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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28. 2023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말의 힘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내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요리를 배웠다. 얼마간 열심히 다니더니 시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다며 정성껏 만들어 바리바리 싸서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며느리가 그 정도 성의를 보이면 “참 맛있다. 바쁠 텐데 언제 이런 걸 언제 다 준비했니? 고맙다.”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며느리의 수고를 칭찬하기는커녕 “애, 너는 네 신랑 옷을 왜 저렇게 입혔니?” 깔끔하고 멋 부리기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며 너무 편한 옷을 입고간 게 실수였다. 그렇더라도 옷을 내가 입지 누가 입혀주는 것이 아닌데 어머니는 괜히 며느리 탓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어떻게 시달렸는지 상상하면 알 것이다. 그 이후 오랫동안 며느리 반찬은 없었다.


  말은 얼마나 힘이 있을까?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는데 사실일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말이 씨가 된다.’ 같은 속담은 모두 말이 지닌 힘을 나타낸다. 


  세상에는 따뜻한 말만 있는 게 아니어서 말 때문에 벌어지는 폭력이나 살인 같은 강력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옛 직장동료인 여성 2명과 남성 2명을 여러 차례 칼로 찌르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언어폭력에 시달린 사람이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 가정 내 폭언도 심각한 불화를 낳는다. 연예인 부부가 이혼 사유를 공개한 적이 있다. 원인은 언어폭력이다. 이들 부부 문제를 다룬 모 방송에서 부인은 남편이 화가 나면 절제하기 힘든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며 말다툼을 하면 언어폭력이 심하다고 밝혔다. 언어폭력과 폭행은 적지 않은 이혼 사유다. 


  언어폭력 문제는 학교에서도 심각하다. 언어폭력에 시달린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부가 2022년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발표에 따르면 피해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따돌림(13.3%) 순이다. 모든 학교급에서 ‘언어폭력’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정일근 시인은 <신문지 밥상>에서‘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등학교도 못 나온 어른의 말씀 철학이 이렇다는 것이다.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구시렁구시렁 하는데요
   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해방 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이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말씀 철학

                                                  -<신문지 밥상>, 정일근     


  전국시대 진(晉)나라는 지· 위· 조· 한 씨 같은 몇몇 귀족 세력이 왕실을 능가했다. 이들 중 지씨 가문 세력이 가장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씨 가문은 멸망하고 진나라는 위 ․ 조 ․ 한 세 나라로 갈라진다. 지씨 가문 멸망에는 후계자를 잘못 정한 이유도 있다. 물론 후계자로 낙점받은 지백요가 결코 능력이 떨어지는 인사는 아니었다. 틀림없이 능력 있는 후계자였다. 

  리더에게 능력이란 무엇일까? 리더는 혼자 좋은 성과를 낼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함께 성과를 낼 줄 알아야 한다. 혼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만 조직원과 함께 하는 일에서 부진한 성과를 낸다면 능력 있는 리더가 아니다. 리더가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한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인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백요가 그랬다.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자.    

 

  지씨 가문의 장자 지선자(知宣子)는 후계자로 아들 요를 마음에 두고 여기저기에 의견을 물었다. 지백요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호걸이었다. 그러나 일족인 지과(知果)에게 물어보니 기대와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제 생각에는 차라리 소(宵, 지선자의 다른 아들)가 나을 듯합니다.”

  지선자가 대답했다.

  “소는 행동거지와 마음 씀씀이가 불순합니다.”


  지과가 대답했다.

  “소의 불순함이야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지만, 요의 불순함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불순하면 나라를 망치지만 드러나는 불순함은 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가 남보다 나은 점이 다섯 가지가 있고, 남보다 못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수염이 아름답고 몸집이 큰 것이 남보다 뛰어나고, 활을 쏘고 말을 몰고 힘을 쓰는 데도 남보다 뛰어나고, 여러 기예를 두루 익힌 것이 남보다 뛰어나고, 문장을 잘 짓고 언변이 유려한 것도 남보다 낫고, 굳세고, 씩씩하며 과감한 점도 남보다 낫습니다.”


  이 정도라면 후계자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지과의 눈에는 결정적인 결점이 보였다.

  “그러나 요는 참으로 어진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의 다섯 가지 장점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어질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누가 참아내겠습니까? 기어이 요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우리 지씨 가문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지백요가 능력은 뛰어나나 사람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선자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싸움터에서 힘과 용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앞으로 지씨 가문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지선자는 뛰어난 외모와 재능을 가진 요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후계자로 삼았다. 


  지과는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자 지씨에서 보(輔)씨로 성을 바꾸어 버렸다. 지백요가 지씨 가문을 파탄 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지과의 지인지감이 대단하다. 지과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지백요의 안하무인 행동은 여타 거대 씨족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술자리에서 사람을 모욕하는 짓이 도를 넘었다. 그는 조간자에 이어 정경이 되자 진(晉)나라의 이름으로 군대를 부렸다.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위씨, 한씨 가문의 종주들과 함께 잔치를 열었는데, 지백요는 마음 놓고 한강자(韓康子) 호(虎)와 그의 모신(謀臣) 단규(段規)를 모욕했다. 단규는 한호가 가장 믿는 지모가였다. 그러자 지씨 가문의 사람이 지백요에게 충고했다.

