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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l 05. 2016

고향에서 부쳐 온 달래, 그리고 아버지

고향에서는 부모님이 보내오신 달래와 냉이가 아침 밥상에 반찬으로 오르면, 이제 고향에도 봄이 왔구나를 떠올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일 먼저 냉이가 보내져 왔다. 조금은 억센 듯 하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보내져 온 것이라 그런지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웬일인지 달래가 오지 않았다.


나는 달래를 고추장에 담근 "달래지"를 좋아한다. 특유의 마늘 향과 톡소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릴 때 자주 먹던 것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집사람이 알아서인지 시장에서 달래를 사 와서 고추장에 담갔다. 역시나 맛이 좋다.


'신토불이'를 그렇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에서 온 달래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내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느낌이랄까.


부모님은 점점 더 연세가 들어가시고 이제는 움직임도 예전만 못하시다. 더군다나 몸도 다들 불편하시다. 아마도 얼마 후면 고향의 나물과 곡식들이 이 수도권으로 올라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걱정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런 나의 아쉬움을 아마도 집사람이 어머니에게 얘기를 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아지골 과수원 옆 밭둑까지 손수 달래를 캐러 가셨다고 한다. 며느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두말 않으시고 직접 호미를 들고나가셨다고. 평소 아버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들은 코끗이 찡해왔다.



내가 고향에서 자라는 동안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뵌 일이 없었다. 가끔 송이버섯과 싸리버섯을 따오시거나 산나물을 뜯어오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군말 않으시고 길을 나서셨다. 물론 어머님이야 아들이 요청한 걸 아시겠지만 며느리 이름을 파셨다. 아버님도 굳이 따지지 않으셨다. 요즈음 부모님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손자 손녀들의 바람이 아닐까. 손자 손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던 가장 우선순위를 두시는 것을 볼 때마다, 어릴 때 우리에게는 그러시지 않으셨는데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인지 손자 손녀들은 그런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한다. 가끔 아침에 부모님과 전화 통화 한번 하게 하려면 상당한 금품을 건네어야만 겨우 움직인다. 어릴 땐 저러지 않았는데.... 원망도 들지만, 내 어릴 적을 떠올려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못내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달래들도 조금 후면 고추장에 담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서 고향의 봄소식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달래지'를 먹을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트림을 할 때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아침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식욕이 없을 때면 달래지만 있어도 입맛이 당긴다. 요즘은 애들도 맛을 알아서인지 더 찾는다.


이 달래들은 된장찌개에도 들어간다. 두부와 고향의 된장을 함께 끓이면 그 맛은 정말 일품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음식과도 바꿀 수 없다. 고향의 향이 도회지에 퍼진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은 변해가고 사라져 간다. 희미한 추억의 자락을 기억 속에 붙잡으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연기처럼 흩어져 간다. 고향마을의 익숙하던 모습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알던 이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가끔 들르는 고향마을, 익숙한 골목길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익숙하던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얼마 후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내가 다시 그 고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서러움과 원망은 모두 가슴에 담아 둔 채로 부모님이 걸으셨던 그 논과 밭에 내가 다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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