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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Sep 14. 2023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아무런 의도 없이 다 주는 연탄 같은 삶

                     해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아버지는 연탄을 사들였다. 겨우내 쓸 연탄이 집안에 가득 차면 쌀독에 쌀 그득한 것만큼이나 뿌듯해하셨다. 연탄은 겨우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씻는 물을 데웠다. 연탄 덕에 뜨끈한 아랫목에는 청국장을 띄우고 따뜻한 밥이 식지 않도록 묻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연탄은 재가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이런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묻기도 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골목길이 질척질척해지면 쌓아 놓은 연탄재를 깔았다. 연탄이야말로 뜨겁게 타올랐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였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 또 묻는다. 당신은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어본 적 있는가?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 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연탄 한 장>, 안도현      

    

  복식은 하남 사람으로 농사와 목축을 업으로 삼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린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성장하자 복식은 집을 나와 분가하면서 홀로 키우던 양 1백 마리만 취하고, 전답과 재물을 모두 동생에게 주었다.


  복식은 산에 들어가서 십여 년 동안 방목하여 양을 천여 마리로 늘려서 그것으로 전답과 집과 샀다. 동생이 완전히 파산하자, 복식은 동생에게 재산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마침 한나라가 흉노를 공격하던 때였다. 복식은 글을 올려서 자신이 소유한 재산 반을 조정에 바쳐 변방 작전 비용에 보태라고 했다. 이에 황제는 사자를 보내어 복식에게 이유를 물었다.      


  “관리가 되고 싶은가?” 

  복식이 대답했다. 

  “신은 소싯적부터 목축만 해서 관리가 되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원하지 않습니다.” 

  다시 사자가 물었다. 

  “집안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 일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인가?” 

  복식이 부인하며 말했다. 

  “신은 평생 남과 분쟁한 적이 없고, 저는 고을의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었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가르치고 순종시켜서 고을 사람 모두가 저를 따릅니다. 제가 어찌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겠습니까? 저는 고발할 말이 없습니다.”

  사자가 또 물었다. 

  “진실로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해 이렇게 많은 재산을 나라에 기부했는가?” 

  복식이 대답했다. 

  “제 소견으로 황제께서 흉노를 토벌하려면 현자는 마땅히 변방의 싸움터에서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켜야 하고, 재산이 있는 자들은 마땅히 조정에 헌납해야 흉노를 소멸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자는 복식의 말을 들은 그대로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가 이 사실을 승상인 공손홍에게 이야기하니, 공손홍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인정에 맞지 않습니다. 법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교화의 모범으로 삼아 법을 어지럽혀서는 아니 되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청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이에 황제는 오랫동안 복식의 상서에 회답하지 않다가, 몇 년이 지난 후 복식에게 그만 돌아가도록 했다. 복식은 예전처럼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다.          


아무런 의도 없이 다 주는 연탄 같은 삶

  한해 남짓이 지난 후에도 한나라 군대는 수차례에 걸쳐 출정에 나섰다. 이에 흉노의 2인자 혼야왕(渾邪王)은 수만 명을 데리고 항복했다. 이들이 장안에 도착하자 크게 기뻐한 무제는 혼야왕에게 수십만의 거금뿐 아니라 일만 호를 식읍으로 주고 탑음후로 봉해주었다.


  혼야왕의 투항으로 조정에서 쓰는 비용이 증가하여 창고가 텅 빌 정도였다. 다음 해에는 빈민들이 대량으로 이주해 와서 모두 조정에만 의지하니, 빈민들을 다 구휼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 무렵 복식은 20만 전을 하남 태수에게 주면서 이주민들을 위한 일에 보태게 하였다. 하남 태수는 빈민들을 도운 부자 명부를 상부에 올리니, 황제는 복식 이름을 보고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자는 본디 전에도 자기 재산 반을 변방 지키는 비용으로 헌납했다.” 

  그러고는 곧 복식에게 4백 명이 변경을 지키는 요역에서 면제받을 권한을 주었다.

