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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31. 2023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하면

불통이 작게는 개인의 불행, 크게는 조직의 불행

                대학을 들어가니 전국 곳곳 출신들이 동기가 되었다. 부산, 진주, 목포, 대전… 부산 출신 친구 사투리가 특히 심했다. 알아듣지 못해 종종 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팔려 간 소도 그랬을 것이다. 강원도 사투리로 말을 배운 소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완전 외국어나 다름없을 터였다. 박성우 시인의 <누가 더 깝깝허가이>는 이런 모습을 아주 재밌게 표현해 놓았다.        

   

  강원도 산골 어디서 어지간히 부렸다던 일소를

  철산양반이 단단히 값을 쳐주고 사왔다

  한데 사달이 났다 워워 핫다매 워워랑께

  내나 같은 말일 것 같은데

  일소가 아랫녘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한다

  호미 어찌야쓰까이, 일소는 일소대로 깝깝하고 

  철산양반은 철산양반대로 속이 터진다

  일소를 판 원주인에게 전화를 넣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저번참과 똑같단다

  그 소, 날래 일 잘햇드래요

                             -<누가 더 깝깝허가이>, 박성우     


  방은진 감독 전도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약을 운반하게 되어 프랑스에서 체포된 주인공의 억울한 사연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얼마나 갑갑했을까? 

  사용하는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된다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말을 쓰는데도 통하지 않는 경우다. 벽창호 같은 사람 말이다. 자기만 옳다고 믿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이런 일은 지적 겸손성이 낮은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겪은 일은 지적 겸손성이 매우 낮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한 친구가 퇴직 후 놀 수만 없어 약국이나 병원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의약품 도매회사에 영업직으로 취직을 했다. 경비나 청소보다는 덜 힘들고 깨끗한 일이라 급여는 적어도 일하기로 했다. 사장이 나이가 어려도 형님 형님 하며 대우해 줘서 친구는 한동안 내 일처럼 열심히 일했다. 사람은 오래 겪어 봐야 안다고 했던가. 사장에게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지 걸핏하면 화를 내서 직원들이 모두 사장을 두려워했다. 지적을 받을 때 해명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고, 신입 직원이 모르는 것이 있어 질문하면 생각 없이 물어본다며 핀잔을 주었다. 실적이 떨어지면 인격 모독까지 하여 직원이 20여 명인데 1년에 10여 명씩 얼굴이 바뀐다고 한다. 

  사장은 모든 직원에게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 들게 한다. 직원의 행동이나 말, 심지어 근무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다. 직원은 사장에게 말하기 전에 한참을 망설여야 하고 사장이 직원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긴장된 태도를 유지하며 불안하다. 사장과 함께 있을 때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말할 때 사장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에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심지어 사장이 흰색 승용차를 타는데, 비슷한 승용차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직원이 있었다. 이런 사장은 지적 겸손성이 매우 낮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어난 일화 하나를 보자. 하버드 협상연구소에서 일하는 다니엘 사피로(Daniel L. Shapiro)와 로저 피셔(Roger Fisher)가 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중년 남성이 병원에 입원했다. 남성은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젊은 의사는 환자가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남자는 일반 환자실에 입원해 심장박동 모니터를 부착했으며, 간호사가 밤새 모니터를 관찰했다. 아침에 젊은 의사가 병실에 와서 차트를 훑어본 후 몇 분 동안 환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간호사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밤 12시 전후에 비정상적인 심장박동이 있었어요. 중환자실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환자는 오늘 아침 몸이 나아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심장박동이 조금 있다 해서 중환자실로 보낼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면…….” 간호사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환자의 심장 질환을 다뤘나요? 나는 저 환자를 진찰했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의료 기록이나 작성하도록 하세요.”

  간호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의사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 일에 분노를 느꼈다. 의사가 병실에서 나가자 간호사는 환자가 한밤중에 심한 흉통을 느꼈으며, 통증 때문에 팔까지 열이 뻗쳤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 사실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의사가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환자의 심장 기능이 멈췄다. 심폐소생 팀이 병실에 도착하기까지는 10분이 걸렸다. 환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게 됐다.     

  소통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상황은 단지 소통의 문제만은 아니다. 겸손, 인정, 관용, 공감과 같은 다른 요소들도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만 있었더라도 환자를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적 겸손성이 높은 사람은 생각이 유연하다.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지적 겸손은 실수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 의견을 한 번쯤 생각하도록 하고 자신에게 무슨 결점이 있는지, 단점이 있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학습에 민첩하기 때문이다.      


40만 명을 죽인 리더의 불통

  조나라 군대가 장평 전투에서 진나라 백기 장군에 의해 40만 명이 생매장당한 일이 있었다. 이 참담함 뒤에는 남의 말을 듣지 않은 리더십이 있다. 리더가 불통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여준 사례다.

  조괄은 소년 시절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잘하였다. 천하의 병법가로서는 자기를 당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였다. 일찍이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토론하였을 때 아버지도 아들 조괄을 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까닭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것이오. 그런데 괄은 그것을 가볍게 말하고 있소. 조나라가 괄을 장군에 임명하는 일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일 그 애가 장군이 되는 날이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를 망치고 말 것이오.”

