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청소하지 않으면 본인이 청소 대상이 되어 사라진다
10년 넘게 사용한 연구실을 정리하려고 했을 때, 문제는 수천 권에 달하는 책이었다. 집으로 옮기려다 책장에 꽂힌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필요 없는 책이 많았다. 산 지 10년이나 지난 책들,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들, 선물로 받았지만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 꽤 눈에 띄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는 책이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꼭 필요한 책을 골라보았다. 대략 200~300권 정도였다. 꼭 필요한 책만 집으로 옮기고 나머지 책은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리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오죽하면 정리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을까. 정리할 때는 우선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야 한다. 물건을 이쪽저쪽으로 옮기기만 해서는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과감히 버려야 집이든 사무실이든 깔끔하게 정리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 안에 있는 나쁜 습관이나 약점을 버려야 한다. '뿌리째 잘라 없애야'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결심과 계획을 잘 실천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주 포기하는 사람인가?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도 잘못된 습관 때문에 실패한 적은 없는가? 자주 분노 조절에 실패하는가?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많은가?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가? 공감을 잘하는가, 못하는가? 당신 인생에서‘이것’만 버리면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살 것 같은 약점이나 습관은 무엇이 있는가? 최영미 시인의 시 <대청소>를 감상해 보자.
봄이 오면
손톱을 깎아야지
깎아도 깎아도 또 자라나는
썩은 살덩이 밀어내
봄바람에 날려 보내야지
내 청춘의 푸른 잔디, 어지러이 밟힌 자리에
먼지처럼 일어나는 손거스러미도
뿌리째 잘라 없애야지
매끄럽게 다듬어진 마디마디
말갛게 돋아나는 장미빛 투명함으로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리라
그림자 더 짧아지고
해자락 늘어지게 하품하는, 봄이 오면
벌떡 일어나 머리 감고 손톱을 깎아야지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아
봄볕에 겨워 미친 척 일어나지 못하게
쓸어버려야 해, 훌훌
묻어버려야 해, 영영
봄이 오면, 그래
죽은 것들을 모아 새롭게 장사지내야지
비석을 다시 일으키고 꽃도 한 줌 뿌리리라
다시 잠들기 전에
꿈꾸기 전에
-<대청소>,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미출판사, 2020.)
나쁜 습관은 마치‘깎아도 깎아도 또 자라나는’ 손톱처럼 자신도 모르게 스멀스멀 자란다. 그래서 몸에 익은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먼지처럼 일어나는 손거스러미’ 같은 습관을 ‘뿌리째 잘라 없애’ 지 못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듯 잡생각을 없애고, 손톱을 깎듯 치명적인 나쁜 습관, 약점을 대청소해야 다시 신선한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말갛게 돋아나는 장밋빛 투명함으로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려면 말이다.
은나라 주왕은 민첩하고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다. 힘도 남달라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정도였다. 지식은 다른 사람의 충고를 물리치고도 남았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말재주를 지녔다. 그러나 주왕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신하들에게 재능을 과시하기 좋아했고, 천하에서 자신의 명성이 누구보다 높다고 생각하여 모두를 자기 밑이라 여겼다. 여기까지 만이라면 타고난 신분이 왕족이니 그러려니 하겠다. 이 외에도 주왕에게는 치명적인 습관과 버릇이 있었다.
치명적인 습관과 약점으로 몰락한 주왕
주왕은 현명하지 못한 데다 정치가 음란했다. 술과 음악에 빠졌으며 특히 여색을 밝혔다. 달기를 총애하여 달기 말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사연에게 음란한 곡을 작곡하게 하고, 북쪽의 저속한 춤과 퇴폐적인 음악에 빠졌다.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돈과 곡식으로 창고를 가득 채웠다. 여기에 개와 말 그리고 물건들을 궁실에 가득 채웠다. 정원을 더 넓혀 온갖 짐승과 새를 잡아다 풀어놓았다. 귀신도 우습게 알았다. 정원에 악공과 광대를 잔뜩 불러들이고,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이루어 놓고는 벌거벗은 남녀가 그사이를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다.
주왕은 갈수록 음란해져 그칠 줄 몰랐다. 주왕의 배다른 형 미자가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주왕은 듣지 않았다. 미자는 주왕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죽이려 하다가,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태사와 소사에게 가서 말했다.
“은나라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해 사방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세상에 공업을 이루었으나 주왕은 술에 빠져 부인 말만 듣다가 탕(湯)의 덕을 어지럽히고 무너뜨렸습니다. 은나라는 높거나 낮거나 할 것 없이 도적질을 하고 법을 어기며 난을 일으키기 좋아했습니다. 왕실의 경사들은 서로를 본받으며 법도를 지키지 않으니 모두가 죄를 짓고도 누구 하나 벌을 받지 않습니다.”
미자는 마침내 도망쳤다.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하자 기자는 탄식했다.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했으니 틀림없이 옥으로 만든 잔을 사용할 것이고, 옥으로 만든 잔을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먼 곳의 진기하고 괴이한 물건들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수레와 말 그리고 궁실의 사치가 점점 이렇게 되어 돌이키지 못할 것이다.”
주왕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기자는 두려워 미친 척하고 노비가 되었다. 주왕은 그를 가두었다. 왕자 비간 역시 기자가 간언해도 듣지 않고, 기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는 주왕에게 바른말로 충고했다.
“군주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따지지 않는다면 무고한 백성들만 피해를 보지 않겠는가.”
주왕이 노하여 “내가 듣기에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던데 정말 그런가?” 하며 왕자 비간을 죽여 가슴을 열고 심장을 보았다.
주왕은 타고난 자질이 우수한데도 약점과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한둘이 아니다. 술, 사치, 쾌락, 포악,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독선이다. 충언하는 신하를 노예로 만들거나, 죽여 버리는 포악을 자행했다. 그래서 주왕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도자가 이런데 나라가 온전하다면 상식이 아니다.
은의 태사와 소사는 제사 그릇과 악기를 들고 주(周)로 달아났다. 고대인들은 전쟁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왕이 직접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 의식에 사용하는 그릇과 악기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 신을 위해 사용한 제기는 시간이 지나며 왕과 제후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변화했다. 그러니 태사와 소사의 행위는 이미 은 주왕의 정통성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주 무왕이 제후를 거느리고 주(紂)를 토벌하러 나섰다. 주는 도망쳐 녹대에 올라가서는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주 무왕이 드디어 주의 목을 베어 크고 흰 깃발에 매달았다. 달기도 죽였다. 갇힌 기자를 풀어주고, 비간의 무덤에 봉분을 덮었다.
결과가 참혹하다. 불 속에 뛰어들어 자살하는데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목은 잘려 깃발에 매달렸다. 안타깝다. 은 주왕이 미리 자신의 나쁜 습관과 약점을 대청소하며 뿌리째 잘라 없애지 못하여 자신이 대청소당하고 말았다. 스스로 청소하지 않으면 본인이 청소 대상이 되어 사라진다는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