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예측하는 창(Windows)
우리의 일상은 그날의 기상에 많이 좌우된다. 맑고 화창한 날이면 기분까지도 좋아지고, 흐린 날이면 따뜻한 커피가 한잔 떠오른다. 농부들이나 어부들은 날씨에 더욱 민감하다. 패션업체들과 가전업체들은 계절별로 달라지는 기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우리 일상과 산업활동이 이렇듯 날씨와 기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는 기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40년에 불과했던 인간이 계절별 달라지는 기상(날씨)을 일반화하여 수십 년간의 트렌드로 이해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은 개인의 짧은 경험과 부모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전해지는 구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기상 이변을 바라보는 관점은 합리적이기보다는 미신에 가까웠다. 조선시대 전기에 측우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기상 현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록하지도 않았다. 기상은 전적으로 하늘의 소관이었다.
1880년대부터 현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기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산과 바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기상 관측소가 세워졌고 기온과 강우량, 풍향 및 풍속 등 기초적인 기상 자료부터 기압, 습도, 지온, 일사량, 증발산량 등 날씨를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필요한 기상인자들이 실시간으로 수집된다. 하지만 이렇게 각 지역으로부터 측정된 기상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이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기후모델(climate model)이다.
기후모델이란 지구 기후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기후모델은 기후 인자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일련의 수학 방정식으로 단순화시켜서 기후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기후모델 중 지구적인 규모에 적용되는 것을 전 지구적 기후모델(Global Climate Models, GCM)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후모델을 과거의 기상 관측값과 비교하여 모델식에 사용되는 변수와 상수를 조정하는 최적화 과정을 거쳐 미래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교한 전 지구적 기후모델에는 복사 에너지 유출입량, 공기의 이동경로, 구름이 형성되고 비가 내리는 지역, 빙하가 형성되고 가라앉는 지역 등이 인자로 포함된다. 또한 해양이 나 지표면의 식생 변화도 계산에 넣어 정확도를 높인다.
기후모델은 다양한 기후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물론 각 기후 인자 간의 피드백(feedback) 작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계산할 수도 있다. 기후모델이 없었다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는데 대한 원인을 알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초래될 수 있는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도 별로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기후를 이 만큼 이해하고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기후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전 지구적 기후모델이 온실가스 농도의 변화, 화산 폭발과 같이 기후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규모의 효과를 계산하는 데 사용된다면, 지역 기후 모델(RCM, Region Climate Model)은 전 지구적 기후모델의 해상도를 관심 있는 지역에 한정하여 지역별로 좀 더 세밀한 기상 자료를 구할 때 사용한다. 주어진 작은 면적에 대한 지형 정보, 대지의 종류 등 상세한 정보를 활용하여 국지적인 날씨의 영향을 계산할 때 유용하다. 전 지구적 기후모델은 엄청난 양의 수학적 계산을 사용하여 대기, 해양, 지표면, 식생, 빙하, 그리고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에너지 등이 모델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수천 명의 기후 학자들이 온실가스 증가가 기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북극해 빙하의 감소가 지구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전 지구적 기후모델을 사용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기후모델을 사용하여 수십 년 또는 백 년 후의 미래 기후를 예측함으로써 인류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기후모델은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일부 모델은 대기나 해양에 중점을 두고 있고, 어떤 모델은 대기, 생물권, 수권, 빙권 등 전 지구 시스템을 모델링할 수 있는 다양한 인자들을 매개변수로 사용한다. 지구의 각 구성요소들 간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델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몇 개의 변수만을 사용하는 단순한 모델은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운용할 수 있지만, 전 지구적 기후모델은 엄청난 연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에서 운용된다.
기후모델은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1970년대 기후모델의 계산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비약적인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후모델도 발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들은 대부분 기후와 기상을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이 보유하고 있다. 기상청이 보유한 쌍둥이 슈퍼컴퓨터인 해온과 해담은 국가가 보유한 가장 비싼 장비로 기록되었는데, 구입 가격은 무려 424억 원이었다. 초당 연산속도는 국내 슈퍼컴퓨터중 최고인 758 테라플롭스(1초에 758조 회의 연산)로 전 세계에서 30위권의 성능이다. 이 슈퍼컴퓨터들은 20여 종의 수치예보모델들을 사용하여 하루 100여 회의 연산을 수행하는데, 매일 2 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8만여 장의 일기도를 분석하고 생산한다.
사실 비전공자들이야 기상청의 과학자들이 잘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은 슈퍼컴으로 테트리스 하느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정말 티도 잘 나지 않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표제부의 이미지는 How Climate Models Work(http://www.southwestclimatechange.org/climate/modeling/how-models-work)에서 인용하였으며, IPCC의 기후모델링에 사용되는 인자들 간 상호관계를 나타낸 모식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