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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Aug 07. 2023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짧은 인생, 사는 법

                 지난 15년 동안 스무 권 이상 책을 냈다. 자기 계발 관련 책이 15권 정도고 나머지는 시집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강의 없는 날에는 아침 7시까지 연구실로 출근하여 12시까지 5시간 동안은 집중하여 책을 읽거나 집필을 했다. 오후에도 비슷한 시간을 보내지만 조금 덜 집중했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산책을 하고, 개인 볼일을 보았다. 오후 7시에 퇴근하여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규칙적인 시간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시간만큼 공평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빈부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반칠환의 <새해 첫 기적>을 보면 시간이 얼마나 공평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시인의 눈에는 동물이나 심지어 바위에 까지도 시간이 공평하다.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나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나 똑같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시간이 공평하다고 하찮은 것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유한한데 너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흰말이 문틈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라는 장자의 말처럼 빠르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날아서 가든, 뛰어서 가든, 걸어서 가든, 기어서 가든, 아무것도 안 하든 시간은 흐른다. 죽을 때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는 그래서 중요한 질문이다.


  진시황이 객사하자 조고와 이사가 짜고 호해를 왕으로 만들었다. 21살 호해는 진시황의 18번째 아들이라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머나 조고와 이사를 등에 업고 2세 황제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위협할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를 죽이고 몽염 장군까지 처리하자 호혜는 어느 정도 느긋해졌다. 2세 황제가 한가할 적마다 조고를 불러 함께 의논했다. 하루는 조고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저 사람이 태어나 세상에 살아 있는 시간은 비유하자면 말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가 뚫어진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소. 나는 이미 천하에 군림하였으니 귀와 눈으로 좋은 것들을 느끼고, 마음이 즐거운 바를 다하며, 종묘(宗廟)를 안정케 하고 만백성을 기쁘게 하여 천하를 오래도록 소유한 채 천수를 마치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한마디로 짧은 인생 즐기고 싶다는 말이다. 이 말에 조고가 부추기며 하는 말이 무시무시하다. 즐거움을 누리려면 반란을 일으킬 만한 씨앗을 제거해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고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현명한 군주만이 누릴 수 있으며 어리석은 군주는 하지 못합니다. 제가 감히 도끼로 처형당하더라도 피하지 않고 말씀드리오니,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유념해 주십시오. 대저 사구(沙丘)에서 꾸미는 음모를 여러 공자와 대신이 모두 의심하고 있는데, 여러 공자는 모두 폐하의 형이며, 대신들도 선제께서 등용하신 인물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막 즉위하시자 그 무리는 못마땅하게 여겨 모두 복종하지 않으니,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몽염은 이미 죽었으나 몽의는 군대를 이끌며 변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벌벌 떨면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어찌 원하시는 즐거움을 누리시겠습니까?”


  2세 황제가 다시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조고가 답했다.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해, 죄를 위반한 자를 연좌해 처단하고 일가족을 구속하게 하십시오. 대신들을 없애고 골육의 형제들을 멀리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선제의 옛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시고, 폐하께서 신임할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잠재된 덕이 폐하께 모이고, 해로운 것이 제거되며, 간사한 계략이 방지되고, 여러 신하 가운데 폐하의 은덕을 입지 않은 자가 없게 되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마음껏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나은 계책은 없습니다.”     


  2세 황제는 조고의 말을 옳다고 여기고 다시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여러 신하와 공자 중에 죄를 지으면 조고에게 맡겨서 죄를 조사하고 처형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몽의 같은 대신들이 죽고, 공자 12명이 함양의 저잣거리에서 죽었으며, 공주 10명도 사지가 찢겨 죽었다. 재산은 모두 관청에서 몰수하였고, 연루된 자는 다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짧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좋다. 그런데 호혜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황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신하에게 맡기고, 즐거운 인생을 방해할지 모른다며 대신들과 형제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비정상이다. 시간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설원]에 영원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을 절약하며 아주 잘 사용한 사람이다. 영원은 중모 땅의 가난한 시골 출신이다. 농사일이 힘들고 고되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있겠나?”

