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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04. 2023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일단 책을 들고 읽어라

             우리나라 독서 시장은 흐름이 이상하다. 독서법에 관한 책은 잘 팔리는데 정작 책은 안 팔린다. 독서법을 알고 책을 읽으면 좋은 일이겠으나 정작 책은 안 팔린다니 이해를 못 하겠다. 인문학을 소개하며 필요성을 강조한 책은 잘 팔리는데 정작 인문학 관련 책은 안 팔린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필요하지만 깊은 독서는 안 한다는 뜻이다. 남진우 시인의 시 <타오르는 책>을 읽어보자.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타오르는 책>, 남진우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 고전을 읽고 사색하는 과정에서 인문 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고 했다.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는 곧 ‘불로 이글거리는’ 두뇌다. 책을 읽으며 뇌가 변화면 생각이 바뀐다.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높은 단계로 상승한다. 삶의 자세가 종속적인 태도에서 주도적인 태도로 바뀌고,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바뀐다. 진짜 그런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6개 푸드 브랜드를 가지고 유럽과 남미에서 1200개 매장을 운영하는 켈리 델리 창업자 켈리 최 이야기다. 언론 인터뷰에 스스로 밝힌 켈리 최 어린 시절은 완전 흙수저다. 8남매 중 둘이 영양실조로 숨지고, 돈이 없어 고등학교에 못 가게 되자 서울로 곧장 왔고 봉제 공장에 취직해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야간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무작정 일본으로, 또 이어 프랑스로 떠났다. 고학으로 패션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전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빚만 남았다. 세계 경제가 휘청이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빚 10억 원이 남은 후에 파리의 센 강을 내려다보며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켈리 최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켈리 최는 독서를 하며 절망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인생 제2막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2년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와 공부를 하며 책을 읽었다. 이 과정은 켈리 최가 쓴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에 잘 나와 있다.   

  

   처절한 실패 후 절대 다시는 망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자 했고, 그중 하나가 독서였다. (난독증이 약간 있어) 책 읽는 게 힘들다 하더라도 아예 글을 읽지 못하는 건 아니니, 노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게다가 책에는 이미 나보다 먼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성공한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 있다. 현장에서는 실시간으로 살아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책에서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경험과 지혜, 통찰력 등을 배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며, 때로 큰 감동하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한다. 실제로 2년간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다시 일어설 때 장사 책, 경영책 등을 통해 나처럼 큰 실패를 겪고 다시 일어나 성공한 사례 등을 접하며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꼭 세상에서 나한테만 일어나는 크나큰 비극만은 아니라는 데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켈리 최가 한 경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공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한결같은 모습이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한 일은 독서였다. 유향이 쓴 [설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광형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이자 정치가다. 광형은 공부할 때 집이 가난하여 촛불을 켜지 못해 벽을 뚫고 이웃집 불빛으로 독서했다. 책이 없어 책이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빌려 읽었다. 결국 태자를 가르치는 태자소부와 승상의 자리까지 오르는 큰선비가 되었다.     


  전한(前漢) 때 매신(買臣)은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나무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책을 읽자, 그 부인이 말리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다. 뒤에 매신은 무제(武帝)에게 [춘추(春秋)]와 [초사(楚辭)] 등을 강론하여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었다. 매신이 부임하는 길에 오나라에서 옛 부인과 그 남편을 발견하고 관청에서 숙식하게 하였으나, 옛 부인이 자살하였다.     


  아시아 최대 갑부인 홍콩의 창장(長江)그룹 리자청(李嘉誠) 회장은 중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길거리를 걸을 때도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등 어릴 적부터 공부와 독서에 열중했다. 독서는 정보를 흡수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집중력을 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리자청은 매일 ‘잠자기 전 30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60년 넘게 지켰다. 리자청은 ‘홍콩 사람이 1달러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자청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준오헤어는 전 직원에게 20년 넘게 책을 읽게 했다.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는 ‘독서를 통해 생각이 깊어지면 창의력이 생기고 손놀림까지 유연해져 업무 능력도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준오헤어 디자이너 100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이 1억 원 넘는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은 독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40년 가까이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 문학 교육과 독서 이론을 가르쳐온 한상무 교수는 [책을 읽으면 왜 뇌가 좋아질까? 또 성격도 좋아질까?]에서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독서는 독자의 정신을 자극함으로써 뇌의 신경 체계에 새로운 뉴런들과 무수한 신경 연결을 창출함으로써 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 발달시킨다. 이런 뇌의 변화와 발달을 통해 높고 깊은 수준의 사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독서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변화시키고, 현실을 체험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앞에서 말한 이지성 작가의 주장과 같다. 책 읽으라고 하면 다들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커피숍에서 2~3시간씩 앉아 수다를 떤다.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쇼핑을 하는 데 몇 시간씩 소비한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책을 읽으려고 하면 한 줄도 읽지 못한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심심하니까 시간 보내려고 책을 읽는다면 심심풀이밖에 되지 않는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책 읽기는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는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그리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피터 드러커가 그렇게 했다.      


