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Jun 19. 2016

워즈워드가 살았던 동네, 그라스미어

사진으로 보는 Lake District의 Grasmere 트래킹

영국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을 꼽는 다면 단연코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Lake District National Park)이다. 잉글랜드의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영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름 휴양지 중 하나이다. 런던에서 M6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맨체스터와 프레스톤, 랭커스터를 거쳐 켄달에 이른다. 다시 켄달에서 국도인 A591을 타고 서쪽으로 가면 그림 같은 풍경의 레이크 디스릭트가 펼쳐진다. 켄달을 벗어나면 바로 윈드미어 호수가 나타나는 데, 계곡을 따라 반달 모양으로 길쭉하게 형성된 호수이다. 호수 주변에는 피터 래빗 박물관으로 유명한 보네스(Bowness) 마을과 수백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동네들이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윈드미어 호수가 아니다.  A591번을 타고 좀 더 올라가면 윈드미어 호수 끝자락에 있는 앰블사이드(Ambleside)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그라스미어(Grassmere)가 나온다. 그라스미어 호수는 윈드미어만큼 크지도 않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컴브리아셔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사랑 받는 곳이다. 이곳은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 가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트래킹으로 오른 이스데일 타른 산 위에서 그라스미어 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관광객들은 윈드미어(Windmere) 호수까지만 가는 게 일반적이라, 짧은 일정 동안 영국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곳까지 가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한번 꼭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은 마을이다. 다른 곳은 다 포기하더라도 말이다. 영국에서 2년간 살면서 영국과 유럽의 수많은 곳들을 다녔지만 이곳 만큼 마음을 끄는 곳도 없었다. 동화책 속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 그림, 양 떼와 구름이 구별하기 힘든 풍경들이 매 구비마다 펼쳐진다.


그라스미어, 영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제주도가 검은 현무암으로 만든 돌담길이 유명하다면, 이곳은 화강암으로 된 정교하고 규모도 큰 하얀 돌담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숲과 돌이 우거진 황무지였지만 농부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나무를 베어내고 돌을 주워 내어 일군 땅이다. 그 주워낸 돌을 주변에 쌓아서 밭을 만들었다. 돌담길이 산꼭대기까지 주~욱 이어져 있다. 모두 양 떼를 키우기 위해서 이다.


영국의 농업은 전형적인 삼포식 농업인데, 한쪽은 밀을 심고 다른 쪽은 휴경을 하고, 마지막 한쪽은 양을 키우는 형태로 돌려가며 짓는 방식이다. 토양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서 양 떼를 키우는 곳과 작물을 심는 곳을 분리하고 돌려 짓는다. 맨체스터 위쪽의 북서부 지방은 예전에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주변에서 온 통 양 떼들 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만큼이나 흔한 게 양 떼이다. 멀리서 보면 산 위에 붙은 구름처럼 보인다.



DLSR도 아니고 4백만 화소의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진이 잘 나왔다. 최근에는 더 좋은 카메라를 쓰지만 이 사진만큼 멋있는 풍경사진을 찍지는 못한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좋은 풍경사진은 기계보다는 파란 하늘과 공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자! 그럼, 시원한 폭포와 함께 이스데일 타른(Easedale Tarn)으로 트래킹을 떠나 보자!



3월이면 수선화가 피는 계절이다. 길 어디에서나 수선화를 마주친다. 그래서인지 영국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이 수선화이다. 노란 수선화를 볼 때면 브라더스 포의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와 내 젊은 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그라스미어 가든센터


그라스미어 동네 중간쯤 방문객 센터가 있다. 기념품도 팔고 있고 관광객들에게 안내도 한다. 여느 관광지처럼 내겐 별로 살만한 건 없었다. 그렇지만 스카프와 모자 등 기념품들은 나름 특색이 있었다. 이곳에도 역시 멋진 정원이 있는 데, 영국 사람들이 뭘 중요시하는지 이곳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0년 전의 모습이다. 영국에 살 때는 패션이 이랬다. 머리 모양도 이상한 데, 아무래도 영국의 미용사들은 동양인의 머리를 잘 깎지는 못했다. 매일 이상한 모습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떠날 때까지 내 모습에 익숙해지진 못했다.


