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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Sep 16. 2020

로열층에 관한 새로운 정의

코로나 시대 신(新) 로열층

"3층 이하의 숲세권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어"


최근에 들은 친구의 말이었다.


어린아이를 키우지 않는 이상 크게 선호하지 않았던 저층을, 역세권을 제쳐두고 숲과 자연이 가까운 곳으로 알아본다는 것이 새로웠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필로티 층을 중심으로 집 구하는 동네언니, 나무가 보이는 1층을 사서 리모델링하고 있는 동생, 삼 형제 키우며 저층으로 이사해 베란다에 캠핑의자 놓고 정원 바라보며 아웃도어 분위기 내는 후배 등 집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이들은 도심의 빽빽한 고층 아파트가 아닌, 외곽의 자연과 함께 하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살라고 조언하는 중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주거형태도 변하고 있구나 피부로 실감했다.




로열층 (royal層)[명사] :
고층 아파트에서 햇빛이 잘 들고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여 생활하기에 가장 좋은 층


초록색 검색창에서 '로열층'을 입력하니 위와 같이 나왔다.


15층 아파트라면 7~8층이 로열층이고, 25층 아파트라면 18~23층 정도다.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요가 많은 로열층이 비용도 더 비싼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열층을 사야 집값도 잘 오르고 나중에 쉽게 팔린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적어도 2020년 1월까지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었다.



지금도 기존 로열층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지만, 바이러스 감염병의 상황에서 '안전'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 가장 두려운 곳 중 하나가 도심 속 밀집된 아파트의 좁은 엘리베이터다. 다른  장소들은 소독하고 거리두기 하며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와 우연히 마주치는 조그마한 네모 상자는 누군가 마스크를 안 써도, 살짝 재채기만 해도 두려움이 몰려오는 시한폭탄 같은 공간이 되었다.


불안에 떨며 좁은 엘리베이터 이용하면서 사람 바글거리는 빽빽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보다,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한적하게 펼쳐진 전원의 주거형태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뉴 노멀, 새로운 로열층을 정의한다면,


1. 엘리베이터 굳이 안 타도 되는 3층 이하의 저층


고층에 사는 경우 작정하고 운동하려 마음먹지 않은 이상 매일 걸어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높이에 산다면 계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안 타니 모르는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깜빡 잊고 마스크를 하지 않은 이웃과는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 확실히 안전해진다. 거리두기 하며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부족한 운동량을 계단 오르내리기로 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2. 통로별 세대수가 적어야 한다


아파트 저층이라 하더라도 가구수가 너무 많은 곳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복도식보다 계단식이 안전하다. 10층 정도의 높이에 한 층에 2가구나 1가구 정도가 있으면 출근길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사람이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확실히 수도권 외곽이나 시골지역이 인구가 적으니 아파트에서의 거리두기도 가능해진다.


3. 눈 앞에 초록이 펼쳐져 있어야 한다


농촌지역에서만 내리 살다가 서울 이모집에 도착해 하늘 높이 쭉쭉 뻗어있는 고층빌딩들에 아찔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수세식 화장실과 롯데리아가 신세계였던 시절.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발이 끼일까 봐 쉽게 오르지 못했던 때였다. 지금은 위의 그림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수렵채집으로 자연과 함께 살았던 오랜 인류사 속에서 근대식의 산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진 것은 엄청나게 짧은 점 같은 시간이라고 한다.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라 지금의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깊은 무의식 속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세포에 각인되어있는 것 같다.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도 자연을 볼 수 있고 초록과 함께 지내는 경우 감정적으로 평온해질 수 있다. 숲이 펼쳐져 있고 공원에 옆에 있으며 강이 흐르고 있는 주거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새로운 로열층은 깊은 본능 속에 있었던 자연과 함께 하는 삶과 닿아있다.





숲이 바라보이는 아파트  3층에 산다. 거실 창 밖으로 초록나무와 하늘이 펼쳐진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지 않으면 가급적 계단을 이용한다. 시골에 있는 아파트라 한적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마구 뛰어도 되는 필로티층이다. 우연히 집을 구했고 시기적절하게 이사를 했는데 신의 한 수였다.  


얼마 전 아파트 1층에 살던 언니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또 텃밭도 꾸려볼 계획이라고 했다. 아무리 숲세권이라고 해도 아파트는 아파트이다. 흙을 마음껏 만지고 그 흙에서 자란 것들을 자급자족하며 사는 전원주택이 새로운 '펜트 하우스'일 것이다.


'로열층'의 꿈을 이뤘으니, '트 하우스' 가슴에 품고 감사하며 살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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