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을 때 답을 찾아내는 능력, 섬광같은 통찰력
일상에서 보통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버리는 것을 시인은 다르게 본다. 사료와 음식의 다른 점을 누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기발한 생각은 예술작품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발명품이 되기도 하고 섬광 같은 통찰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 없이 먹는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같은 패스트푸드가 동물 사료와 다를 게 없다는 오세영 시인의 생각, 시인은 햄버거를 먹으며 시를 얻었다.
사료와 음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먹이는 것과 먹는 것 혹은
만들어져 있는 것과 자신이 만드는 것.
사람은
제 입맛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먹지만
가축은
싫든 좋든 이미 배합된 재료의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
김치와 두부와 멸치와 장조림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이것저것 골라 자신이 만들어 먹는 음식,
그러나 나는 지금
햄과 치즈와 토막난 토마토와 빵과 방부제가 일률적으로 배합된
아메리카의 사료를 먹고 있다.
재료를 넣고 뺄 수도,
젓가락을 댈 수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이
맨손으로 한 입 덥썩 물어야 하는 저
음식의 독재.
자본의 길들이기.
자유는 아득한 기억의 입맛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햄버거를 먹으며>, 오세영
제나라로 가던 초나라 사신이 송(宋)나라에서 잡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초나라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송나라 도성을 포위했다. 송나라의 결사 항전으로 싸움이 장기전으로 치닫고 성과가 없자 장왕은 군사를 돌리려 했다. 그때 왕을 수행하던 신숙시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한다. [춘추전국이야기]의 저자 공원국은 ‘중국사를 바꾼 진언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획기적인 안이다.
“근처에 머물 집을 짓고 물러나 땅을 갈고 있으면 송나라는 반드시 명을 들을 것입니다.”
위의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중대한 발언으로 향후 중국식 군사작전의 중요한 축이 되는 둔전(屯田)이라는 제도의 기원을 설명해준다. 장왕은 이 말을 따랐다. 신숙시는 둔전을 만들어 초나라가 장기전으로 적을 지치게 하는 전술을 창안한 것이다. 송나라 사람들은 아예 집을 짓고 씨를 뿌리는 초나라 군인들 행동에 버틸 의지를 잃어버렸다.
서문표가 업현의 현령이 되었다. 서문표는 업현에 도착하자마자 장로들을 불러 놓고 백성들이 어떤 일로 고통을 겪고 있는지 물었다. 장로들이 대답하였다.
“하수, 황하의 신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가난하게 삽니다.”
서문표가 다시 까닭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업현의 삼로와 정연들은 해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수백만 전을 거둡니다. 그중에서 2만~3만 전은 하백에게 바치는 여자에게 쓰고 나머지 돈은 무당들이 나누어 가지고 갑니다. 그때가 되면 무당들이 돌아다니며 남의 집 어여쁜 딸을 보고 이 처녀야말로 하백의 아내가 될 만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폐백을 보내어 주고 그 처녀를 데려다가 목욕을 시킨 다음 갖가지 비단으로 새 옷을 지어 입히고는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재계를 시키기 위해 재궁을 물가에 세웁니다. 그리고는 두꺼운 비단으로 만든 붉은 색깔의 장막을 쳐서 그 안에 머물게 합니다. 처녀에게는 쇠고기, 술, 밥 따위를 제공합니다.
열흘 남짓 지나면 여럿이서 화장을 해 주고, 시집갈 때의 상석 같은 것을 만들어 처녀를 그 위에 앉힌 다음 이것을 하수에다 띄웁니다. 처음에는 물에 떠 있다가 수십 리쯤 떠내려가면 물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아름다운 딸을 둔 집에서는 큰무당이 하백을 위해 자기 딸을 데려가지나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딸을 데리고 먼 곳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런 까닭으로 성안은 갈수록 사람이 줄어들고 또 가난하게 삽니다. 이 일은 유래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민간에는 만일 하백에게 아내를 보내 주지 않으면, 물이 범람하여 백성들이 모두 빠져 죽게 된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에 서문표가 말하였다.
“하백에게 아내를 보낼 시기가 되어, 삼로· 무당· 부로(父老)들이 처녀를 하수로 보낼 때 부디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나가 처녀를 전송하겠소.”
답이 없을 때 답을 찾아내는 능력, 섬광같은 통찰력
그날이 되었다. 서문표가 물가로 나가 보니 삼로와 관속과 호족, 마을 부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 밖에 구경 온 사람들도 2천~3천 명이나 되었다. 큰 무당은 이미 70살이 넘은 할미로, 제자 무녀를 10명쯤 데리고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비단 홑옷을 입고 큰무당 뒤에 서 있었다. 서문표가 말하였다.
“하백의 신부를 이리 불러오너라. 신부가 아름다운지 어떤지를 내가 직접 보리라.”