  복식은 권한을 다시 조정에 전부 반납했다. 부자들이 모두 재산을 은닉하려고 할 때 오직 복식만은 앞장서서 재산을 조정에 헌납하여 변방의 비용에 보태고자 했다. 황제는 마침내 복식이 덕망이 높은 장자라고 여기고, 그를 높여서 백성들의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


  애초부터 복식은 낭관(郎官)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황제가 이렇게 요구했다. 

  “짐의 양들도 상림원에 있는데 당신이 짐을 대신하여 그것들을 키웠으면 좋겠소.” 

  이에 복식은 바로 낭관의 직위를 받아들여 베옷과 짚신 차림으로 양을 키웠다. 1년 남짓이 되자 양은 비대해지고 또 왕성하게 번식했다. 황제가 지나는 길에 복식이 양을 돌보는 것을 보고 방법이 좋다고 칭찬했다.


  복식이 아뢰었다. 

  “비단 양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이치 또한 이와 같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해야 합니다. 병든 양이 있으면 바로 제거하여 나머지 양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황상은 복식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여겨, 구지현의 현령으로 발령 내어 시험했다. 구지현 사람들이 복식이 편하다고 하자, 다시 성고현 현령으로 승진시켜 조운까지도 맡겼는데 가장 성적이 좋았다. 이에 황제는 복식이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여겨 그를 제왕(齊王)의 태부로 삼았다.     


  복식처럼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기 혼자 힘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재산을 모은 사람은 인색한 경우가 많다. 아끼는 게 습관이 되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조차도 돈을 쓰지 못한다. 하물며 이웃이나 나라를 위하여 큰돈을 내놓는 일은 쉽지 않다. 가끔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했다는 뉴스를 접하지만 얼마나 특별하면 뉴스가 되겠는가. 


  복식은 그렇게 큰돈을 내놓으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과 비교하면 급이 다르다. 돈만 벌 줄 알지 세금 낼 줄 모르는 파렴치와 차원이 달랐다. 복식은‘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누구에게나 따뜻한 연탄 같은 사람이었다.      


  조승(趙勝)은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이다. 세 차례에 걸쳐 재상이 되었으며, 현명하고 붙임성이 있어 식객 3,000명을 먹였다. 조승은 평원에 봉하여졌으므로 평원군이라 불렸다.


  BC 257년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초나라는 춘신군에게 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고, 위나라 신릉군도 조나라를 구하러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이르기 전에 진나라는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고, 한단이 위급해져 항복할 판이었다. 평원군은 몹시 걱정스러웠다.


  한단의 객사 관리인의 아들 이동(李同)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군께서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평원군은 답했다. 

  “나라가 망하면 나도 포로가 될 터인데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이동은 이렇게 따졌다.


 “한단의 백성들은 사람 뼈를 땔감으로 삼고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고 있으니 정말 위급합니다. 그러나 군의 후궁은 100명이 넘고 비첩들은 비단옷에 쌀밥과 고기반찬을 남깁니다. 백성들은 거친 베옷도 갖추어 입지 못하고 술지게미와 쌀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곤궁하고 무기는 다 떨어져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듭니다. 그러나 군의 기물과 악기는 여전합니다.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격파하면 군께서는 어디서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안전하면 군께서는 이런 것들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군께서는 부인 이하 모두 병사들 사이에 편입시켜서 일을 나누어서 하도록 하고, 집안 모든 것을 다 나누어 군대에 베푸십시오. 사람들은 위기와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더 쉽게 감사하게 됩니다.”


  이에 평원군은 이동의 말을 따르니 결사대 3천 명을 얻었다. 이동이 3천 명과 함께 진의 군대로 달려가니 진의 군대는 삽 십 리를 퇴각했다. 마침 초와 위의 구원병이 이르니 진의 군대는 물러가고 한단이 보전되었다. 이동은 전투에서 사망했다. 


  이동은 연탄 한 장 같은 역할을 감당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하염없이 뜨거워지’다가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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