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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n 16. 2016

하노이 뒷골목 트래킹

삶이 무료하다 느끼면 하노이로 간다.

라오스에 온 지 10개월이 지났을 때쯤, 단조로운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던 허니문 시기가 지나고 이젠 "우와! 신기하네" 하던 것들이 그저 그런 일상처럼 느껴졌다. 메콩강변의 풍경도 한강 고수부지처럼 익숙해져서 그저 집 주변 산책로에 붙어있는 이름 없는 개천처럼 무뎌졌다. 강 건너 태국도 그저 큰 슈퍼마켓 있는 동네 정도 의미만 있었다.


휴일이 오면 걱정부터 되었다. 특히 국경일이 끼어있는 연휴가 되면 근심은 더욱 커진다. 긴 시간 동안 혼자서 무얼 할까? 혼휴와 혼밥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휴일 동안 시간을 보낼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가위눌리곤 했다. 찌질해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3-4일 동안 에어컨 바람을 쉐며 집에만 있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아직 비엔티안 시내 카페를 배회하는 것 이상의 방법을 찾지도 못했다. 차를 타고 나간다고? 서너 시간을 달려도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방비엥이 고작이다.


하노이 시내의 철길


연휴 준비는 할인 항공권을 검색하면서 시작된다. 검색조건 또한 간단하다. 한 시간 이내의 비행시간, 감당할만한 수준의 가격.  항공일정을 고려하면 선택의 여지는 더 줄어든다. 몇 곳의 후보지가 떠오른다. 방콕, 씨엡립, 하노이. 이런저런 고려 끝에 하노이가 낙점되었다. 여기에는 베트남항공의 낮은 운임이 크게 작용했지만, 북베트남은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또 하롱베이에서 멀지 않다는 것도 나의 마음을 끌었다. 라오항공의 비싼 운임만 아니었다면 씨엠립을 방문했을지도 모른다. 독점구조라서 그런지 라오항공은 한국을 왕복할 수 있을 만큼 항공료가 비쌌다.


특별히 어떤 기대를 가진 것은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 건 하노이로 떠났다.





DSLR 카메라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맨 후 하노이의 뒷골목을 무작정 걸어 다녔다.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아니 시간을 죽이기가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좀 다니다 보니 용기도 생겼났다. 큰 도로에서만 머물지 않고 작은 골목으로 탐험 영역을 넓혔다.

 

진짜 하노이의 삶이 있는 골목들


우리네 상가건물처럼 생긴 주택들이 몰려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좁아 오토바이 두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했다. 하노이 시내에 왜 그렇게 오토바이가 많은지 골목길을 다녀보니 이해가 갔다. 길게 뻗은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게 오토바이 말고 뭐가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하노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오토바이인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아마도 하노이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자유일 것 같았다. 그 길을 걷는 내게 하노이의 오토바이 물결은 심장 소리처럼 느껴졌다. 남자들의 투박한 헬멧과는 달리 아가씨들의 헬멧은 날렵하고 화려해 보였다. 젊은이들에게 헬멧은 안전용품이라기보다는 패션 아이템 같았다. 이들은 몇 개의 헬멧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바보 같은 질문도 떠올랐다. 패션이라면 하나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혼자서 낯선 골목길을 걸으며 달리 무슨 생각을 할까.


좁은 골목길에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가득하다.



하노이에 가기 전에 피숑이 내게 팁을 알려주었다. 난 들으며 "에이, 설마!" 했었다. 뭐 대충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건 불가능하다. 한참 동안 타이밍을 잡으려 기다렸다. 지들이 별 수 있겠어, 라는 오기도 올라왔다. 노리고 또 노렸다. 그렇지만, 이런 이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교통 의식을 가지고는 여기선 생존할 수 없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길은 건너야겠고 방법은 없었다. 하노이에선 하노이의 룰이 지배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물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피숑은 충고대로 그냥 눈을 감은 듯 천천히 대로를 걸어나갔다. 목숨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나를 중심으로 홍해가 갈라지 듯 오토바이들이 갈라졌다. 그들은 속도도 줄이지 않았다. 쏜살같이 내 양옆을 지나갔다. 내겐 낯선 경험이지만 그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애기들도 오토바이에 익숙하다.


몽고의 애들이 말 위에서 태어난다면 이곳 하노이에서는 오토바이 위에서 태어난다. 아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에게 매달려 오토바이를 배운다. 오토바이 위에서 태어나 오토바위 위에서 삶을 살아간다. 3-4명의 가족이 옹기종기 오토바이 한 대에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정겹기까지 하다. 애기들이 엄마의 옆구리를 붙잡고 오토바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이렇게 오토바이 위에서 유연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여긴 정말 오토바이와 몸이 둘이 아니다. 혼연일체란 베트남에서는 사람과 오토바이의 결합상태를 표현하는 용어로 다시 정의 내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에 대한 감동을 뒤로하고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갔다. 특별히 목적한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구글 지도가 그려주는 곳이면 어디든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무작정, 정말 무작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 길에서 그들의 삶이 내게로 들어오는 듯했다.


오토바이 위에서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넓이였다. 골목 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노이의 모습이 펼쳐졌다. 정말 하노이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비좁은 길 옆으로 노점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모든 인민이 먹고살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호찌민의 유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노이에는 정말 노점상이 많았다. 가히 노점상의 천국이다.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삿갓 모자를 쓰고 어깨에 메고 다녔다. 이동 노점상들이다.


미용실, 두부집, 푸줏간, 슈퍼, 느긋하게 의자를 놓고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삶이 풍요로워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모를 역동성이 느껴졌다. 어느 곳을 보아도 하노이 사람들의 부지런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네 70년대도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한참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여기의 삶에도 그 나름 운치와 멋이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들의 고달픈 삶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관광객의 시선이겠지만, 이들은 최소한 과거보단 더 밝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아닐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암담한 곳은 헬OO이라 볼리는 곳 일지도 모른다.


철길을 골목길로 쓰는 마을


하노이의 골목길 여행의 베트남의 역동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오늘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풍요가 행복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래의 우리 모습을 꼭 더 부자가 된 모습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뭔가를 함께 하며 공존할 수 있는 세상도 멋지지 않을까. 우리는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꼭 한 가지의 목표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금 마음을 붙잡고 시간이 멈추어 버린 땅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나태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라오스로 돌아갔다.


라오스에서도 베트남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라오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오토바이 행상 역시 베트남 사람들이다. 정미소를 하는 정 사장은 베트남 사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 생활력이 무지 센 사람들입니다. 공장을 짓는 데는 인부들은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인데 라오스 사람들도 베트남 사람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15명 정도가 조를 짜서 움직이는데, 조장부터 일꾼, 밥하는 여자까지 함께 움직입니다. 쌀만 있으면 주변에서 쥐, 닭, 뱀 가릴 것 없이 모두 잡아와서 요리를 하는데, 먹고 자고를 모두 공사장에서 다하니 돈을 쓸 일이 없습니다. 예전에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저러지 않으셨을까. 이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란 것에 대해 많이 느낍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젊었던 시절 우리들의 아버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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