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을 읽고서
서점 매대 위에 평범해 보이는 책을 들어 올렸다.
『모순』
소설의 제목치고 꽤나 명료하고 딱딱한 제목이었다. 그 책을 들어 올릴 때만 해도 나는 모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국어 시간에나 배웠을 흐리멍텅한 문학 해석법에 따른 모순이 내가 아는 모순의 전부였다. 양립할 수 없는 두 대상을 양립하게 함으로써 보다 풍부한 의미를 담게 한다는 그 말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고한 이상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라 생각되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 양귀자, 『모순』 9쪽
하지만 생에 대한 그의 외침 덕분이었을까. 그의 외침이 궁금함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흥미 없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그 책이 문득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뒤 그 선택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삶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존재가 양립하는 모순적이고 대상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불분명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하게도) 나는 삶이 명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선택이든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든 내 삶의 이유나 목표든 그 모든 것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명확함이 그 함의 그대로 명료함과 변칙 없는 확실함을 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는데, 명확함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삶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명료하고 변칙 없이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앞서 미래를 계획하고 필요할 것들을 준비하고 다시금 그것들을 재검토하며 내 앞에 펼쳐질 삶과 세상이 명확해지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삶은 저 멀리서 나를 쳐다보는 다람쥐 마냥 내게 눈길을 주는 듯하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나의 경험과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 앞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왜 내게 이런 시련과 좌절을 주는지 억울함에 몸부림쳤다. 나는 그저 내 삶이 명확이라는 평온 속에서 안정되기를 바랐을 뿐인데, 그저 그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양귀자, 『모순』 173쪽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네가 하는 박사 공부는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나도 아직 잘 모르지만.
- 양귀자, 『모순』 176쪽
작가 양귀자는 작중 화자인 ‘안진진’을 통해 삶이 내가 말하고 원했던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삶은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삶은 옳고 나쁘고, 좋고 싫고처럼 간단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삶이 간단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삶을 살아오면서 고민해 왔던 대부분의 것들이 이러한 삶에 대한 기초 전제가 잘 못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라는 것이 간단명료하지 않은데 삶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과 내 생각 사이의 깊은 괴리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괴로워했던 것이다.
불행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익히 들어보았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것 자체가 그걸 겪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나도 큰 고통을 주기에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불행의 효능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행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기분 좋은 것들로만 내 삶을 채워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삶은 녹록지 않은 곳이고 우리의 행복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그 표정에서부터 이미 낙하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공포와 좌절로 인해 퀭한 눈으로 이 세상에 있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다. 그 불행을 겪는 동안 고통의 철퇴는 지속적으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나 쉽게 벗어날 수 있으면 그것은 불행이라 불릴 수 없다. 불행은 내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찾아와서 원하지 않아도 사라진다. 그리고 불행의 끝에 드디어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찾아올 때, 불행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 양귀자, 『모순』 229쪽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네게 가르쳐주었다.
- 양귀자, 『모순』 295쪽
나의 삶에서 행복이 내 생각과 가치를 넓혀주는 데에 큰 기여를 하기는 했지만, 보다 높은 밀도로 강한 응집력을 지닌 쉽게 잊힐 수 없는 경험을 줌으로써 나의 삶에 부피를 늘려준 것은 그의 말마따나 불행이었다. 수많은 경험들 중에서 보다 견고한 뼈대로 남아 나를 쌓아 올려준 것은 틀림없이 불행이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 도망치고 싶고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지 세상에 저주를 퍼부었지만 불행은 그 어떤 강철보다 튼튼한 자아의 기둥을 형성했다. 시간이 지나고 단단해진 나를 보았을 때, 행복만큼이나 불행이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스님의 말마따나 불행도 복된 것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중략)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 양귀자, 『모순』 295쪽
누구에게 행복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 당사자에게는 큰 불행이고 큰 불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른 이에게는 행복으로 보인다는 이 말이 참으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그 깊이가 너무나도 진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나의 삶에 대한 주관적 판단과 타인이 바라보는 내 삶에 대한 주관적 판단 사이에 어떤 것이 더 옳은 판단일까. 무엇이 나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 답을 알 수는 있을까.
나의 삶을 나 외에는 체험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덕분에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철저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주관의 늪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나무와 같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객관적 판단이란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나의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 사이에는 늘 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괴리 또한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더욱 주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자신의 주관을 등불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행복과 무조건적인 불행은 없기에, 모든 일은 약간의 행복과 약간의 불행을 동시에 갖고 있기에 현재 나의 주관이 이끄는 그 방향을 따라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가는 것이 옳은 삶을 사는 방법이다. 그 걸음에서 조언, 충고라는 포장지로 꾸며진 선물들이 나의 동의 없이 제공되지만 그것은 그들의 주관일 뿐 나의 주관이 아니다.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나 스스로 체험한 것만이 나의 삶이 된다. 소의 귀를 걸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세상을 뒤흔든 사상』에서 문학이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주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역사학,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에서 문학이 가장 앞자리에 놓일만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불행도 나의 삶의 일부이며 행복만큼이나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 삶의 모습은 모순되는 일들이 수없이 양립하는 단일 가치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면체라는 것. 그렇기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며 나 스스로 체험한 것만이 나의 삶이 된다는 것. 양귀자의 『모순』은 소설이라는 양식을 통해 내 삶과 일상에 대한 위안과 더불어 삶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이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소중한 경험을 주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양귀자, 『모순』 296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632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