‘나는 남은 오후 시간과 밤을 이용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제 관계와 국제법, 사회제도와 법률제도의 역사, 일반 역사, 재무 등을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차츰 나만의 공부법도 개발하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나는 3년 또는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한다.  주제는 통계학, 중세 역사, 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하다.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하지는 못하지만, 그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나는 60여 년 이상 동안 3년 또는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공부를 계속했다. 이 방법은 나에게 많은 지식을 쌓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공부한 모든 주제 각각은 서로 다른 가정을 하고, 또한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자, 이제 독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치자. 그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어느 정도 독서 습관이 붙은 사람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추측해본다면 이렇게 고전을 많이 인용한 책보다는 이 책에서 언급한 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모든 독서 방향은 고전으로 귀결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잘 안다. 그렇더라도 혹시 처음 독서를 시작한 독자가 있을지 모르니 먼저 책 읽는 습관을 어떻게 들여야 할지 방법부터 알아보자. 

  독서를 몸에 배게 하려면 먼저 재미있는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취미로 시작하라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관심 있는 분야 책은 읽기에 덜 지루하다. 그래도 힘들다면 하루 10분이고 20분이고 시간을 정해 놓고 억지로라도 읽어보자.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서에 푹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만약 인문 고전 읽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독한 마음이 필요하다. 인문 고전은 어렵다. 한 줄을 읽어도 그 한 줄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쉽지 않다. 어려우니 지루하다. 인문 고전에 접근하려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짤막한 설명글을 읽으며 약간의 배경 지식이 있으면 좋다. 


독서 효과를 높이는 방법

  독서 효과를 높이는 첫 번째 방법은 ‘주제별 독서다.’ 주제별 독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책 여러 권을 같이 읽는 방법이다. 작가들이 같은 주제로 책을 쓰더라도 가치관이나 생각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권을 읽어봐야 한 분야의 흐름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주제별 독서는 그래서 다양한 시각을 지닐 수 있도록 해준다. 

  독서 효과를 높이는 두 번째 방법은, 읽은 내용을 ‘출력’하는 방법이다. 써먹어 봐야 기억이 오래간다. 책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으면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말로 혹은 글로 설명하면 효과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독서일기다. 매일 읽은 분량만큼 독후감을 쓰면 좋다. 독서 토론 방법도 있다. 요즘은 지역마다 도서관이 많고,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독서 토론 모임이 많다. 지역 사회에 독서 토론 모임이 있는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다.

  독서 효과를 높이는 세 번째 방법은 질문이다. 질문하며 읽으면 그냥 읽을 때는 보지 못한 것이 다양하고 유익한 형태로 다가온다.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좋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렸다. [포커스 리딩]은 이렇게 질문하라고 권고한다.     


- 저자는 왜 그런 방법을 택했는가?

- 저자가 강조하는 바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가치가 있는가?

- 저자가 제시한 방법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 저자가 나에게 요구하는 방법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 이 역경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 이번 시련은 어떤 의미에서 기회가 될 수 있을까?

- 목표 달성을 위해서 저자는 무엇을 포기했는가?

- 저자의 방법에 비춰볼 때, 어떻게 해야 나는 내 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가?

-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나의 목표는 정확한가?

-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현재 내게 닥친 어려움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은 책 읽는 사람의 상황을 바꿔준다. 근원적인 질문은 원점에서 다시 문제를 바라볼 여유를 제공하며,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질문이 있어야 가려져 있던 답이 보인다. 지금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우선 문제에 질문을 던져라.   

 

  그런데 약간 김빠지는 이야기를 하면, 독서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 어떻고 질문을 어떻게 하고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문 고전을 읽으면 천재의 뇌를 닮아가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같은 독서 결과를 생각하지 말자. 일단 책을 들고 읽어라. 읽다 보면 자신만의 독서법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독서 결과는 진인사대천명이다. 


  남진우 시인은 독서를‘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로 표현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불놀이 같은 독서를 몇 번이나 했을까? 불놀이 같은 독서를 한 후‘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한 경험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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