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남자 도마 결선에서 양학선은 당시까지 존재하지 않던 '난도 7.4'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초를 위해 5만 번을 연습했다는 사실은 기술을 완성하려고 양학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보여준다. 양학선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힘든 시기를 버텨낸 힘이다.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재종 시 <첫사랑>을 읽으며 도전을 생각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 번 피우려고’눈이 도전을 멈추지 않듯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양학선 같은 사람이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그때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저께도 실패하고 어제도 실패하면 어차피 실패할 일인데 또 시도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생각으로 도전을 포기한다.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이다. 양학선이 대단한 이유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 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첫사랑>, 고재종
비가 내렸다. 길이 질척거렸다. 소진은 이제 지쳤다. 젊은 시절 제(齊)나라에 가서 공부했으나 말직 하나 얻지 못했다. 여기저기 유력자에게 선을 댔지만 가진 것 없는 그에게 돌아올 자리는 없었다. 오랜 세월 타지에서 허송하며 방랑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커멓게 탄 얼굴에 옷은 해지고 그야말로 거지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형제를 비롯하여 고향에 있는 일가친척 모두 은근히 비웃으며 말하였다.
“주나라 관습에는 논밭을 경작하거나 상업에 힘써 2할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의무인데, 본업을 버리고 다만 혀끝의 말솜씨에 힘쓰고 있으니 곤궁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실패한 사람에게 비아냥거림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렇다고 소진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하지 않는다고 부끄러움까지 모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면박하지 않았다고 모를 일인가. 무시하고 비웃으며 쑤군대는 소리가 가슴에 꽂혔다. 소진은 방에 틀어박혔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도대체 선비로서 머리 숙여 가며 학문을 하고도 벼슬과 영화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은 깊고 이상은 높았다. 소진은 결심했다. 다시 책을 들었다. 지독한 세월을 보냈다. 일 년 정도 지났을까, 머리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했다.
‘그래! 합종이다.’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진념
주 왕실의 수많은 분봉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며 힘센 나라에 합병되어갔다.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전국 7웅이라 하여 진(秦), 초(楚), 제(齊),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일곱 나라가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전국시대 말기가 되면 힘의 균형은 깨지고 진(秦)나라가 절대강자가 된다. 합종설은 절대강자 진나라에 대항하여 여섯 나라가 군사 동맹을 맺자는 주장이다. 소진은 합종설을 들고 먼저 연나라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나 다른 나라 동의가 없으면 허사였다. 이에 소진은 조, 한, 위, 제, 초나라를 차례로 찾아다니며 6국이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먼저 여섯 나라 가운데 초나라 왕을 만나 유세하는 장면을 보자.
“초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군이십니다.(...) 초나라 땅은 사방 5천여 리, 무장 병력 100만 명, 전차 1천 승, 기마 1만 필, 식량은 10년을 지탱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패왕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나라는 강대하고 임금이 현명하니, 천하에서 초나라에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이처럼 큰 나라가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긴다고 하면, 제후들도 서쪽을 향해 함양(진나라 수도)의 장대 아래에서 조회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에 방해되는 나라로서 초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초나라가 강하면 진나라는 약해지고, 진나라가 강하면 초나라는 약해지는 것이니 그 세력은 양립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워 드리건대, 여섯 나라가 서로 합종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키느니만 못합니다. 대왕께서 화친하지 않고 있을 때 진나라는 틀림없이 수륙의 군사를 일으켜 하나의 군대는 무관으로 나가고, 하나의 군대는 검중으로 내려보낼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수도 언ㆍ영은 뒤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흐트러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습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화를 만나 걱정한다면 늦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서 빨리 이를 깊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대왕께서 진실로 제 말을 따르신다면, 저는 산동의 제후들에게 계절마다 공물을 바쳐 대왕의 밝으신 가르침을 신봉케 하고, 그들의 국가를 위탁하고 종묘에 봉사하고, 병사들을 훈련하고 무기를 만들어 대왕의 뜻대로 부릴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계책을 채용해 주시면, 한ㆍ위ㆍ제ㆍ연ㆍ조ㆍ위나라의 아름다운 음악과 미인은 임금의 후궁에 가득 차고, 연ㆍ대의 낙타와 훌륭한 말들은 틀림없이 왕의 마구간에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종이 성공하면 초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되는 것이요, 연횡이 성공하면 진나라가 천하의 황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패왕의 사업을 버리고 남의 신하가 되는 오명을 뒤집어쓰려는 것은 대왕께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여깁니다.
대체로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 같은 나라로서 천하를 집어삼킬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라 할 수 있습니다. 연횡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제후들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에 바치려고 하나,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길러 원수를 받들어 모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신하 된 자가 자신 임금의 땅을 쪼개어 호랑이나 늑대 같은 진나라와 교제하고, 나아가서는 천하를 침략하도록 유도하여, 마침내 진나라 때문에 걱정거리가 생겨도 그 재앙을 돌아보지 않으며, 밖으로 진나라의 위력을 믿고, 안으로 임금을 위협하여 땅을 쪼개 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대역 불충으로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합종이 성립되면 제후들은 토지를 바쳐 초나라를 섬기고, 연횡이 성립되면 초나라는 땅을 떼어 진나라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책은 매우 다릅니다. 대왕께서는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소진은 초나라의 지세, 군사력, 군량미, 국제 정세 따위를 세세히 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기반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조나라 왕의 욕구를 자극하여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소진은 각국의 왕을 만나 이런 식으로 유세하여 결국 여섯 나라의 합종을 끌어냈다. 그 결과 연합한 여섯 나라의 재상직을 동시에 겸하게 되었다. 한 나라의 재상이라도 대단한 일인데 여섯 나라의 재상이라니, 그 위세가 어땠을까? 그 후 고향 낙양을 지나가는데, 행차가 얼마나 대단하던지 임금의 행차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주나라 현왕은 소식을 듣고 두려워 길을 쓸도록 하였고, 교외까지 사람을 보내어 환영하며 위로하였다. 소진의 형제와 아내, 처족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못한 채 엎드려 기면서 식사 심부름을 하였다. 이에 소진이 형수에게 말하였다.
“전에는 거만하더니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도 공손하십니까?” 형수는 떨리는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였다. “계자님의 지위가 귀하고 재물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한 사람의 몸으로서 부귀하면 친척도 우러러보지만,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남이라면 어떻겠는가! 만약 나에게 이 낙양성 밖에 비탈밭 두어 뙈기만 주었던들 내 어찌 지금 여섯 나라 재상의 도장을 차고 다닐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1천 금을 풀어 일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진이 처음 집을 떠날 때 남에게 100전을 빌려 노자로 삼은 적이 있는데, 부귀한 몸이 된 지금에는 100금으로써 이를 갚고 또 일찍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도 모두 보상하였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소진의 집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진은‘꽃 한번 피우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 거지꼴로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을 당신은 보았는가. 중요한 것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더라도 기어이 해내고 마는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