  “주군, 저들을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난리가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지백요는 코웃음을 쳤다.

  “난리라면 장차 내가 일으킬 것이오. 내가 지금 난을 일으키지 않는데, 감히 누가 일으킨단 말이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서(周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망이란 꼭 큰일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작은 곳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대저 군자는 능히 작은 일에 신경을 썼기에 큰 우환을 막았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연회 한 번에 남의 군주 되는 사람과 신하를 한꺼번에 욕보이시고는 대비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감히 난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하시니 이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벌이나 개미 따위 벌레도 사람을 해할 수 있는데 남의 군주 노릇하는 자와 신하라면 어떻겠습니까?” 지백요는 여전히 들은 체하지 않았다.     


     

언어 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

  지백요와 상반되는 인물을 보자. 역시 진나라 거대 씨족인 조씨 가문을 이끄는 조무휼 이야기다. 무휼의 아버지 조간자가 여러 아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무휼이 가장 현명했다. 간자가 여러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상산에 귀중한 부절을 감추어 놓았는데 먼저 찾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 여러 아들이 상산으로 말을 달려 산에 올라가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무휼이 돌아와 말했다. “벌써 부절을 찾았습니다. 상산 위에서 대 나라를 보니, 대 나라는 빼앗을 수 있습니다.” 간자는 이에 무휼이 정말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태자 백로를 폐위하고 무휼을 태자로 삼았다.


  조간자가 병이 들자 태자 무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포위하게 했다. 정나라 원정에서 돌아오는 날 지백요와 조무휼이 연회석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지백이 술에 취하자 무휼에게 술을 뿌리며 두들겨 팼다.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대 씨족인 조씨 가문 우두머리에게 손찌검하다니. 무휼의 여러 신하가지백을 죽여야 한다고 간청하자 무휼이 말했다. 


  “군주께서 나를 태자로 삼으신 까닭은 내가 욕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무휼도 지백을 골칫거리로 생각했다. 지백이 돌아와서는 이 일을 간자에게 말하고 무휼을 폐위토록 하였으나 간자는 듣지 않았다. 무휼이 이 일로 말미암아 지백에게 원망을 품게 되었다. 지모와 충동 조절 능력을 갖춘 조무휼은 나중에 지씨 가문을 멸하고 전국시대에 강력한 국가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버드 100년 전통 말하기 수업] 에는 언어폭력에 대응하는 유용한 방법을 알려준다. 하버드대학의 버너스 루비 교수는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언어폭력이 있다고 말했다.     

  1. 폭력으로 수식된 언어를 사용한다. 나쁜 말을 하지 않고 평온한 말투를 사용하지만 듣는 사람은 천 개의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 든다.

  2.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미 모든 결론을 내렸고, 말하는 것은 그저 당신을 모욕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은 그저 스스로 모욕을 찾아 듣는 꼴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악담을 내뱉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저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싫어요!", "저한테 소리치지 마세요!" 이런 말에는 모두 같은 특징이 있다. 이 불쾌한 일을 철저하게 자신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이다.

  왜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게 하는가? 당신이 화가 난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통제할 권리를 순순히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뜻이다. 자신을 통제할 능력이 있어야 다른 부분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충동을 억제하라. 상대방이 언어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면 중점을 상대방에게 옮겨야 한다. "당신은 오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가 보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질문한다. "내 잘못도 아닌데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하고 말하지 않고 "이 일 때문에 네가 화가 많이 났구나." 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 방식의 중점은 상대방의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상대방이 언어폭력을 한 일은 상대방 생활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다. 일단 당신이 ‘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두 사람 간의 심리는 급격하게 변한다. 그 일이 당신과 상대방 사이에 있게 된다. 하지만 ‘너’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언어폭력이 발생한 이유를 상대방에게 남겨둘 수 있다. 상대방 혼자만이 문제가 된다. 상대방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행동을 당신에게 설명해야만 한다.

  또한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보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폭력으로 상처받지 않는다. 당신이 상대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 문제가 아니다.     


  자기 힘을 과시하는 사람에게 덤비지 마라언어폭력이 교류 관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당신은 상대방에게 그런 행동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먼저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게 하고 당신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보자. 상대방이 당신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행동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기 신변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상대방 “권위도 있고, 권리도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주고 상대방의 화를 해소하는 것이 좋다. "음, 당신이 옳아요. 제가 틀렸어요." 하고 말해주자. 이 말로 욕설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 후 당신은 그곳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상대가 진정되고 나서 다시 대화할지 선택하면 된다. 이런 소통 방식은 이해받고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법이라 아주 효과가 크다. 언어폭력을 언어폭력으로 반격하지 않는다면 소통은 더욱 순조로워진다.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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