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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12. 2016

끝나지 않은 비극

라오스의 UXO

라오스에서 베트남 국경 쪽으로 가다 보면 논이나 밭 중간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져 있는 것을 수시로 마주친다. 베트남 전 때 떨어진 불발탄을 처리한 흔적들이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베트남 전이 벌어진 1964년부터 1973까지 미군은 58만회 이상의 폭격을 수행했다. 산술적으로는 9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 8분마다 폭격을 하면 가능한 빈도이다. 투하된 폭탄의 30% 정도는 폭발하지 않았다.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불발탄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켰다.


수류탄, 지뢰, 폭탄 등 터지지 않은 폭발물을 UXO(불발탄, unexploded ordnance)라고 부른다. 베트남 국경이 가까워지면 하얀색 지프에 파란색 글씨가 선명한 UN UXO 처리반의 차량을 수시로 마주친다. 좀 낯선 느낌이랄까. 라오스 국토의 사분의 일은 UXO로 인해 오염된 위험지역이다. 2008년까지 5만 여명의 사람들이 UXO로 인해 죽거나 다쳤다. 전쟁이 끝난지가 40년이 더 지났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아직도 불발탄에 매년 3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이중 열에 넷은 어린아이들이다. 


씨엥쿠앙의 항아리 평원, 이 항아리도 폭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폭탄이 라오스에 투하되었을까. 라오스 공무원인 타테바는 베트남 전 동안 300만 톤 정도의 폭탄이 라오스 쪽에 투하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1975년 당시 라오스의 인구가 300만이 안되었으니, 국민 1인당 1톤의 폭탄이 돌아갔다. 그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당시 1톤의 폭탄 대신 그에 상당하는 돈을 줬다면 모두 미국 편이었을 텐데... 

그 폭탄은 주로 호찌민 트레일을 따라 뿌려졌다. 호찌민 트레일은 안남산맥 서쪽의 라오스 땅을 따라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이동로를 말하는데, 베트남 군은 이 길을 따라 남베트남 각지로 스며들어갔다. 물론 미국은 공식적으로 라오스를 폭격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라오스는 전쟁 당사국이 아니었고 중립지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더러운 전쟁(Dirty War) 또는 비밀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불발탄의 기둥으로 지은 창고*


가장 많은 폭탄이 투하된 지역 중 하나인 므앙 쿤은 한때 씨엥쿠앙 주의 주도였다. 베트남전 당시 끊임없이 이어진 폭격으로 므앙 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씨엥쿠앙의 주도는 폰사완으로 옮겨졌다. 거대한 폭탄의 껍질은 집의 기둥이 되고 대문을 떠 받치는 받침이 되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는 방비엥은 미군의 활주로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 도시이다.


방비엥의 시가지, 길게 늘어선 빈 공터가 베트남 전 당시의 활주로였다.

최근 들어 미국은 EU와 함께 라오스의 UXO를 제거하는 사업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국가이다. 비록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그들 스스로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메콩 강변에서 건설되고 있는 거대한 요새 - 미국 대사관 - 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여전히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라오스는 점점 더 서방세계와 가까워지고 있다. 로켓포에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튼튼하게 지어지고 있는 미국 대사관은 라오스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라오스는 서구 사회와 점점 더 밀접해 지고있다.


매년 12월이면 UNDP와 라오스 기획투자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원탁회의(Round Table Meeting)가 열린다. 이 회의는 라오스의 개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로 라오스 장차관 등 공무원들과 개발 파트너인 각국의 대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가장 큰 연례행사 중 하나이다. 자기 나라의 개발정책을 결정하는데 외국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라오스의 처지는 말해 무엇하겠나. 씁쓸하게 느껴졌지만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에선 그저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졌다. 

2014년 라오스 RTM 부대행사로 열린 전시회

2015년에는 메콩강변의 5성 호텔 돈찬 팰러스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전시 부스의 한편을 차지한 UXO들 이었다. 가지각색의 폭탄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뿌린 폭탄을 치우면서 생색을 내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회의장 안에서는 EU 대표가 사라진 라오스 시민운동가를 빠른 시일 내에 집으로 돌려 보낼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진 출처 : U-M Library Digital Collections. Trans-Asia Photography Review Images. (Accessed: May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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