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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l 02. 2016

농약 커피는 없었다.

안전의 남용은 안전한가?

"가장 안전한 배는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다. 항구를 떠난 배가 풍랑과 폭풍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안전(safety), 항상 충분히 대비해야 하지만, 완벽한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우리나라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먹는 것에 대한 과도한 반응은 항구에 메어진 배처럼 느껴진다. 리스크(risk)를 무시하는 것도 안전에 위협이 되지만 리스크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안전에 위협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때로는 과도한 반응이 더 크게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외인성 요인에 대해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증상으로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현대의 불치병이라 불리는 아토피도 환경에 대한 과도한 반응 중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한 기사 때문에 심사가 좀 불편해서다. 사실 기사를 좀 과장되게 쓰는 건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지만, 그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더 불편해졌다. 사회적 과민반응처럼 느껴졌다.



위의 기사를 한 카페에서는 "한국인은 농약 커피를 마십니다"라는 제목으로 인용했다. 물론 댓글들이 주~욱 붙어있다. 대부분은 제목에 따른 표피적인 반응이다. 이 카페의 글을 다시 페북에서 인용을 했고 토요일 집에서 쉬고 있는 나를 흥분하게 했다.


이 논란으로 하루 종일 불편해하던 나의 심기도 좀 작용했다. "잔류농약 검출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바꿔라. 30년 뒤에 커피 농약으로 암 걸린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누가 말하랴." 페북에 인용하면서 붙인 코멘트이다. 그래서 좀 긴 댓글을 달았다. 관련 기사는 다음을 클릭하면 나온다.


"허술한" 식약처, ‘농약 커피’ 무방비 수입 방치


위의 기사만을 보고 상식을 이용해서 판단했다. 약간의 자료만 조사하면 좀 더 정확하게 쓸 수 있겠지만 그냥 내 전공지식에 기반하여 의견을 달았다. 토요일 저녁이라서....



먼저 기사를 자세히 분석하면 "농약 커피"는 전형적은 눈길 잡기용 헤드라인이라는 게 금방 파악된다. 이 기사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은 최낙언 박사의 말대로 식품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는 게 좋다. 다른 사람들 말보다는 국가의 발표를 신뢰하는 게 더 이익이 될 것이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2011~2012년 총 1,085건의 잔류농약 정밀검사 중 47건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지만 '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구는 전체 건수 중 1.65%가 일본의 기준을 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 기준을 들먹이는 것은 불검출보다 높다는 이야기인데 의미 없는 이야기다. 이건 좀 과장하기 위해 집어넣은 것이라 보면 된다.  기준을 비교하면서 몇 백 배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다. 식품안전에 대한 철학과 분석방법이 나라마다 다른데 이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 문구를 해석하면 47건(4.3%)에서 농약이 검출되었고, 기사 내용을 참고하면 14건(1.3%)에서 일본 기준인 0.01 ppm을 넘어섰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게 농약 커피인가? 그중 예로 든 것은 일본 기준의 10배를 초과했다는 프로미시돈은 0.1 ppm이다. 아마도 가장 높은 농도일 것이다. (기사의 논조로 볼 때 가장 심각한 사례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럼 일본은 커피에 대한 잔류농약 기준이 있을까? 기사를 역시 참조하면 없다. 우리나라도 없다. 두 나라가 다 없다. 그런데 비교한 기준이 해당 식품에 대한 농약잔류 기준이 없을 때 예방적 차원에서 적용한다는 0.01 ppm이다. 이건 특별히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농작물은 잔류기준을 정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없으면서 수입이 된다는 것은 그걸 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면 가장 비슷한 농산물의 기준을 준용한다.)


커피에 대한 농약잔류 기준은 필요할까?


