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May 04. 2016

하노이 횟집의 비밀

라오스에서 KOICA의 농업전문가로 산지 일 년이 좀 지날 때였다. 연휴 동안 낯선 나라에서 혼자서 지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국을 방문하기에는 휴가가 짧았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하노이를 가기로 했다. 한 번은 꼭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하노이에는 있다는 횟집이었다.


내륙국가인 라오스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끔 한국의 먹방을 볼 때마다 "저건 꼭 먹고 말 거야!" 했던 게 회였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하노이의 골목길

혼자서 하노이로 떠났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서 하노이까지 비행은 짧았고, 마치 옆 동네를 방문하는 듯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 여장을 풀었다.


후덥지근한 하노이의 날씨와 도로를 건널 때마다 길을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이 홍해의 바닷물처럼 갈라지는 기적을 목격하면서 거리를 싸돌아 다녔다. 낯선 길거리의 풍경도 새로웠지만 생각은 온통 저녁에 방문할 횟집이었다. 하노이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 횟집은 중화 거리에 있었다.



홧집에 들어서면 종업원이 좀 많다는 걸 제외하고는 그리 특색 있지는 않았다. 요즘이야 혼밥(혼자 먹는 밥)도 흔하지만, 혼자서 삼겹살을 굽거나 횟집을 가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난감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혼자서 먹을 만큼 주문할 메뉴가 없다. 이럴 땐 별수 없이 사정을 해야 한다. 여주인에게 혼자선 양이 너무 많으니 반만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라오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아직 라오스는 호의를 베풀게 하는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흔쾌히 이방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마음이 풀어지면서 주인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외국생활의 회한도 들으면서.


그런데 회 맛이 나쁘지 않았다. 신기했다. 여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회의 선도가 좋을 수가 있죠?"

선어에 대한 수요가 없는 나라에서 날마다 산지 직송을 하지도 못할 테고, 가장 가까운 바다인 하롱베이까지 족히 4시간은 걸릴 텐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더운 나라에서 물고기를 살리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일 테고. 그 비결이 궁금했다.


답은 좀 의외였다.  


냉각기였다. 정확히는 그 냉각기를 바로 수리할 수 있는 인력. 여주인의 남편은 한국에서 냉동기를 다루던 기술자였다. 그게 다른 횟집은 다 문 닫았음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이라고 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설명이 이어졌다.


더운 나라이니 수조의 바닷물을 차갑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데 냉각기를 설치해도 바닷물 때문에 금방 망가졌다. 냉각기 순환펌프의 고장이 잦았는데, 다른 가게는 직접 수리를 못하는데 반해 이 가게는 바로바로 수리가 가능했던 게 경쟁력의 비결이었다. 



하노이에서 한국에서 수입된 냉동기를 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바로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냉각기가 고장 나면 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물고기 선도와 함께 회 맛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폐업으로 가는 길은 정해진 수순이다.


우리나라에서 횟집의 경쟁요소는 물고기가 수조에 머무르는 체류시간과 수조의 회전율, 가게의 인테리어, 접근성과 주차장, 서비스의 품질일 게다. 아마도 대부분의 다른 경쟁자들은 이 길을 충실히 따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노이 횟집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의외의 요소가 제한 인자였다. 물의 온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공조기 기술자였다.



요즈음 농업분야의 뉴스를 보면 빅데이터, 스마트팜, 드론, 원격진단, 정밀농업, 6차 산업이 키워드이다. 모두가 잃어버린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찾아 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린 과연 경쟁력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투기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