  친구가 일러 주었다.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20년을 기약하고 공부하면 무언가 이루겠지!”

  그러자 영원이 자신감을 보였다.  

  “좋다. 나는 15년을 기약하고 남이 쉴 때 나는 쉬지 않으며, 남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해보리라!”

  과연 13년을 공부하여 주(周) 위공(威公)이 스승으로 삼을 정도가 되었다. 무릇 뛰는 자가 빠르다 하나 2리를 못 가 그쳐야 하고, 걷는 자가 느리다고 하나 1백 리는 가서야 쉰다. 지금 영월 같은 재주로도 오랫동안 쉬지 않고 노력하여 마침내 제후의 스승이 되었으니 이 어찌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짧은 인생을 효과적으로 보내는 법

  2세 황제 호혜와 영원 사례에서 우리는 반대되는 시간관을 볼 수 있다. 2세 황제는‘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다. 현재를 즐기기 위해 만행을 저질렀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백성을 어떻게 잘 살게 하지 같은 미래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즐기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반면 영원은 ‘미래’에 초점을 두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현재에 초점을 두면 지금 당장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이것이 극단으로 흐르면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쾌락주의자가 된다. 미래에 초점을 두면 현재의 즐거움보다는 미래에 주어질 보상에 더 관심이 있다. 자연히 현재의 욕구를 뒤로 미룬다. 이렇게 시간관이 다르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생활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 시간을 잘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원처럼 목표를 세우고 시간표를 짜 보자. 목표가 있으면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인 태도 말고 목표 달성에 몰두해 보자. 공자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공자는 만년에 인생을 되돌아보며 10년 단위로 끊어 설명하였다. 15살에 배움에 뜻을 세우고(志于學), 30살에 자립(而立)하였다. 40살에는 미혹되지 않고(不惑), 50살에 천명(知天命)을 알았다. 60살에 귀가 순해졌으며(耳順), 칠십에는 마음대로 해도 경우를 넘어서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

  

공자는 15살에 평생 이룩할 목표, 배움에 뜻을 세운다. 지우학(志于學)이다. 지(志) 자를 풀이하는 방법을 보자. 사(士)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의미가 있다.


  志 자는 ‘뜻’이나 ‘마음’,‘감정’의 뜻이 있는 글자다. 志 자는 士(선비 사)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志 자를 보면 본래는 之(갈 지)자와 心자가 결합한 것이었다. 이것은 ‘가고자(之)하는 마음(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志 자는 자기 뜻을 실천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글자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之자가 士자로 잘못 옮겨지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른 해석을 보자.

  士자는 ‘선비’나 ‘관리’,‘사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士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고대 무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士자는 비씨(BC) 2,000년경인 오제(五帝) 시대에는 감옥을 지키는 형관을 뜻했고, 금문에서는 형관들이 지니고 다닌 큰 도끼를 말했다. 그러니 士자는 본래 휴대가 간편한 고대 무기를 그린 글자다. 지금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무관(武官)을 뜻했다. 士자에 아직도 ‘관리’나 ‘군사’, ‘사내’와 같은 뜻이 남은 이유다. 그래서 士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선비’나 ‘관리’, ‘남자’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네이버 한문사전)     


  공자가 15살에 지우학(志于學)했다는 의미는 학문하기로 목표를 세웠다는 의미다. 15년 동안 매진한 결과 서른 살에 스스로 자립 가능한 경지에 이른다. 공자가 30살을 이립(而立)이라고 한 이유다. 학문에서 자립할 정도로 우뚝 섰지만 10년을 더욱 매진할 결과 40살에 이르러 불혹이 된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닌 공자는 또 10년 후에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 공자는 이처럼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 치열하게 목표를 향해 달렸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같은 분량의 시간을 받으며 살지만 어떤 사람은 호혜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영원이나 공자처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심지어 끼니와 잠자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하루하루를 보낸 결과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을 하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의식주를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며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은 수명도 길다고 한다. 근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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