0.01 ppm이라는 농도는 1억 분의 1이라는 농도이다. 어지간한 분석에서는 검출도 어렵다. 이 정도면 거의 인위적인 농약처리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거의 불검출 수준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제목과는 다르게 커피는 농약 문제가 전혀 없네,였다. 당연하다. 그럼 커피에는 왜 잔류농약 기준이 없을까? 그럴 필요가 없으니 없는 것이다. 커피는 과육을 물로 씻어 벗겨내고 속에 든 씨앗을 햇볕에 말린다. 커피에 농약을 치는 경우가 있더라도 커피에 농약이 잔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그러니 59종의 농약을 다 분석해도 0.01 ppm 넘는 게 고작  1.3%에 불과하다. 이건 건조나 운반과정 중에 살짝 영향을 받은 수준이다. 어떤 물질은 이렇게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기사는 괜한 숫자로 사람을 의도적으로 현혹한 것이다. 뭐 흔한 일이니 그러려니 한다. 미끼에 바로 반응하는 분들을 보면 좀~ 안타까움은 있다.


다른 기사를 살펴보면....


그런데 다른 기사를 보면 식약처가 일본의 방식(PLS)- 기준이 없는 식품에 대해서는 0.01 ppm을 적용 - 을 적용하겠다고 입법예고까지 했다는 게 기사에 나온다. (위의 기사가 2013년 10월이고, 이 기준 신설은 2014년 7월이다. 나중에야 확인했다.) 이건 이렇게 추정할 수 있다. 다음부터는 소설이다.


기준을 강화하고 싶은 식약처가 관련 내용을 적절한 때(?)에 공개했고, 이를 본 의원실에서는 보도자료를 돌렸고 기사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흥분했고, 신문사는 페이지뷰를 늘렸다. 이런 건 사람들이 잘 흥분하니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식약처에 고성능 분석장비와 인원 보강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커피가 더 안전해졌을까? 망고보다는 커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흥분했을 것 같기는 하다. 요즈음은 커피의 시대가 아닌가.


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농약잔류 기준이 없는 농산물 수입 시 일본 기준, 0.01 ppm, 을 적용하는 것을 마냥 좋다 하기도 어렵다.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식품안전기준은 Tolerable daily intake (TDI), 일일섭취허용량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열대 과일에 우선적으로 파지티브 리스트(PLS)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품목별로 별도의 허용기준을 만들기 전에는 무조건 적으로 0.01 ppm을 우선 적용한다.

 

이렇게 되면 소량 품목 수입회사가 더 부담을 많이 지게 될 것이다. 수입이 되지 않아 잔류기준이 없는 품목은 비슷한 품목의 잔류기준을 적용했는데 이젠 무조건 거의 불검출 수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입사가 잔류농약 허용기준을 요청하여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얼마 수입되지도 않을 것에 대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물론 시대가 바뀌어 다량으로 수입되는 것은 기준을 정해서 관리하는 게 맞지만, 너무 과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리스크에 대한 과민반응 일 수 있다.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소모하면 정작 중요한 위험은 놓치게 된다. 우리의 예산은 항상 제한되어 있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안전이 결정된다.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면 그만큼 필요한 곳에 가지 않게 된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끝으로, 미국은 왜 등록 외 농약 불검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지도 이해가 필요하다. 이건 식품안전 때문이 아니라 병해충 검역 때문이다. 외래 병해충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독특한 제도이다. 농산물 수출국가인 미국은 대부분의 식품안전 기준이 더 느슨한 경향이 있다. 그러니 미국의 불검출 기준이 더 안전한 기준이라고 하는 건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그냥 지금처럼 유사한 식품의 농약잔류기준을 준용해도 충분히 안전하다. 그럼 수입 커피에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에 찬성하는가? 농업계 입장에서는 당연히 찬성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뉴스 기사대로라면) 신경 끄고 다른 시급한 문제를 찾아보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차라리 커피에 대한 잔류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면 잔류기준이 꽤 높아질 것이고, 이런 논란도 사라질 것이다. 뭐~ 이러나저러나 안전성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커피는 어차피 농약이 문제가 되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괜한 일로 하루종일 흥분하고 누가 보지도 않을 이 글을 쓴 나의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졌다. 내일이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참고 : 2016년까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관리를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수입의존도가 높은 열대과일류 등에 대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우선 적용한 것이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ositive List System)이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경우 0.01 ppm(불검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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