 마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유(由)야! 군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교만을 덜기 위함이며, 소인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다. 누가 이런 깊은 뜻을 알겠느냐? 너조차 나를 알지 못하면서 나를 따라다녀 무엇을 배우겠느냐?”

  자로는 그래도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아 방패를 들고 춤을 추다가 세 곡이 끝나자 나가버렸다. 그때부터 이레 동안 공자는 음악을 그치지 않았다. 이에 자로가 다시 원망스러운 마음에 공자를 뵙고 “선생님 지금이 연주할 때입니까?”하고 불평하였다. 이번에도 공자는 대답하지 않다가 음악이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유야! 옛날 제환공은 거에서 곤액을 치를 때 비로소 패자가 될 생각을 하였고, 구천은 회계산으로 쫓겨 갔을 때 패자를 꿈꾸었으며, 진 문공은 여 씨에게 핍박을 받을 때 패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따라서 유폐를 당해보지 않으면 생각이 원대하지 못하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어지지 않는다. 어찌 너는 지혜롭다고 하면서 이때를 찾아내지 못하고 불우하다고 여기느냐?”

  그러고는 일어섰다.

  이튿날 그 곤액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자공이 수레의 고삐를 잡아 오면서“친구들이여! 선생님을 따르다가 이런 곤란에 빠졌으니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속담에 이르지 않았느냐? ‘팔을 세 번 꺾어봐야 의술이 뛰어난 의원이 된다.’ 무릇 진나라와 채나라 국경에서 겪은 일은 나에게 큰 다행이었다. 너희도 나를 따랐으니 모두 행복한 사람이다. 내 들으니 남의 임금 된 자가 곤경에 처해 보지 않으면 왕도를 이룰 수 없고, 선비로서 곤액을 겪어 보지 않으면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하였다. 옛날 탕(湯)은 여 땅에서 곤액을 당하였고 문왕은 유리에 유폐 당하였으며, 진목공은 효산에서 곤액을 당하였고, 제환공은 장작에서 곤액을 당하였으며, 구천은 회계까지 쫓겼고, 진문공은 여희에게 핍박을 받았다. 따라서 곤액이 도를 낳는 일은, 찬 것이 따뜻한 것을 낳고 따뜻한 것이 찬 것을 낳게 하는 이치와 같다. 오직 현자만이 이를 알 뿐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역(易)에‘곤은 형통하고 곧게만 한다면 대인에게는 길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바로 성인이 남에게 일러주고 싶어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정말 맞는 말이로다.”


  곤액은 몹시 딱하고 어려운 사정과 재앙이 겹친 불운을 말한다. 공자는 국경 사이에서 포위되어 이레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곤액을 만났다. 공자는 그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다. 불평하는 제자에게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원대하지 못하고, 그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탕왕, 문왕, 진목공, 제환공, 월구천, 진문공 사례를 들었다. ‘상처도 보석이’라는 사실과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는’ ‘오늘을 사는 힘’이라는 역설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는 심리학자 마빈 아이젠슈타트가 혁신가, 예술가, 기업가를 인터뷰하며 발견한 사실이나 역사학자 루실 이레몽거가 영국 총리를 조사한 내용과 같다. 한편 공자의 어린 시절을 보면 심리학자 딘 사이먼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는 천재는 나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는. 그러면 공자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사기] <공자 세가> 는 공자 아버지가 안 씨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기록하였다. 이때 공자 아버지 나이는 예순네 살, 어머니는 열일곱 살이고 세 번째 부인이다. 야합이라는 말에서 알듯이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아니다. 이렇듯 공자는 출생부터 비정상이다. 공자는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열일곱 살 때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공자는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비천하여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창고를 관리하거나 가축을 관리하는 말단 공무원도 지냈다. 


  공자가 포위되어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이레씩 밥을 굶으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정신력과 태도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 혼자 힘으로 학문에 정진하며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낸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상처가 보석이 되고, 오늘을 사는 힘이 된 셈이다. 공자가 ‘소나무의 푸름처럼’ 긴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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