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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Dec 04. 2023

에코 주머니, 비움의 시간이 주는 깨달음

풀에서 멈춤을 배우다

발도르프학교 교사로 일했을 때였다. 나는 담임교사라 아이들에게 국어며 수학이며 지리며 역사, 이런 도구교과들을 가르쳤는데, 교사들 중 부러운 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수공예를 맡은 선생님.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이후의 상급과정 학생들에게 손을 움직여 아름다움을 만드는 시간을 펼치셨다. 양털에서 빌려온 양모솜으로 실을 잣는 작업부터, 재봉틀을 돌려 자신이 디자인한 옷 한 벌 짓는 활동까지. 선생님과 함께라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뚝딱 만들어졌다. 정작 나는 내 수업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어깨너머로 부러워만 했을 뿐, 교사생활을 하면서 수공예를 거의 익히지 못했다. 


벼르고 별렀던 핸드메이드 라이프는 첫째 아이를 가지고 휴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수공예 선생님께 재료를 건네받아 만들기 시작했지만 다리를 달지 못한 채로 1년 넘게 방치되었던 커다란 발도르프 인형부터 완성했다. 읍내 뜨개공방에 등록해서 뜨개질을 섭렵했다. 내 조끼, 남편 조끼를 한벌씩 뜨고 목도리에 덧신까지 만들었다. 뱃속 아기를 위한 신발과 옷, 놀잇감, 이불도 뜨개바늘 움직여 다 만들고 나니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왔다. 막달이 다 되어서는 재봉틀과 친하게 지냈다. 아기 턱받이, 기저귀가방, 스카프를 박아내고, 요람 위에 드리울 캐노피도 만들었다. 식탁매트와 방석, 베갯잇, 커튼까지 완성하고 나서 아기를 낳으러 갔다.

 

손가락 하나만 클릭하면 필요한 물건을 내일 당장 받을 수 있는 시대지만, 두 손 움직여 일상의 작은 쓸모들을 직접 만들어내는 삶이 좋았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낳아 키우면서 틈틈이 요정모자도 뜨고 넥워머도 만들었다. 좋아하는 천 떼다 에코백을 만들고, 색연필을 넣을 수 있는 필통도 제작해서 주변에 선물하곤 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그랬다. 





워킹맘으로 직장 생활하며 바쁘게 지냈다. 일하다가 틈새의 여유라도 있으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기 계발로 채웠다. 빈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30분 쉬는 시간도 철저한 계획 하에서 움직이곤 했다. 다이어리와 구글 타이머와 함께 한 몇 년의 시간들. 성장이 고파서 성장의 숲을 키워나갔다. 그 숲에는 to do list의 빼곡한 목록들이 나무처럼 세워졌다. 


직장생활을 구멍 없이 해내며, 아이 둘도 키우고, 책도 쓰고, 라이프 코치도 되었다. 이웃수 4천 명이 넘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성과들을 기록하고 여러 사람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며 지냈다. 전자책 작가, 공저책 작가, 단독책 저자가 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강사로 서는 등 여러 성과들이 있었다. 열심히 살아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성장에 올인하다 올해는 작성하고 쉬기로 한 시기. 스타워즈 제다이에게도 음과 양의 포스 균형이 중요했듯, 나에게도 일과 쉼의 광선검이 필요했다. 천천히 호흡하며 한 쪽으로 치우친 검을 다시 잡았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펼치기로 했다. 







오늘 풀학교에서는 '에코 주머니' 만드는 법을 배웠다. 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주머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한 주 전에 메리골드 꽃 수확해서 팔팔 끓인 물에 노랗게 염색해 둔 천을 손에 들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재료로 천연염색하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결과물도 어쩜 이리도 고울까. 인공물감은 줄 수 없는 천연의 황금빛으로 마음까지 밝게 빛났다. 


에코 주머니는 기다란 가로 부분을 3등분 해서 가운데를 향해 접은 후, 윗면 한 번, 아랫면 한 번만 홈질해 주면 금세 만들 수 있었다. 원리를 배우고 한 시간 정도 바늘을 왔다 갔다 하니 완성되었다. 모두의 작품이 모두 예뻤다. 어깨에 메고 둘러서서 멋있게 사진도 찍었다. 가방 멘 채로 식당 나들이 하고, 읍내 유명한 건강 빵가게 가서 주머니 가득 빵쇼핑도 했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다 큰 어른들도 소소한 쓸모를 만드는 일을 하면 아이같이 웃게 된다. 찐 기쁨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여유가 없을 때는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청년시절 농사를 배웠던 농사학교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 왔다. 몸을 쓰는 것과 머리를 쓰는 것을 적절히 가져가라는 교훈이었다. 나는 '소깨비'가 되어야지 결심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기형아처럼 머리만 커지는 삶을 살아오다, 염색하고 바느질하며 손과 발을 쓰니 이제야 균형 잡힌 기분이다. 나는 미숙해서 언제나 그렇듯 턱 끝까지 차올라야 변화를 준다. 


올해 휴직의 시기를 보내며,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나를 내버려 두지 않겠다 결심해 본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한 주' '한 달'이라는 기간 내에서 들숨과 날숨의 균형을 찾으리라. 충만히 채웠으면 여유롭게 소화시키리라. '일 년'을 두고 머리와 손발이 골고루 움직이도록 강약중간약 리듬으로 춤추고 싶다. 퇴사하길 잘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은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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