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오히려 위대한 성과 창출
꿈 없는 사람이 있을까? 꿈이 있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실현하려고 열심히 산다. 당연하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고 해서 반드시 꿈을 이룬다는 보장은 없다.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방법을 모르면 삐걱거리며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벼랑 끝에 서기도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걸음질 쳐야 하는 상황 앞에서 힘없이 돌아서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 오히려 위대한 성과를 이뤄낸 사람도 있으니, 우선 나희덕의 시 <땅끝>을 감상해보자.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 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땅끝>, 나희덕
노을 같은 찬란한 꿈을 찾아 달려가다 보면, 어둠에 잡아먹힐 듯한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삐걱대다 결국 땅끝에 서게도 된다.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뒷걸음질 쳐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 이렇게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그 참담함이라니. 그러나 그때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반전이라고 부른다. 땅끝에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범저(笵雎)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힘 있는 자를 만나 자리를 얻고 싶었으나 집이 가난하여 활동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우선 위나라 중대부 수가(須賈)를 섬겼다. 범저는 수가가 위나라 소왕의 명을 받아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따라갔다. 그곳에서 몇 달을 머물렀으나 수가는 제나라에서 제대로 회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제나라 양왕은 범저가 변론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금 10근과 쇠고기와 술 따위를 보내왔다. 범저는 이를 거절하며 받지 않았으나, 그 사실을 안 수가는 범저가 위나라 기밀을 팔아먹고 선물을 받았다고 의심하여 격노하였다. 수가는 범저에게 쇠고기와 술만 받고 금은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위나라로 돌아온 수가는 재상 위제에게 범저의 일을 보고하였다. 위제 역시 크게 노하여 범저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범저는 심한 매를 맞고 갈비뼈와 이빨이 부러져 나갔다. 견디다 못한 그는 마침내 죽은 척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인들이 그를 멍석으로 둘둘 말아 뒷간에 버려두고 술 취한 뭇 사람들이 번갈아 거기에 오줌을 누게 하였다. 이런 모욕을 주는 이유는 뒷날에 함부로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자가 없도록 하려는 경고였다. 범저는 멍석에 싸인 채 경비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당신이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만 해준다면 반드시 후한 사례를 하겠소.”
경비병이 멍석 속 시체를 내다 버리겠다고 말하자 위제는 술에 취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범저는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났다. 위제가 곧 후회하고 다시금 범저를 찾도록 하였다. 범저가 이미 위나라 사람 정안평의 보호를 받아 이름을 장록으로 바꾸고 숨어버린 뒤였다.
그 무렵 진(秦)나라 소왕이 알자 왕계를 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정안평은 신분을 속이고 왕계 밑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왕계가 이렇게 물었다.
“위나라에 혹시 우리 진나라로 데리고 갈만한 훌륭한 인물은 없소?”
정안평이 ‘옳도다.’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마을에 장록 선생이란 분이 있습니다. 마침 당신을 뵈옵고 천하대세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다 합니다. 그런데 선생에게는 원수가 있어서 낮에는 나다닐 수가 없습니다.”
왕계가 말하였다. “그러면 밤에 같이 와 주시오.”
그날 밤 정안평은 장록과 함께 왕계를 만났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기도 전에 왕계는 범저의 훌륭한 재능을 알아차렸다. 왕계는 범저와 은밀하게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왕계는 위나라를 하직하고 가는 길에 범저를 수레에 태우고 진나라로 들어가 수도 함양으로 갔다. 그리고 진나라 왕에게 사신으로 갔다 온 일을 보고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란 인물이 있는데 천하의 변사입니다. 선생 말이‘진나라는 계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기를 맞고 있으나 내 의견을 받아들이면 무사할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글로써 전할 수가 없소.’ 하여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왕은 믿지 않았다. 머물 곳을 정해 주긴 하였으나 하찮은 대우를 할 뿐이었다. 범저는 진나라 왕에게서 연락 오기만을 기다렸다. 1년이 흘렀다.
