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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13. 2016

산 중 호수에 잠긴 나무들

산 중 호수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이내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물결에 비친 나무의 모양만큼이나 꼬인 세상이다.

나무들, 한때는 울창했었다. 베트남 전이 끝나고 라오스가 처음 세워졌을 때 거대한 나무들이 먼저 잘려 나갔다.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러시아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보냈다. 나무들이 그들의 학비가 되었다. 이후에도 큰 나무들은 계속 베어졌다. 팔 수 있는 것이라곤 나무와 땅속의 광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산 중에서 만난 이 풍경은 목가적이지만 슬펐다.


또 한쪽에서는 산이 불태워진다. 벼를 심기 위해서다. "탁, 타~악" 나무들이 타는 소리가 비명처럼 느껴졌다. 한가족의 생계가 검게 타버린 산과 나무들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거대한 나무들의 물속에 잠겨 있었다. 넋이 나간 듯 이 풍경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할 말을 잊고 쳐다만 봤다. 한두 시간을 달려도 이 아름다운 풍경(?)은 끝이나 질 않았다. 


고산 습지가 생겨나고 전기를 팔아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아해야 할까. 산의 계곡을 막아 거대한 나무들의 무덤을 만든 중국을 탓해야 할까, 가난을 탓해야 할까. 어떤 이론도 이 거대한 죽음 앞에서 그럴싸한 설명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무들이 타며 내는 자욱한 연기와  소음으로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쉽게 이야기한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막상 현장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은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불태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든다. 하늘이 도와준다면 한가족이 겨우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벼를 수확할 것이다.


농업전문가로서 나의 무능함이 이처럼 가슴 아팠던 적은 없었다. 내가 이 나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나무를 불태우는 그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해결책에서는 너무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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