처음 갈 때는 신사의 나라라고 해서 패션에 조금 신경을 섰는데, 나중에는 그들처럼 바뀌었다. 이 정도의 패션이면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못마땅하겠지만, 비즈니스맨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단언컨대 중상은 간다. "four seasons a day"라는 말처럼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실용적인 게 제일이다. 스코틀랜드의 속담에는 "험한 날씨는 없다. 단지 준비 안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게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날씨를 대하는 태도이다. 영국 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실용성이다. 정말 허례허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믿기지 않을 만큼 그렇다.

찻집의 담장에도 수선화가 피었다.


개인 가든의 담장에도 수선화가 피었다. 이 나라 사람들 정원 하나는 정말 잘 가꾼다. 밭을 두르는 담장도 정원 가꾸 듯 만든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산 꼭대기까지 뻗은 돌담은 밋밋한 산들과 어우러져 멋들어진 경관을 만든다. 이런 노력들이 이곳을 영국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피터 래빗 등등, 수많은 판타지들이 만들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라스미어의 시내의 풍경, 시골스럽다. 지금가도 이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라스미어의 시가지이다.  커피숍 밖에서는 노부부가 차를 마시고 있고 2층 버스가 천천히 지나간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가꾼다. 10년 후에 방문해도 이 모습일 테고, 또 10년 후에 방문해도 이 모습일 게다. 그게 영국이다. 시(poem)가 저절로 써질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이 동행한 일행들이다. 중국, 멕시코, 홍콩,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영국에 있으면서 보통 모임을 만들면 대개는 같은 나라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정말 다양성이 살아 있는 나라이다. 기가 막힌 상상력이 쏟아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이다.


농가 뒤편으로 우리가 가려는 이스데일 산들이 보인다. 산은 크게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다. 영국에서 등산(Climing)이라고 말하면 장비를 갖추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 정도의 산은 대개는 트래킹(tracking)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이런 유의 용어 구분이 힘들어서 오해가 많이 생기곤 했다.

네셔널트러스트의 표지판,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전통을 만들어 간다.


대개의 좋은 경치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트래킹 하기 좋은 곳은 내셔날트러스트에서 개발이 힘들도록 구입을 해버린다. 한 사람의 명의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명의로 부동산을 쪼개서 구입한다. 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지옥 같은 상황이다.


영국이 왜 선진국이냐고 묻는 다면 이렇게 전통, 문화, 환경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노력들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영국의 농촌과 자연경관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네셔널트러스트에서는 땅을 매입하기도 하지만, 땅 주인으로부터 개방를 이끌어 내어서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목장의 담장에도 계단을 만들어서 순방객들이 지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런 노력들이 영국을 트래킹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 덕분에 시내 어디를 가도 트래킹에 필요한 아웃도어 매장을 볼 수 있다.

멕시코에서 유학 온 부부.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곤잘레스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비가 자주 오니 물이 참 풍부하다. 우리나라가 겨울이면 대개는 건천인데 반해서 이 나라는 물이 참 많다. 깨끗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라면 이렇게 가꿀 수 있었을까. 이곳에 아파트를 지으면 생활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물이 흐르고, 큰 나무가 냇물을 따라 서있고, 또 옆에는 초원이 펼쳐지는.... 동화책에서나 보던 풍경들을 이곳에 가면 마당 앞 정원처럼 매일 볼 수 있다. 교통지옥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노력도 별로 필요 없이 아무 곳에나 이런 풍경이 있다.


길도 인공을 가미하지 않았다. 거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콘크리트를 보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절대 가꾸고 유지하지 못하지 않을까, 부러움과 함께 경외감도 든다. 콘크리트는 돈만 들이면 씌울 수 있지만 이런 자연을 닮아가는 노력은 정성으로나 가능할 것 같았다.



영국 북서부 지방에서 양 떼는 어디에나 있다. 멀리서 보면 구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이렇게 좀 지저분해(?) 보인다. 길을 다닐 때는 밑을 잘 보고 다니는 것은 필수이다. 양들이 그리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 같지는 않다.


사진만 봐도 상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걷다 보면 발걸음이 절로 떨어진다. 바닥은 약간 촉촉하고 폭신하다. 한발 내디디는 걸음마다 이 풍경을 잊지 않으려고 눈은 카메라가 되고 머리 속은 인화지가 된다.


