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의 농업과 우리나라 농업과의 비교
메가트렌드를 논하는 사람들은 농업이 미래 성장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인구는 2050년이면 90억을 돌파하고 2100년이면 110억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소득이 올라가면서 먹는 식품의 종류도 따라서 변하고 있다.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블루베리, 아스파라거스, 포도주, 기능성 식품 등 고부가가치 식품의 소비가 증가한다. 인구 전망과 현재의 세계 경제 트렌드를 보면 농업은 성장산업 임이 분명하다.
이 거대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농업 혁명이 요구된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안,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지금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단연 몬산토이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제초를 하는 노력을 경감시켰고, 결과적으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1, 3위 종자업체를 사들였고, GMO를 퍼뜨리는 첨병으로 벽안 시 되지만 몬산토가 없는 미래농업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또 하나는 듀퐁이다. 듀퐁이 화학산업을 포기하고 농업생명 관련 사업에 집중하는 기사가 얼마 전 내 페북의 타임라인을 달구었던 적이 있었다. 이 뉴스를 보고 농업과 관계없는 방송 분야에 있는 친구까지 농업이 전망이 있는 산업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서 또 놀랐다. 농업계 종사자들, 대개는 교수들이 이런 뉴스를 반겼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짐 로저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의 생각하는 농업과 우리가 말하는 농업은 같은 농업이 아니라고.
메가트렌드 관점에서 보면 제조업 분야는 더 이상 성장하는 사업이 아니다. 이미 과잉투자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농업은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 2050년이면 90억을 넘어가는 인구,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망의 불안정, 수자원을 놓고 벌이는 산업 간 경쟁, 바이오에너지 수요. 이런 요인들은 투자가들이나 메이저 식품회사들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짐 로저스의 농업은 이런 농업을 이야기한다. 서울대학교 강의에서는 비록 경운기를 몰 줄 아는 학생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월스트리트의 투자가가 바라보는 농업에서 경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업이 유망한 것은 투자자들에게 이지 농민이 아니다. 섬유산업이 전망이 좋다고 생산직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니 짐 로저스의 뻥과는 달리 서울대생들이 경운기를 운전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짐 로저스의 농업에서는 GMO, 기업형 플랜테이션과 축산, 거대한 곡물 타워와 국제적인 운송망, 커뮤니티 조직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정치권력, 이런 거대한 복합기업이 중심이다. 기술의 발전이 어떻든 상관없이 이런 거대 기업들은 지구적 규모의 물량을 다룰 수 있도록 진화해 나갈 것이다. 낮은 이윤으로 경쟁자들의 진입을 차단하면서 거대한 규모에서 오는 이익을 쳉겨 갈 것이다.
반면에, 우리 농업은 소비자 중심의 관점에서 6차 산업에 치중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글로벌 흐름에 올라타기에는 규모와 역량이 뒤지니 직접적인 경쟁보다는 농외 수익을 높이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은 아직 파편화되어 있고 규모는 영세하다. 단위 무게당 더 큰 이윤 구조를 만들어 극복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양극화되는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점점 더 값싼 다국적 기업의 싼 농산물로 전향할 것이다.
우리 농업은 분명 짐 로저스의 농업과는 반대되는 길로 가고 있다. 짐 로저스의 농업과는 달리 우리 농업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사 먹는 세상의 이치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틈새시장은 존재하고 있고, 가치 있는 농산물에 대한 수요도 존재한다. 아마도 더 정보화되고 다양화되고, 소비자 맞춤형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발전을 위해서는 규모화가 필요한데 이런 발전단계를 우리나라 농기업들이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리스크는 크고 경쟁은 치열하다. 누가 혁신을 먼저 이루어 낼 것인가, 여기에 우리 농업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시 생산자 중심의 관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있다. 품목별 조합을 만들어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농민의 손으로 가져오자는 흐름이다. 시장의 손에 넘어 간 권력을 다시 생산자의 손으로 가져오자는 야심 찬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미약하다. 규모의 문제와 가치사슬의 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짐 로저스의 농업과 맞짱을 뜰 수 있을 만큼 규모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까. 보통의 노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는 쉽게 귀농귀촌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농업은 산업이라기보다는 삶의 정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농업이라는 산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지를 종종 망각한다. 해외농업개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이다. 농사는 땅만 있으면 되지만 농업은 여느 산업과 같이 자본이 있어야 한다. 엄청난 인프라가 뒤를 받쳐줘야 한다. 미래산업으로 바라보는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농업이 우리나라의 미래산업이 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농업을 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열망과는 달리 계속 사양산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짐 로저스의 농업 전망을 들으면서 우리 농업의 미래가 더 암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GMO의 문제를 옳고 그르냐의 이슈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구증가와 기아의 문제를 동정심으로 치환한다. 부정적인 전망은 하고 싶지 않지만 농업이 미래의 성장 산업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2050년 세계 농업의 시장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져 있을 것이고, 수많은 혁신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단지 거기에 우리 농업이 어느 만큼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