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관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라는 소설에서 외계인들이 지구에 사절단을 보내면 누구를 지구의 대표단으로 인정하고 만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예상했다. "외계인들은 인간이 아닌 개미들에게 사절단을 보냈을 것이다"라고.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보다는 개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돋보기로 세상을 보았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세상을 본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우리 세계는 개미보다 더 작은 생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수보다 10배나 더 많은 수의 미생물들이 우리 피부와 내장 등 우리 몸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몸의 채취와 우리가 먹은 음식물의 소화는 곰팡이, 비피더스 균, 유산균, 대장균 등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과연 우리 몸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구는 미생물과 미소동물, 곤충, 어류, 식물, 동물 등 수많은 생명과 함께 복잡한 생태계(ecosystem)를 이루고 있다.
자연생태계는 예민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균형을 깨뜨리는 작용이 있으면 그 작용을 되돌리려는 반작용(negative control)이나, 또는 다른 작용을 촉진(positive control)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생태계는 동적(dynamic) 평형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호수의 백조처럼 겉은 평온하지만 속에서는 치열한 발길질이 계속된다. 그 평형이 대부분은 이전과 같은 상태이지만, 때로는 이전과 다른 상태로 전이하기도 한다. 생태계의 큰 변화를 의미하는 평형이동은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 같은 거대한 자연현상의 결과이기도 하고, 또는 기온의 상승과 하강 같은 기후적인 요소에 기인하기도 한다.
어떤 비극적인 이벤트가 있었던지와 상관없이 36억 년 전 생명체가 최초로 탄생한 이후 한 번도 이 지구에서 생명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생명체의 형태는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종의 다양성이 풍부해지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모든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는 진화했고, 그 결과로 종의 다양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생태계의 항상성(Homeostasis) 또한 유지되고 있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처럼 현재의 인간이 미래에도 이 생태계의 주도적인 우점종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화석학적 증거들이 말해 주듯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또 다른 종으로 분화되어 갈 것이고, 적응에 뒤쳐지는 현재의 인류는 새로운 인류로 대체될 것이다.
지구 생태계의 항상성은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인식하는 데 까지 발전하였다. 지구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는 데 제임스 러브록은 이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라고 불렀다. 가이아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환경오염과 난개발에 신음하지만, 자애롭게도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여신이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식물과 해양조류의 증식이 활발해지면서 그 효과를 상쇄한다. 환경오염이 일어나도 이에 대응하는 미생물 종들이 반식하면서 이를 정화하여 깨끗한 물로 되돌려 놓는다. 산불이 발생하면 그 재를 영양분으로 더 많은 식물들이 자라나 숲을 다시 회복한다. 어찌 경이롭지 않은가.
지구 유기체론적인 관점은 영화에도 반영되었는데, 바로 <아바타(avatar)>이다. 인간에 의해 촉발된 전쟁으로 판도라 행성이 신음을 하자, 여신 에이와는 행성의 모든 생물들에게 인간에 대항하도록 한다. 그리고 전쟁은 판도라 행성의 승리로 끝이 난다. 나비족들은 이상하게 생긴 머리카락 같은 기관으로 서로 소통하고 영혼들의 나무(tree of souls)는 대지의 여신과 직접 교감하는 신성한 장소로 계속 자리를 지키게 된다. 그 행성에서 자연과 나비족과 대지는 하나의 가이아였다.
가이아적인 관점은 '지구 대순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 대순환의 원동력은 지구의 영원한 신, 태양이다. 태양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의 10,000배를 지구에 공급한다. 위대한 태양 앞에 인간은 여전히 미물에 불과하다.
태양은 지구를 가열시키는 데, 항상 그렇듯이 전 세계에 골고루 열을 나눠주지는 않는다. 태양에너지는 적도 부근에 가장 많이 도달되고, 극지방에 가장 적게 도달한다. 이러한 공간적인 에너지 불균형은 적도 부근의 열을 극지방을 이동시키는 지구적 규모의 대순환 체계를 만들어 냈다.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처럼 해류와 기류, 증발과 강우, 태풍 등이 지구 표면을 순환하며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한다. 이러한 순환체계 덕분에 북반구의 많은 국가들은 따뜻하게 지낼 수가 있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는 기존의 기후 패턴과는 다른 기상 현상을 유발한다. 2011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대홍수가 있었고, 중국 양쯔강 상류에서는 최대의 가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지적으로 많은 폭우가 내리기도 했는데, 서울의 우면산에서는 산사태로 많은 인명피해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국지적인 기상재해가 증가하는 것뿐 아니라 지구의 대순환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영화 <투모로우>에서 다루어졌는데, 미국의 대부분이 급격하게 얼어붙는 빙하기가 오는 것으르 그려졌다.
겨우 100년을 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기후는 항상 그런 듯 하지만, 가이아의 세계에서 기후는 사계절처럼 변해왔다. 지금까지 네 번의 빙하기가 있었고, 세 번의 간빙기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는 1만 년 전에 끝이 났는 데, 지금은 또 다른 간빙기가 될지 아니면 계속 더워질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는 지질학적 시간의 관점이고, 단기적으로는 지구의 기온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주류 과학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가이아 가설을 더 믿는 사람들이나, 인간이 개미보다 지구에 더 큰 영향을 미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태양흑점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가설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낸다. 어떤 원인에 의해서 기후가 변하던 상관없이 지구가 새로운 평형상태를 찾아갈 것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그 평형 상태가 인간에게 이로울 것이냐, 라는 문제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일 뿐이다. 지구의 기후는 어떤 이유로든 변할 것이다. 그것이 점진적이면 인간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처럼 심각한 타격은 불가피하다. 아마도 개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구는 개미들이 알아서 할 테니 인간들, 니 앞가림이나 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