그러자 장막 속에서 처녀를 데리고 나왔다. 서문표는 처녀를 슬쩍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삼로· 무당· 부로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 않소. 큰무당 할멈이 수고스럽지만 하수로 들어가 다시 아름다운 처녀를 얻어서 다음날 보내 드리겠다고 하백에게 여쭙고 오도록 하시오.”
그러고는 당장 사졸들을 시켜서 함께 큰무당을 안아 하수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자 서문표는 말하였다.
“할멈이 왜 이다지도 꾸물대고 있는 걸까? 제자 중에 누가 가서 빨리 불러오너라!”
그러고는 또 제자 한 사람을 강물 속에 던졌다. 또 얼마가 지나자 서문표가 말하였다.
“제자마저 어찌 이토록 늦는 걸까? 한 사람 더 들어가서 빨리 오라고 전하라!”
또다시 제자 하나를 강물 속에 던졌다. 이리하여 모두 제자 세 사람을 물속에 던지고 나서 서문표는 말하였다.
“할멈이나 제자들은 여자들이라서 사정을 제대로 아뢰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번거롭지만 삼로들께서 물속으로 들어가 하백에게 아뢰어야 하겠군.”
이번에는 삼로들을 강물 속에 던졌다. 서문표는 비녀를 관(冠) 앞에 찌르고 몸을 경(磬)처럼 굽혀 절을 한 번 한 다음, 공손히 강물을 바라보고 서서 한동안 기다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장로와 아전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서문표가 돌아보며 말하였다.
“무당도 삼로도 돌아오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누가 들어가서 재촉을 해야겠소.”
그러고는 다시 관리와 호족 한 사람씩 강물로 들여보내려 하자 모두 머리를 찧었다. 이마가 깨어져서 피가 땅바닥에 흘러내리고 얼굴은 꺼진 잿빛처럼 되었다. 서문표가 말하였다.
“그럼, 잠시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하지.”
얼마가 지난 다음 서문표는 말하였다.
“관리들은 일어나라. 아무래도 하백은 찾아간 손님들을 붙들어 두고 좀처럼 돌려보내지 않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도록 하라.”
업현의 관리와 백성들은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여 그 뒤부터는 하백을 위해 신부를 보낸다는 따위의 소리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
신숙시와 서문표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윌리엄 더건(William Duggan)은 [제7의 감각]에서 남들이 생각지 못한 방법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전문가 직관’과 ‘전략적 직관’으로 나눴다. 두 가지의 다른 점을 더건은 이렇게 설명한다.
전문가 직관은 오랜 경험이 필요하고 익숙한 상황에서 빠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 전혀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미래를 예측할 때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전략적 직관이다. 전문가 직관은 항상 빠르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항상 느리다.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상이는 결정적이다. 전문가 직관은 전략적 직관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비슷한 문제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패턴을 인식하게 된다. 전문가 직관은 바로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의 뇌가 좋은 해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몇 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 무작정 서두른다고 그것을 얻어낼 수는 없다.
더건은 전략적 직관의 작동방식을 설명하며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전쟁론]에서 언급한‘섬광 같은 통찰력’을 끌어온다. 더건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심에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혁신가들이 혁신을 발견하는 것, 예술가들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 선구자들이 비전을 얻는 것,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발견을 하는 것 따위의 좋은 아이디어가 인간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는 언제나 이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섬광 같은 통찰력은 훌륭한 장군들의 사고 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것은 갑자기 찾아오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같은 것이다. 전쟁은 불확실의 세계라 진실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 세련되고 날카로운 이성의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전쟁은 우연의 세계다. 인간 활동 중에서 전쟁만큼 우연의 여지가 많은 활동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 활동도 전쟁만큼 모든 측면에서 우연과 끊임없이 접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연은 상황의 불확실성을 키우며 사건의 진행을 방해한다.
정보나 가정이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우연히 끼어들기 때문에 전쟁 당사자는 처음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것이 계획이나 구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영향이 이미 수립한 계획을 뒤집을 만큼 크다면 대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자료가 부족할 때가 자주 있다. 왜냐하면 보통 행동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상황이 신속한 결단을 다그치며 상황을 차분히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숙고할 시간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우연히 들이닥친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는 이미 세운 계획을 모조리 뒤집을 수 없으며 그건 단지 그 계획을 흔들기만 할 뿐이다. 상황 정보는 늘어나지만 불확실성은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늘어난 셈이다. 원인은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점차로 하기 때문이고 우리 결단이 그런 새로운 경험에게서 끊임없이 습격을 당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정신이 늘 전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처럼 예상치 못한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려면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편견에 사로잡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봐서는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나라 대부들과 초회왕이 그랬다. 진진, 유경, 초장왕, 신숙시, 정약용은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보더라도 거기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