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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Oct 11. 2022

아니다 싶음 빠르게 F4 누르기

아이의 전학 기록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즐겁게 다닌 아이는 지역의 작은 학교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첫째가 아기였을 때 기회가 되어 그 학교가 있는 마을에 1년 정도 살았는데. 예술교육을 실천하고 마을과 함께 나아가는 혁신학교의 교육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 행사와 축제에 참여하며 우리 아이도 이 학교에 보내면 좋겠다 했었다. 아이가 8살 되던 해에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걸음마 연습하던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치뤄졌다.  


알던 것처럼 학교는 참 좋았다. 정년퇴임 4년 남긴 훌륭한 어르신을 만난 건 아이의 복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담임선생님은 훌륭한 교육자셨다.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 해 동안 지키시며 아이들 사이의 여러 문제들을 대화와 기다림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놀라움을 선사해주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 까막눈으로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한 달 만에 발도르프 교육방법으로 한글을 아름답게 뗐고, 선생님의 이끄심으로 학습의 즐거움을 이어나갔다. 코로나 상황이 심했음에도 작은 학교라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이 지켜졌고 문화예술 수업도 즐겁게 펼쳐졌다.


같은 어린이집 출신이 많아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한 반 15명의 아이들은 친하게 지냈다. 시골의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사계절을 보며 1년 동안 학교생활을 즐겁게 했다. 그런데 2학년 새 학년을 앞두고 아이의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남편도 나도 풀타임 일을 하는 상황에서 집에서 가까운 학교가 아닌 다소 먼 학교를 선택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는 무난하게 커버할 수 있기에 아침에 일찍 태워주고 오고, 오후에는 돌봄 교실을 이용하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다행히 나도 1년 동안 육아시간제도를 사용할 수 있어서 2시간 먼저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당시의 상황에서 우리 가정과 아이에게 최선의 학교를 정했다.


연말이 되며 갑작스레 내 몸이 아파왔고 여러 검사 끝에 수술을 통해 치료하기로 했다. 앞으로 아이를 누가 어떻게 데리러 가야 하나 긴급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읍내에서 차로 10분이지만 수요가 적고 구불구불 고갯길도 있어서 학교까지 들어오는 학원차가 한 대도 없었다. 대부분의 부모님께서 자신의 차로 직접 픽 드롭했고, 고학년 정도 되어야 시내버스를 타고 하교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이면 친구 집에 부탁할 수 있지만 장기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다닐만한 몇 군데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해보았다. 정성이 통했던지 우리 아이 1명을 위해 고갯길을 들어가고 나오겠다는 학원이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는 12월부터 합기도 수련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봄 교실에 갔다가 3시쯤 학원차를 타고 운동을 하러 갔다. 집 근처에 있는 수련원이라 운동이 끝난 다음엔 우리 집까지 학원차로 안전하게 데려다줬다. 세상이나, 이렇게 편한 세상이라니! 하교 시스템만 잘 갖춰져도 삶의 질이 달라졌다. 왜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초품아'를 많은 가정에서 원하는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겨울방학 동안 나는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천천히 회복해 나갔다. 크게 아파보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현실이 보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희망과 기대로 아이 학교를 조금 먼 곳으로 정했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이어갔지만 이렇게 계속 생활할 순 없었다. 둘째 아이 나이가 차서 앞으로 육아시간도 쓸 수 없게 되어, 오로지 합기도 차에 의존해서 주 5일 하교를 시켜야 하는 환경이었다. 초등 6년을 학원차에 의지해하는 걸까? 코로나 상황에서 변수라도 생기면 우리에게 대처능력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주도성 없이 의존성으로만 학교생활을 할 수는 없겠다 판단이 들었다.


시간이 걸린 것은 아이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우리 가정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집 가까운 학교로의 전학을 권유했다. 아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상황을 이해했고 엄마 아빠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 부분은 마음이 참 아프고 미안했다. 이미 익숙해진 환경과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 하지만 결단할 부분은 결단해야 한다. 아이를 더욱 믿기로 했다. 전학 갈 학교에 미리 가서 구석구석 동선을 설명해주었고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도록 도왔다.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철들면서 알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최선의 것을 선택하되 그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차선을 택하기. 이건 아니다 라는 신호가 올 때 차일피일 미루지 않고 빠르게 '새로고침'을 누를 수 있는 결단력은 워킹맘의 육아에 더욱 요구되었다. 세팅하고 최선을 다 하고, 아니다 싶음 재 세팅하고 최선을 다 해본다. 그렇게 나아가는 중이다.


아이는 새 학교에 적응해 잘 다니고 있다. 지난번 학교보다는 조금 크지만 아담한 뒷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학교다. 아침에는 집 앞까지 오는 셔틀버스를 타고, 오후에는 학원차로 돌아온다. 먼 고갯길을 차 태워 보내지 않아도 되어 안전해졌고, 그만큼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 이웃에 많아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도 늘었다.


입맛에 맞는 보드라운 빵만 먹을 수 없고 때론 거친 빵도 필요하다. 행복의 비결은 지금 먹고 있는 빵을 즐기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었지만 선택 후의 감정은 마음먹은 대로 느낄 수 있기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는 엄마의 격려에 아이는 새 힘을 얻고 매일매일 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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