  4월 진나라 장수 왕흘이 조나라를 공격했을 때 조나라는 염파를 장수로 삼았다. 조나라 군사가 진나라의 척후병과 접전했다. 진나라 척후병이 조나라 비장 가(茄)를 죽였다. 6월에 조나라의 군영을 함락했는데 두 개의 보루를 취하고 교위 네 명을 사로잡았다. 7월에 조나라 군대는 보루를 쌓고 막았으나 진나라는 다시 보루를 공격하여 교위 둘을 사로잡고 서쪽 보루를 취했다.


  염파는 보루를 견고히 하고 진나라를 기다렸다. 진나라가 여러 차례 싸움을 걸었으나 조나라 군대는 나오지 않았다. 조왕이 여러 차례 나무랐다. 그러자 진나라 승상 응후는 사람들에게 천금을 가지고 조나라로 가서 “진나라가 싫어하는 것은 마복군(馬服君,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쉽고 또 항복할 것이다.”하고 이간질을 하게 했다.


  조왕은 염파가 군사를 많이 잃고, 군대가 여러 차례 패했는데도 오히려 보루를 지킨 채 나가 싸우려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었는데 여기에 진나라의 이간질을 듣고는 바로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조괄의 어머니는 조괄이 출발하기에 앞서 왕에게 글을 올렸다. “조괄을 장군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제가 괄의 아비를 모셨을 때, 마침 괄의 아비는 장군으로 있었습니다. 장군은 직접 먹여 살리는 부하가 수십 명이나 되었고 친구는 수백 명에 이르렀습니다. 대왕이나 왕족들에게서 하사받은 물품은 모조리 군리(軍吏)와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출정 명령을 받은 날부터는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괄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으나, 군리 가운데 괄을 우러러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왕께서 내리신 돈과 비단은 집에다 저장하고,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사들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조괄이 어찌 아비와 같으리라 생각하옵니까? 아비와 자식은 마음 쓰는 것부터가 다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괄을 장군으로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미는 더는 말을 말라. 나는 이미 결정을 하였노라.”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는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내신다면, 그 애가 소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저를 자식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왕은 승낙하였다.

  진나라는 조괄이 장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몰래 무안군 백기를 상장군으로, 왕흘을 부장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군중에 무안군이 상장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자는 목을 자르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조괄은 장군으로 임명되자 군령을 모조리 뜯어고치고 군리들을 전부 교체하였다. 


군중에 도착한 조괄은 바로 출병하여 진나라의 군대를 공격했다. 진나라 군대는 일부러 패한 척 도망가면서 두 갈래로 기병을 숨겨 퇴로를 끊고자 했다. 조나라 군대가 승기를 몰아 진나라 보루에까지 추격했다. 보루는 견고하여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자 진나라 기병 2만 5천이 조나라 군대 퇴로를 끊고, 또 기병 5천이 조나라 보루 사이를 끊으니 조나라 군대는 둘로 나뉘고 식량 보급로가 끊겼다. 이어 진나라는 가벼운 경병을 내어 조나라를 공격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조나라는 보루를 쌓고 수비하면서 구원병을 기다렸다. 조나라 식량 보급로가 끊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진왕은 몸소 하내까지 와서 백성들의 작위를 한 등급씩 올리는 한편 15세 이상을 모두 징발하여 장평으로 보내 조나라 구원병과 식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9월이 되자 46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한 조나라 군사들은 몰래 서로를 죽여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진나라 보루를 공격하여 탈출하려고 부대를 넷으로 나누어 4, 5차례 공격했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조나라 장군 조괄은 정예병을 뽑아 몸소 육박전을 벌였지만 진나라 군대는 활을 쏘아 조괄을 죽였다. 조괄의 군대는 패했고, 병사 40만은 무안군에게 투항했다. 무안군은 이렇게 생각했다. “전에 진나라가 상당을 빼앗자 상당 사람들은 진나라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여 조나라로 귀순했다. 조나라 병사들도 왔다 갔다 할 것이니 다 죽이지 않으면 난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이에 속임수를 써서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이고, 나이 어린 240명만 남겨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전후 목을 베거나 포로로 잡은 수가 45만 명이었다. 조나라 사람들이 크게 떨었다.

  지적 겸손성이 낮은 조괄과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임금 때문에 45만 명이 죽었다. 리더의 불통은 곧 조직의 붕괴, 회사의 몰락, 나라의 패망으로 이어진다. 조괄과 아버지 조사를 비교해 보면 그 원인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조사는 장군이었을 때 직접 먹여 살리는 부하가 수십 명이나 되었고, 친구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 대왕이나 왕족들에게서 하사받은 물품은 모조리 군리(軍吏)와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출정 명령을 받은 날부터는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조괄은 부하들 가운데 그를 우러러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왕이 내린 돈과 비단은 집에다 쌓아 놓고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매일 둘러보았다가 사들였다. 리더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려는 데 관심이 많으니 어떻게 신뢰를 얻겠는가?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불통, 조사와 조왕의 불통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았다. 불통이 작게는 개인의 불행이 되고, 크게는 조직의 불행이 되었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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