 홍콩에서 온 아가씨들인데 참 활달한 성격이다. 옆에 계신 분이 강사이고 뒤에 수염 난 남자분은 강사의 파트너인데 같이 동행했다. 영국에서는 결혼과 동거를 분명히 구분한다. 요즈음은 우리도 그렇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 보이고 '피터 래빗'이 나올 것 같다. 빨리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이 길을 천천히 천천히 즐기며 걷고 싶기도 하다. 언제 다시 와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후에 다시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트래킹을 왔었다. 애들은 물론 우리가 영국에 살다 왔다는 것 정도만 겨우 기억한다. 참~ 보람 없다 느낀다.


좋은 산이 되려면 역시 폭포 정도는 있어 줘야 한다. 역시나 있다. 돌담길도 보인다. 이 돌담길이 산 위까지 계속된다. 만리장성도 대단하지만 영국의 이 돌담길도 정말 감동스럽다. 영국 전체에 이런 돌담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에서나.


다들 즐겁게 산을 오른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풍경이 더 좋아서인지 모두들 힘이 든 줄도 몰랐다. 아마도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선진국은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고나 할까. 난 최소한 그런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다.


트래킹 코스 주변의 풍경이다. 갈색으로 누운 풀들 대부분이 갈대와 고사리이다. 이 지역에는 특히 고사리가 많다. 온 산이 고사리이다. 가는 길 내내 물소리가 들린다. 굳이 이곳에서는 이어폰을 하지 않아도 좋다. 자연이 노래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있는 폭포에 들러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곳은 대개 인공구조물인 다리와 철조망이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은 참 자연에 손 안된다. 그래도 지켜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대충 찍어도 그림이다. 아마도 DSLR을 가지고 찍었으면 어떤 풍경일까. 무보정 사진이 이 정도라니, 내가 찍어 놓고도 할 말을 잃었다.



강사 커플이 산 위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바닥에는 이제 막 초록의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면  양 떼들이 몰려들어 풀을 뜯을 것이다. 그래도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 쉴만한 바위가 있어서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스데일 타른 호수. 산 정상에 있는 호수이다. 물이 거울처럼 맑아 물속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물고기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산의 반영을 바라보며 다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샌드위치와 사과 한 두 개를 들고 오는데 참 간편하니 좋다. 산에서 먹는 점심, 장담컨데 미슐렝 별 세 개 레스토랑에서 먹어도 이 맛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호수 위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산 정상까지 갈 수 있지만 이번 트래킹은 여기에서 멈추었다. 한참을 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림 같은 풍경이다.


산 위에서 다른 쪽을 바라 본 풍경이다. 지형은 고원처럼 약간 평탄하다. 막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 보아도 그때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진다. 바닥의 누운 풀들은 고사리(draken)가 많다. 중국산 고사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양들도 고사리는 뜯지 않으니 고사리만 계속 늘어 난다.


그라스미어의 진저브레드 가게


그라스미어 지역은 진저브래드(생강과자)로 유명하다. 몇백 년 동안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가게가 있어 그 전통을 이어간다. 윌리암 워즈워드의 묘소가 있는 교회 옆에 위치하고 있는 데, 복식과 가게 모양이 예전 그대로이다. 미소까지도.

영국의 자연과 농촌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수백 년 간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멋진 풍경이 있지 않았을까. 교통량이 늘어나니 길을 넓힐 만도 하지만 시골길은 차 두대가 피해가기가 참 빠듯하다. 운전할 때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도 영국인들은 그 불편을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더 빨리 가는 게 삶의 목표는 아닌 듯했다.


우리나라의 농촌을 보면 참 특색이 없다. 너무 쉽게 지은 건물들이 넘쳐나고 너무 쉽게 길을 내고 너무 쉽게 허물고 곧게 편다. 그 결과 우리는 힘들여 지켜야 할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왜 가는지도 모르고 빠르게만 간다.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힘들여 번 돈을 예전에 우리에게 흔했던 풍경을 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다. 그것을 보고 감동한다.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정성을 다해 가꾸어 나갈 뭔가를 만들어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고 몇백 년은 걸릴 일이다. 시작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돌담을 쌓았던 영국인들의 그 마음처럼.


2004년부터 가족들과 함께 영국에서 살 때 영어교육을 같이 받던 동기들과 함께 그래스미어에 있는 이스데일 산을 함께 올랐습니다(2005. 3. 19.). 4백만 화소의 똑딱이 카메라도 찍었는 데, 풍경과 하늘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정말 마음에 드는 풍경사진으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젊었을 때의 추억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죠.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남쪽의 대저택, 퐁텐블로 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