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손가락화, 우리는 변화를 인식할 수 없다.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바로 다음 날,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오후 수영 강습소."
후세 사가들의 눈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 사건도 동시대 최고의 지성인에게조차 그저 그런 일상으로 인식된다. 수백만 명이 죽게 될 전쟁과 오후의 수영 강습은 같은 비중으로 취급된다.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에도 인간은 현재를 체험한다.
역사적 사건을 그 당시의 사람들도 이해하고 있었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가 역사적이라 부르는 사건들 조차 사후에나 이해된다 [1].
슈퍼 엘니뇨의 해였던 2015년은 "여름 같은 봄"과 "11월의 비"로 기억되었다. 봄은 짧았고 여름은 일찍부터 찾아왔다. 가을이 왔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다. 늦장마에 곶감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사과는 수확시기를 놓쳤다. 추운 겨울을 예상하며 큰 맘먹고 구입한 패딩은 다음 해 초에 불어닥친 기록적인 한파 때나 겨우 꺼내 입었다.
2016년 봄 역시 다르지 않다. 이른 5월에 벌써 기온은 30도에 육박한다. 아직 건조한 공기 덕에 한여름의 무더위처럼 후덥지근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아파트 담장에는 장미가 예쁘게 피었지만 봄을 느끼기란 난망하다. 가끔 나무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을 때 그나마 아직 여름은 아니구나라는 것 깨닫는다. 엘니뇨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이른 봄의 더위는 이제 더 이상 '5월의 여름'이 호들갑 떨 일이 아니란 걸 의미하지만, 언론은 습관적이다.
아직도 기후가 변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가 올 것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논점이 틀렸다.
지금의 기후는 30년 전 우리 부모들이 젊었던 시절의 기후와는 전혀 다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그 변화를 언제 깨달을 것인가, 이다. 이미 양구에서 사과가 재배되고 제주도의 한라봉은 남해안까지 올라왔다. 누구나가 공감하겠지만, 요즈음 봄 옷에 돈 쓰기가 꺼려진다. 다시 겨울이 와도 히말라야라도 오를 것 같은 기세의 두꺼운 패딩은 점점 더 낯설어질 것이다.
이미 변해 버린 것을 부여잡고 변화가 언제 올 것인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변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학자들은 이를 ‘지시 프레임(reference frame)’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미디어나 주변을 통해 더 자주 특정 정보를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바탕 교체(baseline shift)’ 현상을 겪게 된다. ‘바탕 교체’는 나란히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마치 정지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방향을 안내하는 ‘지시 프레임’을 변화시킨다 [2]." 안타깝게도 우리는 변화를 인식할 수 없다. IMF가 올 때까지 우리나라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던 것처럼.
여기에 덧붙여 모든 사항을 논쟁으로 만든다. 담배 회사들이 담배가 위해하다는 주장을 물타기 할 때 쓰던 기법이다. 우리가 언론에서 매일 같이 보는 논쟁도 결국 담배회사들의 성공적인 방법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인 증거를 들이 밀면 일단은 부인한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사실을 과학적인 증거로 제시한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논쟁으로 만들면, 사실에 대한 기억 대신 논란에 대한 이미지만 남는다. 달은 사라지고 손가락만 남는다. 이미 기후변화에 대한 선전포고가 있은 지 오래지만, 오후에 있을 수영 강습이 더 신경 쓰이는 게 우리의 인식이다.
어디 기후변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위해하다는 정부의 발표는 몇몇 교수들의 엉터리 연구결과로 희석되었다.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 사실과 거짓 앞에서 진실의 편에 서기보다는 기계적 중립을 선택한다. 논란은 커져가고 결국 지루한 법적 공방을 거쳐 사실이 인정될 때까지 피해는 확산된다. 미국의 담배 소송에서 벌어졌던 일이고, 우리나라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가장 흔하게는 정치적인 공방에서 달의 손가락화를 보게 된다.
우리 기억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후는 이미 변했다. 얼마나 더 변할까. 그건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1] 하랄트 벨처, 기후전쟁. pp. 291–292.
[2] "기후대란 - 준비 안 된 사람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