위태로움 속에서 반전을 끌어낸 범저
이때 범저의 마음은 어땠을까? 곧 ‘고운 노을’을 보겠구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범저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는 모양새다. 이때 범저는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하고 한탄만 하지 않았다. 범저는 해결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당시 진나라는 소왕이 즉위한 지 36년이 되는 해였다. 오랜 기간 왕위를 지켰으나 외삼촌과 동생에게 왕권을 위협받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꿰뚫은 범저는 소왕에게 글을 올렸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훌륭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능력이 있어 공로가 큰 자가 관직과 봉록을 받고, 능력 없는 자는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임금이 나라를 번창하게 할 인재를 온 천하에서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범저의 글은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를 내버려 두신 까닭이 신이 어리석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천거한 사람의 지위가 낮아서 신의 말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만일 어느 쪽도 아니시면 바라건대 구경 다니시고 남은 여가에 대왕을 뵐 영광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신이 드리는 말씀에 한마디라도 쓸모없는 것이 있으면 대왕의 처형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에 소왕은 크게 기뻐하며 수레를 보내어 범저를 궁중으로 청해 들이며 사과부터 하였다.
“과인은 진작 선생을 만나보고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마침 의거 나라와 사이에 문제가 긴박한지라 조석으로 태후의 지시를 받아야만 하였기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럭저럭 어려운 문제도 마무리하였으니 선생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과인은 스스로 어리석음을 민망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삼가 주인과 손의 예로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범저는 이를 사양하였다. 이날 범저가 소왕과 만나는 광경을 본 신하들은 모두 숙연히 낯빛을 바꾸고 지켜보았다. 소왕은 좌우를 물리쳤다. 단둘이 되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이 정도면 소왕도 보통이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어떤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범저는 다만 이렇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예, 예.”
잠시 후 진나라 왕은 다시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생께서는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범저는 여전히 그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예, 예.”
이런 일이 세 번이나 거듭되자 진나라 왕은 무릎을 꿇은 채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끝내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그제야 범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범저가 이야기를 빙빙 돌리자 소왕은 무릎을 꿇은 채 사정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진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과인은 어리석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욕됨을 무릅쓰고 와 주셨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선생의 도움을 받아 선왕의 종묘를 이어가도록 한 겁니다. 과인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 선왕을 위해 고아인 과인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앞으로는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위로는 태후에 관한 일로부터 아래로는 대신에 관한 일까지 모든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시고 과인을 의심치 말아 주십시오.”
이 말에 범저가 절을 하자, 진왕도 역시 절을 해 예를 갖추었다. 이때 범저는 원교근공책과 왕권 강화를 위한 내정개혁을 제시했다. 소왕은 범저를 객경에 임명하고 군사에 관한 일을 상의하게 되었다. 소왕은 마침내 범저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범저는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으나 어둠에 잡아먹히고, 그넷줄은 삐걱거렸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뒷걸음을 치지 않았다. 오히려‘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범저는 다른 나라 출신이면서도 진나라에서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다. 범저가 진나라에서 펼친 원교근공책은 진나라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어 중국 최초 통일 왕국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사람 보는 능력이 없어 범저를 핍박한 위나라는 진나라에 망한다.
약간 샛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범저를 수렁에 빠뜨린 수가는 범저가 진나라에서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사실을 알았을까? 수가는 범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다. 진나라로 망명해 진소왕의 재상이 된 줄 까마득히 몰랐다. 나중에 수가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범저가 밤에 몰래 남루한 옷을 입고 찾아가니 수가는 범저에게 두꺼운 솜옷 한 벌을 내주었다. 범저는 수가가 옛 친구에 대한 정의가 있다고 하여 보복하지 않고 귀국하도록 했다.
범저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범저는 집이 가난하여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특별하지 않다. 어쩌면 당신이 처한 상황이 훨씬 더 나을지 모른다. 오해를 받아 심한 매를 맞고 갈비뼈와 이빨이 부러져 나갔다. 멍석으로 둘둘 말려 뒷간에 버려진 신세가 되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이 있는가? 70~80년대 학생운동이나 반정부 활동을 한 인사들이 어디로 끌려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특별한 경우다. 이 정도에서 범저는 포기할 만도 하지 않은가.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어딘가에 숨어 조용히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저는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진나라로 건너가서는 뜻을 펼치기 위해 다시 때를 기다렸다. 범저는 알고 있었을까?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