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wish)이 꽉찬 사람은 다시 튀어 오른다
대학 1학년 때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꿈의 크기를 공과 비교해서 이야기했다. 1학년 때는 꿈의 크기가 운동회 때 공굴리기 공만큼 컸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농구공 축구공 핸드볼 공으로 점차 줄더니 이제는 탁구공만 하게 줄었다고 했다. 그때는 웃어넘겼는데 나도 나이를 먹으며 그렇게 되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꿈이 줄어드는 이유는 뭘까? 현실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만큼 노력을 덜 했기 때문일까?
아무리 공이 커도 바람이 빠지면 끝이다.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되려면 바람이 빵빵해야 한다.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당신은 꿈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떨어져 보았는가? 쓰러진 적은 있는가? 떨어진 자리에 푹석 주저앉으면 바람 빠진 공이다. 바람(air)을 바람(wish)으로 바꿔 생각해보자. 공은 바람(air)이 빠지면 떨어졌을 때 튀어 오르지 못하고 사람은 바람(wish)이 빠지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바람으로 가득 찬 사람만이 튀어 오른다. 튀는 공처럼 바람으로 가득 찬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자. 앞에서 소개한 범저 같은 사람도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공처럼 튀어 올랐다. 비슷한 인물 한 명을 더 살펴볼 것이다. 오자서(伍子胥) 이야기다.
오자서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원이다. 아버지는 오사, 형은 오상이다. 오자서 선조로 오거가 있었다. 오거는 초 장왕을 바른말로 섬겨 이름을 드러냈기 때문에 후손이 초나라에서 명망 있는 집안이 되었다.
초나라 평왕에게 건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태자 교육을 위하여 오사를 태부로, 비무기를 소부로 삼았다. 평왕이 비무기에게 태자를 위해 진(秦)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해오도록 했다. 진나라 여자가 무척 예뻤던 모양이다. 비무기는 달려와 평왕에게 “진나라의 여자가 절세미인이니 왕께서 취하시고 태자를 위해서는 다른 여자를 얻게 하십시오.”하고 보고했다. 평왕이 마침내 진나라 여자를 후궁으로 들이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취하게 했다. 며느릿감을 자기 부인으로 들인다는 게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왕에 그 신하라고 밖에 달리 말하기 어렵다. 평왕은 진나라 여자를 특별히 총애하더니 아들 진을 낳았다.
비무기는 진나라 여자로 하여금 평왕의 비위를 맞추게 하고 자신도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그런데 비무기 생각에 평왕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면 태자가 자기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자를 내쫓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처지였다. 이에 비무기는 왕에게 태자를 헐뜯기 시작했다. 게다가 태자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로 평왕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평왕이 갈수록 태자를 멀리하여 태자에게 성보를 지키며 변방을 수비하게 했다. 비무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밤낮으로 왕에게 태자를 모함했다.
“태자는 진나라 여자 때문에 왕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왕께서는 미리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태자는 성보에 거처할 때부터 군을 거느리고 밖으로 제후들과 교류하면서 들어와 난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평왕이 바로 태부 오사를 불러 태자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캐물었다. 오사는 비무기가 평왕에게 태자를 헐뜯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따져 물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소인배 놈의 헐뜯는 말만 듣고 골육의 정을 멀리하려 하십니까?”
비무기가 말했다.
“왕께서 지금 태자를 제압하지 않으면 태자가 난을 도모할 것이고 오히려 전하께서 붙잡히실 겁니다.”
평왕은 크게 노하며 오사를 가두고 성보에 있는 사마분양에게 태자를 죽이라고 명했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사마분양은 태자에게 미리 사람을 보내 알렸다.
“태자께서는 빨리 도망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될 것입니다.”
태자 건은 송나라로 도망쳤다.
비무기가 평왕에게 “오사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똑똑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초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아비를 인질로 잡고 부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의 우환이 됩니다.”하고 부추겼다. 이제부터 오자서(오원)는 떨어지는 공이 된다. 왕은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너의 두 아들을 부르면 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위협했다. 오사는 “오상은 사람이 어질어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이다. 오원은 사람이 강하고 독하며 치욕도 견뎌 내어 큰일을 할 수 있다. 그 애는 왔다가는 함께 잡힐 것이 뻔히 보이니 분명 오지 않을 것이다.”하고 대꾸했다. 왕은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 두 아들을 부르게 하면서 “오면 내가 너희 아비를 살려 주겠지만 오지 않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치욕을 참을 수 있어야 큰일을 한다
오상은 가고자 했으나 오원은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는 까닭이 아니라 우리가 탈출하여 훗날 근심거리가 될까 두려워서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우리를 부르는 겁니다. 우리가 가면 아버지와 아들 모두 죽습니다. 아버지를 살리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갔다가는 아무도 복수하지 못할 뿐입니다. 다른 나라로 도망쳐서 그 힘을 빌려 아버지의 치욕을 갚는 게 낫지 다 같이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하고 주장했다.
이에 오상은 이렇게 대꾸했다.
