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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l 02. 2016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잠시 쉬어가는 인생의 간이역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가면 작고 아담한 간이역이 있습니다. 화본역, 일제 시대인 1930년대에 만들어져 수많은 시골사람들의 발이 되었던 중앙선의 역사 중 하나입니다. 그 옛날에는 증기기관차가 다녔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디젤엔진을 단 무궁화호가 대신했습니다. 이 역이 특별한 것은 여느 시골 역사와는 달리 작지만 정감 넘치는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까지 디테일에 신경을 쓴 역사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요.


자! 그럼 화본역으로 떠나 보실래요!


화본역을 소개한 페이지를 보면 "중앙선의 역으로 1936년 12월 10일 역사를 준공했고 1938년 2월 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해주던 급수탑과 역사 건물이 일제시대의 건축모양 그대로 남아 있어 1930년대 일본식 건축양식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옛 시절의 소박하고 정감 있는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화본역은 철도 마니아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그 시절에는 물론 지금처럼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전 2와 7로 끝나는 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인근에서 가장 큰 영천장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시골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관광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상행 두 번 하행 두 번, 하루에 네 번의 기차만 정차를 하는 간이역으로 남아 기차역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청량리에서 8:10분에 기차를 타면 화본역에는 4시간 30분 후인 12:47분에 도착합니다. 낭만적이긴 하지만 실용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속도입니다. 서울행 열차는 화본에서는 10:23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당일 왕복 기차 여행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가고자 한다면 주변에서 1박을 해야만 합니다. 이외에도 하행선은 영주에서 출발하여 영천까지 가는 기차도 한편 있습니다. 상하행 각 한편만 있는 정말 한적한 간이역입니다.


이 작은 역에는 역무원 두 분이 근무한다고 합니다. 경제성을 따지면 도무지 수지가 맞을 수 없는 역입니다. 이외에도 경북관광 순환 테마 열차가 가끔 운행된다고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이 역은 다른 많은 역들처럼 사라질까요? 그래야만 할까요?



역사를 나와 철길 쪽으로 가면 웅장한 급수탑이 보입니다. 이 시골역과 어울리지는 않습니다만, 이게 또 매력입니다. 일제시대 때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기능을 담당했었죠. 요즘은 아프리카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급수탑 내부는 비어있어서 직접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역사마다 보이는 저 큰 탑의 용도가 무엇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도무지 용도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어찌 보면 아픈 역사(history)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만 , 지금은 그냥 한적한 시골마을에 풍광을 더하는 조형물로 여겨집니다.



아담한 역사 주변에는 조경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벤치와 보도블록이 나름 정감 있게 배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저렴한 배치나 디자인은 아닌 듯합니다. 나름 신경 섰다는 이야기겠죠. 아마도 예전에 이 역이 처음 만들어질 때 기본이 탄탄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가을이 와서 노란 단풍으로 물들면 한층 더 정취가 풍겨날 것 같습니다. 데이트하기 딱 좋은 풍경입니다.



역사 옆에는 새마을호가 정차해 있습니다. 더 이상은 달리지 않지만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디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머물기 위해서 들르죠. 새마을 호 안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플랫폼을 바라보면 기차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표정에서 좀 색다른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간이역을 찾는 사람들은 대도시 역에서 볼 수 없는 분위기가 있는 듯합니다. 삶의 여유와 낭만이랄 수 있을까요!



간이역에 갈 때는 마음을 내려놓고 갑니다. 기차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찐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려온 일상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간이역에서 쉬어간다"라는 표현을 직접 체험해 보는 걸 어떨까요? 문학적 표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에서 실천해보는 거죠.


새마을호 안 카페 내부


철길을 넘어서면 바로 논으로 연결됩니다. 정동진 역에서는 바다가 보인다면 화본역에서는 바로 논이 보입니다. 그 논길을 걸어가면 마을로 연결됩니다.  아마도 수많은 농촌 학생들이 이 길을 넘나들면서 학교를 다녔을 테죠. 지금에서야 더 이상 기차가 통학 수단으로 쓰이진 않겠죠.


대학 다닐 때 기차로 통학을 했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순간에 도시와 농촌을 바꾸어주는 신기한 교통수단을 매일 같이 이용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었죠.




인생을 살아가다 가끔 'STOP' 신호를 만나면 간이역으로 떠나 보고 싶어 집니다.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간이역은 있습니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 여유롭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쫘~악 뻗은 저 철길처럼 우리의 앞길이 탁 트이는 날도 오겠죠.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는 것처럼 말이죠.

 


화본역, 가을이 오면 다시 한번 찾고 싶어 지는 그런 간이역입니다. 내 인생도 한 번쯤은 이 철길처럼 곧게 펼쳐질 수 있기를 간이역에 서서 꿈꿔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같은 마음입니다.


* 2012년 7월, 군위의 화본역을 방문하고 그 느낌을 적은 글을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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