“간다고 해서 아버지의 목숨을 어쨌든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를 부르시는데 가지 않고, 이후 치욕도 갚지 못한다면 결국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너는 도망가거라! 너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돌아가 죽겠다.”
오자서는 달아났다. 오사가 두 아들을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흥미롭다. 오상은 사람이 어질고, 오원은 강하고 독하며 치욕도 참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평화롭고 안락한 시기에는 두 아들 모두 그런대로 잘 산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강하고 독하며 치욕을 견뎌내는 오원이 큰일을 한다. 뭔가를 도모하다 실패하면 어떤가? 오상은 ‘이후 치욕도 갚지 못한다면 결국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걱정하고 있으니 큰일을 도모하기에는 소심하다.
오자서(오원)는 송나라에 있는 태자 건을 찾아가서 따랐다. 오자서는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와 진나라로 옮겨 다녔다. 태자 건이 죽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오나라로 달아났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이 나서 먹을거리를 구걸하며 오나라에 도착했다. 오나라에 이르렀을 때 오왕 요(僚)가 막 집권했고 공자 광(光)은 장군이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을 통해 오왕을 만나고자 했다.
지금까지 오자서는 떨어진 공의 신세였지만, 오나라에서 다시 튀어 오를 준비를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초나라와 오나라 국경이 맞닿은 초나라 땅 종리와 오나라의 땅 비량지는 모두 누에를 쳤다. 두 지역 여자들이 뽕나무를 두고 다투었는데, 일이 커져 두 나라가 군대를 일으키는 상황으로 확대되었다. 오나라는 공자 광에게 초나라를 정벌하게 하여 종리와 거소를 함락하고 돌아왔다. 오자서가 오왕 요에게 “초나라를 깰 수 있습니다. 다시 공자 광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하고 유세했다.
공자 광은 오왕에게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에서 피살당했습니다. 왕께 초나라를 치라고 권하는 이유는 자신의 원수를 갚고 싶어서입니다. 초나라를 정벌해도 깰 수 없습니다.”하고 반대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왕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려는 은밀한 뜻이 있어 대외적인 일을 말할 때가 아님을 알고는 공자 광에게 전제(專諸)를 추천하고는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야외에서 농사를 지었다.
5년이 지나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당초 평왕이 태자 건의 아내가 될 진나라 여자를 빼앗아 아들 진을 낳았다. 평왕이 죽자 진이 뒤를 이어 소왕(昭王)이 되었다. 오왕 요는 초나라 상(喪)을 이용하여 두 공자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초나라를 기습하게 했으나 초나라가 군대를 징발하여 오나라 군대의 퇴로를 끊어서 돌아오지 못했다. 오나라 내부가 비자 공자 광은 전제를 시켜 오왕 요를 습격하여 찔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오왕 합려(闔廬)다. 합려가 즉위하여 뜻을 이루자 바로 오자서를 불러 함께 나랏일을 도모했다. 떨어진 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이다.
합려는 즉위 3년(기원전 512년)에 군대를 일으켜 오자서, 백비와 함께 초나라를 쳐서 서를 함락하고 마침내 과거 오나라를 배반한 두 장군(공자)를 잡았다. 내친김에 영(郢)까지 가려고 하자 장군 손무가 “인민들이 지쳐있어 안 됩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하여 바로 돌아왔다.
합려 9년에 오왕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물었다.
“처음에 그대들은 영(郢)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두 사람은 대답했다.
“초나라 장수 낭와는 욕심이 많고 당(唐)나라, 채(蔡)나라가 모두 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기어코 초나라를 크게 정벌하시겠다면 반드시 당나라와 채나라를 먼저 얻어야만 합니다.”
합려가 그 말을 들어 군사를 모조리 일으켜 당나라, 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와 한수(漢水)를 끼고 진을 쳤다. 오왕의 동생 부개가 군대를 거느리고 따르길 청했으나 왕이 들어주지 않자 결국 자신에게 속한 5천 명으로 초나라의 장수 자상을 공격했다. 자상이 패하여 정나라로 달아났다. 이에 오나라는 승기를 타고 전진하여 다섯 번 싸우면서 마침내 영(郢)에 이르렀다. 오나라 병사들이 영에 들어왔을 때 오자서는 소왕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 300번 채찍질을 가한 다음 그만두었다.
이 무렵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지략으로 서쪽으로는 강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晉)나라에 위세를 떨치고, 남으로는 월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춘추시대 패자로 일어선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오자서를 이렇게 평가했다.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더라면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갚아 이름을 후세에 남겼으나 참으로 비장하구나! 오자서는 강에서 곤궁에 빠지고 길에서 구걸하면서 단 한시도 초나라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치욕을 견디고 공명을 세웠으니 장렬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하겠는가?”
오자서는 떨어질 때까지 떨어지고 쓰러질 때까지 쓰러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다시 튀어 올랐다. 바람(wish)이 있기 때문이다.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당신 가슴은 바람으로 꽉 차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